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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④ '어린이 안전'보다 앞서는 가치는?

민식이법이 놓친 것들

[마부작침] ④ '어린이 안전'보다 앞서는 가치는?
'민식이법'의 시간이 시작됐다.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된 법의 내용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 교통안전시설을 의무 설치하도록 하고 사고 낸 운전자는 가중 처벌하는 것이다. 시행 즈음에 가중 처벌 조항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나왔고 35만 명이 참여했다. 정부는 약 한 달 뒤인 4월 20일 "다소 과한 우려일 수 있다"면서 사실상 '개정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그럼에도 논란은 가시지 않았다. 민식이법 표결에서 유이하게 반대표를 던졌던 한 국회의원은 20대 국회 임기를 마치기 전 기자회견을 열어 재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앞서 13년 간 어린이 교통사고와 스쿨존 사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또 서울의 스쿨존 불법 주정차 실태를 보도했다. 이어 스쿨존 지정의 문제점과 보완의 필요성을 다뤘다. 마지막인 이번 편에서는 국내외 교통안전 관련 데이터와 정책을 비교해본다.

●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 1위 → 9위

IRTAD(국제 도로교통사고 데이터베이스, International Road Traffic Accident Database)는 국제적 관점으로 교통사고를 바라보고 국가별 비교를 하기 위해 구성된 기구다. 이 IRTAD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 세계 어린이 교통사고를 살펴봤다.

지난 30년 간 세계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1990년 7,463명에서 2018년 1,576명으로 4분의 1 넘게 감소했다. 한국 데이터가 처음 등장하는 1995년부터 보면 어린이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8.8명, OECD 회원국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았다. 당시 회원국 평균은 3.8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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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예스러운 1위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2000년에도 10만 명당 사망자 수 5.9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였다. 2018년에는 그 수치가 0.6명으로 뚝 떨어졌다. 데이터를 제출한 나라들의 평균은 0.8명, 한국은 이 나라들 중에서 아홉 번째로 높았다.

2018년만 따로 보면 우리나라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41명(OECD 통계 기준)으로 2017년 61명보다 20명 감소했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어린이 비율은 1.1%로 22개국 평균인 2.7%의 절반보다도 낮았다. 22개 나라 중에선 18번째였다. 오스트리아가 0.7%로 가장 낮았고 노르웨이 0.9%, 헝가리 1.0% 순이었다. 이스라엘이 10.1%, 유일하게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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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행 중 사망자 수는 여전히 적지 않다. 2017년 기준 14세 이하 인구 10만 명당 보행자 사망자 수는 칠레가 0.79명으로 가장 많았다.(2018년 데이터가 많지 않아 2017년을 분석) 다음은 이스라엘 0.57명, 대한민국 0.54명 순이었다. OECD 평균인 0.23명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후진국형 사고로 불리는 보행사고의 어린이 사망자 비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어린이 교통 안전 수준이 낮다는 말이다.

● 스쿨존 벗어난 통학로는 어떻게? 미국과 일본의 예

스쿨존은 학교 등 시설 주변 300미터 이내의 도로를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통학하는 길은 이를 벗어나기 일쑤다. 초등학생의 평균 통학 거리는 635미터에 이르고 8.9%의 통학 거리는 1킬로미터가 넘는다고 답변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스쿨존은 그나마 안전 대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를 넘어서면 별다른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미국은 대부분 주에서 학교 주변 500미터를 스쿨존으로 지정한다. 이와 함께 '안전한 통학로'-SRTS(Safe Routes To School)라는 공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통학로 지도를 만드는 게 필수다. SRTS의 통학로 지도는 좁게는 800미터, 넓게는 1,600미터 범위로 제작되는데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통학로를 보여주고 관리자에겐 사고 취약 지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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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스쿨존은 초등학교, 유치원, 보육원 등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로 설정된다. 여기에 덧붙여서 학생들에게 개인 통학로를 지도에 표시하게 하고 학교 측은 이들 통학로를 종합해 안전지도를 제작한다. 위험 지역이 포함된 길로는 아이들이 다니지 않도록 유도함으로써 스쿨존을 넘어 통학로 전체를 통합 관리하도록 하는 제도들이다.

● 통학버스는 앞질러선 안 된다

통학버스 정책 또한 중요하다. 미국은 통학버스를 스쿨존과 달리 연방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데 주변 차량에 대한 엄격한 법 적용으로 정평이 나 있다. 통학버스에서 어린이가 승하차할 때, 주변 차량은 버스를 추월할 수 없다.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캐나다도 통학버스에서 어린이가 승하차할 때는 뒤에 있던 차량은 물론 중앙선 넘어 마주 오던 차량 역시 20미터 이상 간격을 두고 정차해야 한다. 통학버스에 아예 카메라를 설치해 따로 단속 않더라도 규제할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도 관련 법이 있다. 2014년 개정된 도로교통법 51조 '어린이 통학버스의 특별보호'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어린이나 영유아를 태우고 있다는 표시를 한 상태로 도로를 통행하는 어린이통학버스를 앞지르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통학버스를 발견한 운전자는 일시 정지 후 안전을 확인한 뒤 서행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하지만 운전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데다 단속 건수도 적어 유명무실한 상황, 최근 발표된 어린이 안전 종합 대책에는 이 특별보호규정 위반자를 집중 단속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 '어린이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새로운 학교가 들어설 때 교육부는 교육환경 평가를 통해 최적 입지를 선정한다. '교육환경 평가서 작성 등에 관한 고시'를 보면 학생들의 통학 거리가 비교적 균등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단위 통학권의 중심에 배치하도록 되어있다. 통학로 역시 주간선도로와 보조간선도로를 횡단하지 않도록 해 통학 안전을 확보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이유로 지키지 않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어린이 통학 안전보다 분양 논리로 학교 부지를 결정하면서 '위험한 통학로' 가능성도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통학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강력한 기준을 마련하고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우석 경기연구원 북부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통학로에서 횡단하는 도로는 최대 4차로를 넘지 않도록 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학교 위치도 통학거리를 고려해 배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어린이 교통 안전 대책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정부 의지대로 단속이 잘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심재익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스쿨존으로 지정된 도로가 교통량이 적은 생활권 도로라면 단속을 해도 민원이 없을 텐 데 지금처럼 통행량 많은 간선도로가 대상이라면 단속 정책을 펼치기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심 위원은 "대체도로가 없는 상황에서 스쿨존을 통과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민식이법이 놓친 것들
스쿨존 내에서 감속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시설물 설치도 필요하다. 심 위원은 "학교 앞 횡단보도는 무조건 고원식 횡단보도(주변 길보다 10cm 정도 높게 설치)를 설치해 운전자에게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라면서 "스쿨존 내 제한속도라는 법적 제재와, 시설을 통한 물리적 제재를 함께 적용해 효과를 높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관심 못 받는 또 다른 교통약자-'노인'

미래의 동량인 어린이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부작침]이 짚어봤듯 미진한 점도 적지 않으나 계속 보완해가면 된다. 하지만 관심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심각한 수준의 교통약자가 바로 노인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다. 인구 10만 명당 25.0명으로 회원국 평균인 7.7명의 3배 넘게 많다.(2017년) 최소인 노르웨이(3.7명)와 비교하면 7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2000년 이후 18년 간 이 부문 1위를 지키고 있다는 불명예 기록도 갖고 있다. [마부작침]은 어린이 교통 안전에 이어 다음 달엔 노인 교통 안전 문제를 들여다보려 한다.

취재: 심영구, 배여운, 정혜경, 안혜민 디자인: 안준석 인턴: 이유민, 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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