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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귀여운 동물 영상,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지난 5월 초 수의대생들이 운영하던 '갑수목장'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사회적 논란이 됐다. 한때 구독자가 53만 명에 이르렀던 이 채널 운영자들이 펫샵에서 구매한 동물을 유기동물로 둔갑시켜 거짓 영상을 올렸다는 의혹이 폭로된 것이다. 수월한 영상 촬영을 위해 동물을 굶기는 등 동물학대를 일삼았고 유기동물을 이용하여 후원금을 모집한 뒤 개인적인 용도로 이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채널의 운영자는 2명의 수의대생인데, 그중 한 명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유기동물이 아닌 펫샵에서 구입한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둘은 현재 동물학대와 사기 등의 혐의로 동물단체에 고발당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갑수목장
동물학대 의혹에 휩싸인 수의대생 유튜버 '갑수목장'

사실 '갑수목장' 관련 논란이 언론에 보도되기 한 달 앞서 이번 사건의 고발자들로부터 먼저 연락을 받았다. 사건이 공론화될 수 있도록 몇 가지 조언과 도움을 주었는데 내 조언이 민망하리만큼 훨씬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뒤 제보자들과 고발을 진행한 동물단체를 통해 확인해보니 갑수목장 운영자들에 대한 동물학대와 사기죄 처벌은 쉽지 않다고 한다. 관련 의혹에 대한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태가 이슈화한 뒤 "운영자 두 사람은 수의사가 되어선 안 된다"라는 여론이 형성됐고 청와대 국민 청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둘은 머지않아 수의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소속 학교의 제적 처분'을 기대해 볼 순 있다. 학교가 이들을 제적한다면 수의대를 졸업할 수 없게 되고 수의사 국가시험 응시자격도 박탈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다른 수의대에 입학하는 방법은 있다. 과거 고려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이 다른 의과대학에 입학한 것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이 공분했지만 둘의 제적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는 7만 명에 그쳤고, 관련 보도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제보자들과 동물단체 입장에선 힘이 빠지는 상황이다. 경찰 수사와 학교 차원의 진상조사가 진행 중인만큼 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제2, 제3의 갑수목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동물 관련 유튜브 채널이 빠르게 늘고 있고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염려스러운 채널이 자주 눈에 띈다. 귀엽고 신기한 영상이 구독자들로부터 관심을 받다 보니, 특정 상황을 억지로 연출하거나 동물의 습성에 반하는 실험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상의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만큼 유튜버들은 계속해서 자극적인 동물 영상을 제작할 것이다. (고발장에 따르면 '갑수목장'이 유튜브로 벌어들인 수익은, 후원금을 제하고도 약 2억 5천만 원에 이른다.)

결국 구독자들이 똑똑해져야 제2, 제3의 갑수목장 사건을 막을 수 있다. 단순히 귀엽고 신기하다고 동물 영상을 즐겨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동물의 원래 습성에 반하는 영상은 아닌지 한 번씩 생각해보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인잇 필진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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