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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바다거북의 '다잉 메시지'

[플라스틱의 불편한 '진실'①] 청정 제주 바다…그 속은?

"해파리로 오인해서 먹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속에 투명한 비닐이 들어가게 되면 자유롭게 유영하는 해파리랑 굉장히 유사하게 보이기 때문에 오인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이혜림 /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생태실 수의사

바다거북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11일, 충남 서산에 있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서 복원생태관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니 코가 가장 먼저 반응했습니다. 그 냄새. 평소에는 절대 맡을 수 없는 그 냄새가 지하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암시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해안에서 사채로 발견된 바다거북 해부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왜 죽었는지 원인을 찾기 위한 해부였습니다. 붉은 바다거북, 푸른 바다거북, 장수거북, 모두 멸종위기종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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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채 발견된 바다거북 네 마리

마스크 사이로 계속 들어오는 냄새와 보기 불편한 모습을 몇 시간 동안 보고 있자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해부를 집도했던 수의사, 시료 채취를 위해 각 기관에서 모인 전문가들, 영상취재를 담당하는 영상취재 기자, 모두 불편한 자극에도 자기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다가 발견됐습니다. 장기에서 비닐, 낚싯줄, 끈 등이 발견됐습니다.

바다거북 부검

가장 많이 발견된 건 낚싯줄이었습니다.

"낚싯줄의 중요한 의미는 낚시 바늘이 같이 있을 경우에 그거를 먹다가 장 벽에 걸리면 장 천공, 장이 뚫기는 증상이 나타나고 그게 복막염으로 연결이 되어서 직접적인 폐사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혜림 /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생태실 수의사


그리고 비닐도 적잖이 나왔습니다. 장기에서 발견된 비닐은 종류도 다양했고, 위에서 소장, 대장까지 장기 여러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플라스틱을 먹이로 오인하거나 먹이 속에 혼합되어 있는 형태로 섭취를 하게 됩니다. 특히 어린 바다거북은 장관의 직경이 작기 때문에 그 사이즈의 비닐을 먹었을 경우에 장이 막히게 되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혜림 /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생태실 수의사


제주 플라스틱 수중 취재

통상적으로 대장에서 발견되는 쓰레기는 죽기 전 10일~15일 전에 먹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위와 대장에서 발견된 건, 쓰레기가 많은 환경에서 먹이활동을 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사채의 상태를 봤을 때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인근 해안에 해양 쓰레기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틀 동안 바다거북 3마리를 해부한 결과 24개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거북 몸속에서 발견됐습니다. 무게는 20g 정도였습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지난 2017년부터 해안에서 사채로 발견된 바다거북 해부를 하고 있습니다. 사인을 밝히기 위한 과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항상 확인하는 건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입니다. 지금까지 해부를 한 51마리 중 분석을 마무리한 49마리 중에서 40마리에서 1,572개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고, 무게는 150g에 달합니다.

바다 거북 해부 결과

2017년부터 부검을 해온 수의사는 부검을 하기 전에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막상 부검을 시작하면 어떤 사명감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다거북이 죽으면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확인하는 것, 그녀가 계속 바다거북의 배를 가르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천 앞바다에서 사체가 발견되어서 처음 부검을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굉장히 많은 쓰레기가 나왔습니다. 종류도 다양한 데다 저희가 그냥 일상적으로 먹는 생수의 라벨지라든가 아니면 사탕 봉지 이런 것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해양 쓰레기 문제가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혜림 /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생태실 수의사

바다에 쓰레기가 많다는 것. 정말 바다거북의 배 속에서 나온 쓰레기들이 바다에 있는 걸까. 정말 그런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제주에 도착했습니다. 맑고 청명한 제주 바다를 바라보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10년 만에 공기통을 매고 기분을 좋게 해줬던 바닷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 보니 바다거북 해부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제주 플라스틱 수중 취재

"바다거북이 비닐을 해파리로 오인해서 먹습니다"

수면에서 내려온 햇살에 무엇인가가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물속 떠다니는 비닐은 유영하는 해파리 같아 보였습니다. 함께 수중취재하던 이병주, 서진호 카메라 기자와 함께 시선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다거북이 먹겠구나 싶었습니다.

제주 플라스틱 수중 취재

그리고 바닥에는 쓰레기가 보였습니다. 담배꽁초들이 가장 많이 보였습니다. 그 옆에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이 나뒹굴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봤더니 플라스틱 계란판이 빨간색, 하얀색 종류별로 보였습니다. 라면 수프 봉지도 썩지 않고 그대로 바닷속에 있었습니다. 비닐장갑은 조류의 흐름에 따라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제주 플라스틱 수중 취재

조금 더 깊은 바다로 가봤습니다. 유명한 관광지인 정방폭포가 보이는 제주의 앞바다였습니다. 예뻤습니다. 물도 참 맑았습니다. 물고기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바닷속에서 보는 미역은 춤추는 무희 같았습니다. 물고기 떼가 지나가면 저도 모르게 와우 하고 탄성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틈에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있었습니다.

제주 플라스틱 수중 취재

낚시꾼들이 버린 낚싯줄, 낚시용품 플라스틱 포장지, 플라스틱 용기와 뚜껑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플라스틱 젖병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바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페트병이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썩지 않고 바위틈에 있었으면 해조류가 잔뜩 끼어 정말 바위처럼 보였습니다. 물고기들은 플라스틱 쓰레기인 줄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주변을 오갔습니다. 성게는 정말 바위인 줄 알고 보금자리를 꾸렸습니다.

제주 플라스틱 수중 취재

고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플라스틱 용기 뚜껑 위를 유유적적하게 다니면서 먹이활동을 했습니다. 고동은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우리는 그 고동을 먹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 다시 우리 몸속에 쌓일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연결고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주 플라스틱 수중 취재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바다에 쌓입니다. 하나는 해안 인근에서 직접 버리는 겁니다. 낚싯줄, 낚시용품 포장지, 도시락 등등이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계란판은 누가 해안에서 버리기 어려운 쓰레기입니다. 이런 쓰레기는 육지에서 버려진 쓰레기가 빗물 등으로 쓸려 내려와 바다까지 온 겁니다. 내가 그냥 버린 쓰레기가 흘러 흘러 바다로 갈 수 있다는 걸 바닷속에서는 눈으로 봤습니다.

제주 플라스틱 수중 취재

바다거북이 죽으면서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하나였습니다.

"바다에 정말 쓰레기가 많아"

제주 플라스틱 수중 취재

쓰레기는 모두 우리가 버린 겁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입니다. 저희는 다시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여러분에게 또 이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바다에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지겹다고,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양생물이, 인간이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우리 후손들이 다 떠안아야 할 막대한 짐이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2개입니다. 썩지 않아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플라스틱을 아예 쓰지 않는 게 첫 번째 방법입니다. 하지만, 플라스틱만 한 게 없습니다. 그럼 제대로 버리고, 다시 재활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버리는 양을 줄이려면 재활용률을 높이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선입니다.

재황용률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손형안 기자의 취재파일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불편한 '진실'②] 쉽게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재활용률 높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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