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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이 뭐길래…국방부는 자존심도 없나

군과 국방부는 지난달 19일로 예정됐던 합동화력훈련을 사전에 알리지 않고 있다가 기자들의 취재가 시작되자 제대로 설명도 못하고 전전긍긍했습니다. 때마침 날씨가 궂다는 기상예보에 훈련은 연기됐습니다. 이를 두고 몇몇 매체는 "훈련 비공개와 연기는 북한 눈치보기"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국방부는 즉각 "군의 정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 과장 보도한 데 유감을 표명한다", "해당 매체들을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어 언론중재위 제소를 위한 절차를 차곡차곡 밟았습니다.
국방부의 스마트 부대 보도자료 중 일부. 평양 시내 지형정보 생성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 있다.
그런데 어제(9일)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국방부가 언론중재위 제소 계획을 전격 취소한 겁니다. 대가가 있었습니다. 어제 오후 3시로 엠바고가 걸렸던 「지능형 스마트 부대」 보도자료에서 "3D 지형정보 생성시간 단축과 관련해 제시된 평양 시내의 사례는 기사로 다루지 않기"입니다.

국방부가 왜곡, 과장 보도라고 목청 높이며 언론중재위로 가다가 되돌아오면서까지 왜 평양 시내 3D 지형정보 생성시간 단축 사실을 지우려고 했을까요? 국방부가 여러 부서 회람하고 심사숙고해서 보도자료에 적시한 내용이었는데도 말입니다. "평양 들여다볼 궁리한다"고 북한이 시비 걸까 우려한, 북한 눈치보기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북한은 하나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집권 세력이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대북 인식이 180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대북 정책을 진보 정부는 로우키(low key)로, 보수 정부는 하이키(high key)로 각각 밀어붙입니다. 대신 진보정부는 북한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보수 정부는 안보팔이라는 비판을 또 각각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 비판이 나오면 정부는 자기 진영의 대북 인식과 철학, 그리고 군의 역할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순서인데 이번 정부의 국방부는, 특히 4·15 총선 이후에는 멱살부터 잡습니다. 반대 진영뿐 아니라 중도도 용납 않겠다는 듯… 그러다가 스마트 부대 보도자료에 눈치 없이 평양을 써놓는 바람에 톡톡히 체면 구기고 억지로 감췄던 민낯도 드러냈습니다.

정경두 국방장관과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능형 스마트 부대 행사에서 증강현실 지휘통제 플랫폼을 체험하고 있다.

● 지능형 스마트 부대가 뭐길래

정경두 국방장관은 어제 공군 20전투비행단을 찾아 지능형 스마트 비행단 구축 현황을 둘러봤습니다. 이에 맞춰 국방부는 지능형 스마트 부대를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국방부는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반한 국방 분야의 혁신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보도자료는 23페이지로 길고 상세했습니다. 사달은 12페이지 <3차원 합성전장 가시화체계>에서 벌어졌습니다. 위성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3D 지형정보를 생성해 군이 활용한다는 내용입니다. 보도자료는 평양 시내의 경우 위성 영상 몇 컷으로 3D 지형정보를 생성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300시간에서 1시간 반으로 대폭 단축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위성 영상을 이용해 순식간에 3D 지형정보를 제작할 수 있다는 건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전문 지식 축에도 못 낍니다. 군이 이 기술을 확보하면 제일 먼저, 가장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곳은 구구절절 말할 필요도 없이 김정은 위원장이 있는 평양입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스스로 작성하고 재독(再讀), 삼독(三讀)했을 보도자료 중 "평양 시내 10㎢ 3D 제작 : 300시간→1.5시간"이란 세부 설명을 새삼 읽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평양을 콕 찍은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자세히 읽으니 누군가의 눈치가 크게 보였나 봅니다.

국방부는 서둘러 유력 매체들에게 평양 시내 3D 지형정보 제작 시간 단축 부분은 기사화하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지난달 합동화력훈련의 비공개 및 연기를 북한 눈치보기라고 비판한 매체들에게는 '언론중재위 제소 취소'를 대가로 내놨습니다. 국방부 뜻대로 됐습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 부대 기사에 평양 관련 내용은 쓰지 않는다니까 대승적 차원에서 제소를 취소한 것"이라며 "딜(deal)도 아니고 기사 바꿔먹기도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눈치보기냐"는 질문에는 입을 닫았습니다.

● 진보 정부와 북한 눈치보기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4일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하고 10·4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듬해 이명박 정부로 바뀌고 10월 1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10·4 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노 대통령은 1시간 남짓 연설을 통해 참여정부의 대북 인식과 정책을 알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을 큰집, 북한을 작은집에 비유했습니다. 돈도 많고 사람도 많은 큰집이 작은집에 좀 너그럽게 내줘야 대화도 되고 협력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작은집과 1대 1로 주고받기하겠다는 상호주의는 점잖게 이야기해서 대결주의이고 실상은 반공주의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이어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최대한 작게 했고 북한과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있는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도 수용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6자 회담 등 각종 국제 대화에서 북한을 변론하는 데 애썼던 사실도 털어놨습니다.

진보 정부는 북한을 현상유지 체제로 여깁니다. 잘 관리하면, 체제 안전만 보장해주면 대화도 하고 협력도 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일은 어지간하면 자제합니다. 이를 두고 반대 진영은 북한 눈치보기라고 매도하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숙명입니다. 감내하고 설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 보수 정부와 안보팔이

이명박 정부는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대화도 협력도 하기는 하겠지만 먼저 북한이 핵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결주의, 반공주의라고 비판한, 1대 1로 주고받는 상호주의가 이명박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박근혜 정부도 오십보 백보입니다.

보수 정부는 북한을 현상타파 체제로 여깁니다. 북한은 대남적화전략을 포기한 적 없고 언제든 기회를 틈타 적화통일을 시도할 것으로 봅니다. 게다가 핵까지 갖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대화보다는 압박을 앞세웁니다. 압박용 여론 형성을 위해 소소한 긴장, 충돌도 부풀리기 일쑤입니다. 이를 두고 반대 진영은 안보팔이라고 비판합니다. 역시 어쩔 수 없는 노릇… 열심히 자기 논리를 이해시키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진영별 극과 극의 대북 인식과 정책 중 어떤 게 옳고 그른지 단칼에 가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비판을 수용해 토론하다 보면 진영 불문하고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하는 올바른 대북 인식과 대북 정책의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은 움틀 터. 지금 국방부처럼 비판에 귀 닫고 처지 군색해지자 '기사 바꿔먹기' 꼼수나 부리면 정부의 대북 인식과 정책의 공감대는 급속도로 옅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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