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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파맛 첵스와 인국공, 그것이 약속이니까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요즘 한국 청년들에게 더 화제인 정치인, '펀쿨섹좌'를 아시나요? 일본의 환경 대신(우리나라의 환경부 장관) 고이즈미 신지로를 부르는 인터넷 용어입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들인 그는 가문의 후광으로 29살에 손쉽게 중의원으로 입성한 만큼 오랜 시간 자질에 대한 의문을 받아왔습니다. 지난해 환경 대신이 된 뒤로는 본격적으로 자질 미달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데요. 인터뷰 때마다 각종 망언으로 '환경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 환경 대신'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펀쿨섹좌'라는 별명도 본인의 발언에서 나온 것인데요. 2019년 9월경 환경 대신 취임 직후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러 갔다가 회의 전날에 "기후변화 문제는 Fun하고 Cool하고 Sexy 하게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희대의 망언을 내뱉은 겁니다. 심지어 "그게 대체 뭐냐?" 는 후속 질문에 "그걸 (구구절절이) 설명하라는 상황 자체가 섹시하지 않네요" 라던가 "저는 이제 막 임명되었습니다"라는 답변으로 때워버렸습니다. 이런 쇼킹한 발언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일본에서는 펀쿨섹, 그리고 한국에서는 신조어인 본좌를 조롱 격으로 붙인 '펀쿨섹좌'로 불리게 된 겁니다.

이후 그는 하는 말마다 대 히트를 치며 '짤방'으로 동북아 국가들에서 유행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중에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짤방은 '지키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끄덕)' 입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토를 어떻게 30년 이내에 다 처리하겠다고 호언장담하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내용입니다. 즉, 대안을 생각하기에 앞서 먼저 공약부터 말하고, 약속이니까 지키겠다, 라고 '퉁쳐버린' 겁니다. 그 이후로 이 짤방은 비슷한 상황에 여기저기에 쓰이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자주 쓰이는 두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파맛 첵스''인국공 사태'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파맛 첵스의 기원은 16년 전 켈로그의 '부정 선거' 사건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이벤트로 "시리얼 나라의 대통령을 뽑아주세요"라는 가상 대선 이벤트를 한 건데요. 기호 1번은 기존의 초코맛 첵스, 기호 2번은 험상궂게 생긴 파맛 첵스였습니다. 마케팅팀은 당연히 어린이들이 1번 몰표를 주리라 믿었겠지요.

하지만 반.전.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문이 나서, '장난기 많은 어른들'이 2번에 몰표를 줍니다. 파맛 첵스가 당선되면 켈로그에서 출시할까? 안 할까? 궁금했던 거지요. 생각지 못한 사태에 켈로그는 득표수를 조작해 기존 초코맛을 당선시키고, 아주 오랫동안 소위 '까이게' 되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16년 만에 태진아의 '미안 미안해'를 cm송으로 내며 파맛 출시를 해버린 거죠. 이를 두고 영국의 로이터 통신 등 세계 외신마저 보도하며 '한국이 16년 만에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라고 기사를 냅니다. 이에 반해 인천국제공항 사태는 전 국민이 아실 테니, 굳이 설명을 곁들이진 않겠습니다.

중요한 건, 이 두 사건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시선이 정반대라는 바로 그 지점이니까요.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파맛 첵스와 인국공 사태, 청년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정.반.대.다.

두 사건, 공통점과 차이점이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우선 공통점은 몇 년 전 약속을 2020년에 지켰다는 것일 테고, 차이점은 다들 아시다시피 그에 대한 청년들의 정반대 반응일 겁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켈로그는 거짓 약속을 했다가 뒤늦게 수습하는 것에 가까운 형국이고, 인국공 사태는 약속한 그대로를 지키려는 것뿐인데. 왜 전자는 환영받고 후자는 격렬한 대치가 이루어졌을까요? 첵스는 '별거 아닌 과자일 뿐'이고, 인국공 사태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서? 꼭 그것뿐만은 아닐 겁니다.

두 사태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시선. 그 차이점 중 하나는 약속을 실현함에 있어 이후 그려질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준비하고 설명되었느냐 여부도 중요한 원인일 겁니다. 파맛 첵스의 경우 언제, 어떻게 출시할 것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준비했는지 cm을 통해, 캠페인을 통해 충분히 설명되었고, 파맛 첵스가 출시되었다고, 초코맛의 운신에 문제가 생기지 않음을 우리는 충분히 주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국공 사태는 어떤가요? 분명 저를 비롯한 많은 청년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환영할 일, 더 나아가 비정규직 제로화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약속' 이후에 어떤 준비와 논의가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채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가짜뉴스든 루머든 더 잘 퍼질 수 있었고요.

이렇게 갑자기 '맞닥뜨린' 청년들은 이것을 단지 한 군데 공기업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국공 사태를 '시작으로' 앞으로 쭉 터져 나오진 않을까? 앞으로 이어질 긴 유사 사건들의 시작점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는 거지요. 그 때문에 더 강력하게 대응하는지도 모릅니다. 청년들이 너무 과장해서 생각한다고 보시나요? 글쎄요. 지금의 청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들은 지난 세월 쭉 쌓여온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곪아갈 때쯤 태어났고, 성인이 된 지금 그 파편을 직격탄으로 맞고 있는 세대이니까요.

청년들에게 또 다른 분쟁과 상실을 주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약속'해야 할까요?

어쩌면 바로 옆 나라에 반면교사가 있지는 않을까요? 결과는 약속했지만 그것을 추진할 과정과 근간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던 다소 불안한 약속. 그래서 결국 밈화 되고 말았던 약속. 펀쿨섹좌의 '그것이 약속이니까...' 짤방 속에서, 우리는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재열 네임카드 (수정)


#인-잇 #인잇 #장재열 #러닝머신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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