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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급제동 걸린 리커창 '다완차 노점 경제'

중국 베이징의 유명 관광지이자 전통 찻집인 라오셔차관(老舍茶館)에서는 '다완차(大碗茶)'를 팔고 있습니다. 다완차는 '사발로 파는 차'를 말하는데 라오셔차관의 창업자 인성시(尹盛喜)와 관련이 있습니다. 개혁개방 직후인 1979년, 베이징의 공무원이었던 인성시는 '철밥통' 직장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하방운동에서 돌아온 20명의 청년 구직자들을 모아 거리에서 다완차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거리에서 물이나 차를 마실 만한 곳이 없다는 것에 착안했습니다. 천막을 치고, 탁자와 의자, 주전자를 설치한 뒤 다완차 1잔당 2펀(分)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에 나섰는데 개장 첫날 3천 잔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다완차의 성공 이후 많은 청년들이 노점에 뛰어들었고, 다완차뿐 아니라 의류 등 다양한 상품을 파는 노점이 생겨났습니다.

따완차 (사진=바이두)

● 리커창 "노점 경제는 중국의 활력"

40여 년이 지난 지난달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다완차'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심각한 실업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인민 대중 속에는 무궁한 창조력이 있다. 개혁개방 초기 지식청년들이 대거 도시로 되돌아왔는데, '다완차' 한 잔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취업을 해결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2주 전 기사를 보니, 우리 서부 도시가 현지 규범에 따라 3만 6천 개의 유동 노점상을 설치한 결과, 하룻밤 사이에 10만 명이 취업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월부터 규제를 완화해 노점상 활성화에 나선 청두시를 예로 든 것이었습니다.

리커창_취재파일용

이어 리커창 총리는 지난 1일 산둥성 옌타이 시찰에서도 노점상과 얘기를 나누면서 "노점 경제, 구멍가게 경제는 일자리의 중요한 원천이고 중국의 활력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동안 노점상은 도시환경 정비라는 목표 아래 단속과 정리의 대상이었지만, 앞으로 노점상의 영업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됐습니다. 또한 중국 정부가 장려해온 야간 경제 활성화 방침에도 맞는 만큼 여러 지방들이 노점상 활성화에 나섰습니다.

리 총리의 '노점 경제' 행보는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한편으로는 소비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도시 미관보다는 내수 회복과 일자리 늘리기가 급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대외 불확실성을 이유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지 못했고, 올해 도시 실업률 목표와 도시 신규 취업자 목표를 작년보다 후퇴한 6.0%, 900만 명으로 잡았습니다.

● 관영매체 "노점 경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아"

그런데 지난 6일 베이징시 관영매체인 베이징일보는 '노점 경제'는 베이징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더러운 거리와 소음, 장사꾼들의 거리 점거 등 도시의 난치병이 다시 생긴다면, 그동안의 성과가 수포로 돌아가고, 수도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송욱 월드리포트용

베이징시 도시관리국은 노점상이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는 불법 행위 등에 대해 철저하게 단속하고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방침도 밝혔습니다. 베이징시가 리커창 총리의 행보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인데, 환구시보와 인민일보, CCTV 등 다른 관영매체들도 '노점 경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면 안 된다', '1선 도시에서 노점 경제를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베이징시 편을 들었습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는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지난 4일 주요 관영매체에 '노점상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진 출처=텅쉰왕

홍콩과 서방 매체들은 베이징시 당서기가 시진핑 주석의 측근인 차이치인 것에 주목하며 리 총리와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갈등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올해까지 '전면적 샤오캉(小康 -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것) 사회 건설'을 공언해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샤오캉 사회 건설의 경제 목표인 '2020년까지 GDP를 2010년의 2배로 만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그동안의 중점 추진사항이었던 '빈곤 탈출' 등의 성과를 내세워 샤오캉 사회 건설 목표를 이미 달성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 총리는 이번 전인대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1인당 연간 평균소득은 3만 위안(약 519만 원)에 달하지만 6억 명의 월수입은 1천 위안(약 17만 3천 원)밖에 안 된다. 이 돈으로는 어지간한 도시에서 집을 빌리고 세를 내는 것조차 버겁다"고 말했습니다.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경제 발전과 빈곤 퇴치의 어려움을 토로했다는 평가지만, 한편에서는 시 주석의 공적을 깎아내렸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중국의 '노점 경제'를 둘러싼 논란이 단순히 베이징시의 반대 의견인지, 공산당 내부의 사전 조율이 안된 것인지, 아니면 시 주석과 리 총리 간의 정치 갈등의 산물인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중국 서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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