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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 매체에 등장한 '시민 기본권'…돌발사건인가, 변화 신호인가

[취재파일] 북한 매체에 등장한 '시민 기본권'…돌발사건인가, 변화 신호인가
북한 대외선전매체 '메아리'에 오늘(12일) 고 최숙현 선수와 관련된 글이 실렸습니다. 남한 체육계의 폭력 문화를 비판하며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글은 '메아리'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남한의 인터넷매체 '민중의소리'가 지난 7일 사설로 게재했던 글입니다. '메아리'도 이러한 사실을 밝혀 놓았습니다.

● '메아리'와 '민중의소리' 비교해보면

두 글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메아리'는 '민중의소리' 사설을 거의 그대로 옮겨놨지만, 남북의 맞춤법 차이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면 대표적으로 두 문장을 삭제했습니다. 아래의 내용입니다.

"과거 교육과 노동 등 사회 전반에 폭력과 일방통행이 횡행했으나 민주주의가 진전되며 상당히 극복됐다."
"한 사람의 생명은 온 우주와 같다."
-'민중의소리' 사설 (7월 7일 자), '메아리'에서는 삭제

남한의 민주주의가 진전됐다는 부분, 사람의 생명이 우주만큼 소중하다는 부분은 차마 그대로 옮길 수 없었나 봅니다. 남한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껄끄러웠을 것이고, 사람 목숨에 대한 존중이 없는 북한에서 생명을 우주에까지 비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메아리 최숙현

● '메아리'가 그대로 남겨놓은 표현 "시민의 기본권"

그런데 '메아리'가 삭제한 문장 외에 그대로 남겨놓은 문장에도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메아리'는 '민중의소리' 사설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은 그대로 남겨놓았습니다.

"시민으로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이를 보호받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노동권을 비롯한 시민의 기본권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합리적으로 토론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직업의 귀천이 없듯 노동자가 부당한 인격 침해에 맞서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도 필수적이다."

-'민중의소리' 사설 (7월 7일 자), '메아리'도 그대로 게재

시민의 기본권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합리적으로 토론하는 교육, 부당한 인격 침해에 맞서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 물론 북한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남한 인터넷매체의 사설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문구를 북한 매체가 그대로 실었다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더구나, 자신들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을 일부 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장을 그대로 남겨놓았다는 것이 다소 신선하기조차 합니다.

● 북한의 태도 변화로 해석하는 것은 아직 무리

물론, 이러한 현상을 북한이 인간 기본권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직 무리입니다. 통일연구원이 매년 발행하는 북한인권백서를 봐도 북한의 인권 유린은 여전히 다반사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메아리'는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볼 수 없는 매체입니다.

하지만 대외선전매체일 망정 북한 당국의 승인을 얻어 게재됐을 글에 '시민의 기본권'이라는 표현이 남한 매체를 인용하는 형태로라도 실린 것은 주목해볼 대목입니다. 일선 부서에서의 돌발적인 일 처리에서 비롯된 것인지, 북한 당국의 의중이 조금이라도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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