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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폭발하는 미국 사회, 그에 대한 영화적 해답

김지미 | 영화평론가

2020년 5월 25일, 46세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연일 계속되고 있다. 처음 흑인 인권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한인 커뮤니티는 그 불씨가 어떤 방향으로 번질지 몰라 무척 초조한 마음이었다. 1992년 로드니 킹 구타 사건으로 촉발된 흑백 갈등이 엉뚱하게 한인 타운의 총격 사건과 연결되어 한인 타운의 대참사로 연결된 '4·29 LA 폭동'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약탈과 폭동이 혼재되어 있던 초반의 시위는 이제 평화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뜻을 함께하는 많은 이들이 인종 불문하고 거리로 나와 구호를 외쳤고, 한인들도 시위대에 합류해 목소리를 더했다.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거리에 나선 것은 그만큼 이 문제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13th><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스틸 이미지" id="i201439750"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611/201439750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영화 스트리밍 채널들은 "Black Lives Matter(BLM)-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구호와 관련된 작품들을 선보이며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셀렉션 중 2016년 다큐멘터리 <13th>은 마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소름 끼치는 기시감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1865년 미국의 수정헌법 13조가 제정되면서 노예제는 끝났지만 그 이후 경제·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흑인에게 '범죄자'의 굴레를 씌워 이 시대의 새로운 노예로 전락시켰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노예제'의 붕괴로 공짜 노동력을 얻을 수 없게 된 미국은 죄수의 숫자를 늘려 그 노동력을 충당해갔다. 전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한 미국이 전 세계 수감자의 25%에 달하는 인원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있다. 미디어는 "흑인 남성=범죄자"라는 이미지를 고착시켰고, 권력을 쥔 백인들은 흑인들을 범법자로 몰아 감옥에 쉽게 가두었다. 동일한 범죄를 저질러도 보석금이 없고, 법률 서비스도 받기 어려운 흑인들이 더 많이 감옥에 갇혔다. 단지 위협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사망하는 흑인들의 숫자도 많았다.

<13th>에 담긴 영상에는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와 같은 방식으로 체포된 흑인의 모습도 있다. "I can't breathe(숨 막혀요)"라고 비명 지르고 있는 화면 속 흑인 남성은 플로이드 이전에 같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장면은 조지 플로이드에게 닥친 일이 특별한 불운이 아니라 일상적인 폭력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한 백인은 "백인의 경우, 역사는 우리는 선조들이 선택한 것들의 산물이다. 그러나 흑인의 경우, 역사는 선조들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미국 땅에서 흑인의 역사는 납치, 폭행, 감금, 인신매매를 통해 시작되었다. 잘못 설정된 출발선과 체계적인 불평등으로 인해 이 일그러진 관계는 좀처럼 바로잡히지 못했다.

영화 <저스트 머시><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포스터" id="i201439754"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611/201439754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시위가 폭동과 혼재되어 있던 초기, 워너 브러더스는 오늘의 문제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를 바란다며 <저스트 머시 Just Mercy>(2019)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저스트 머시>는 1980년대 말 앨라배마 주에서 조작된 증언만으로 백인 여성 살해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흑인 남성 월터 맥밀란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 <13th>의 주요 인터뷰이 중 하나인 흑인 인권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실화 기반 영화이다.

브라이언 스티븐슨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한 경찰, 검사 그리고 판사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운다. 성실한 조사를 통해 기소 자체의 부당성을 밝히고 재판 역시 편파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증명함으로써 원심 파기를 이끌어냈다. 그는 맥밀란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감옥에 간 흑인들을 위해 싸웠다. 심지어 그가 변호한 이들 중엔 그저 인상만으로 유죄를 확신 당해 사형을 선고 받은 이들도 있었다.

브라이언은 사형제에 대한 국회청문회에 맥밀란과 함께 참여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사회의 성격은 권력자나 부유층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통해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사회의 가난한 자, 천대받는 자, 범죄자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영상] 조지플로이드 동생

이 글을 쓰는 지금, TV에서는 조지 플로이드의 장례식이 생중계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애도하며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움직임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전과가 있는 플로이드를 왜 영웅 취급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거나, 흑인 인권이 높아지는 것과 아시아인의 인권은 별개라며 선을 긋는 이들도 있다.

조지 플로이드를 영웅이라 일컫는 것은 그가 인격적으로 훌륭했거나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죽음이 잘못된 관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촉매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의 개인이라기보다 그동안 흑인들을 비롯해 차별의 역사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소수민족과 취약계층을 대변하는 이름이 되었다. 실제로 조지 플로이드가 촉발한 미국의 시위는 유럽에서도 침략의 역사적 잔재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끌어내고 있다.

시위는 인권 운동의 도착지가 아니라 시발점일 뿐이다. <저스트 머시>는 취약계층에게 사법 정의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스티븐슨처럼 자신의 재능을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헌신할 수 있는 이들과 이를 지지하는 연대가 필요하다. 들꽃처럼 번지는 변화를 향한 갈망을 보면서 브라이언의 영화 속 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우리의 생각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마음속에 강한 신념이 필요하다. 절망이야말로 정의의 가장 큰 적이다."

생명의 존엄에 대해 다른 권리를 부여받았던 이들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 신념과 응원이 필요한 때다.

인잇 필진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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