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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요즘 시장에 가보셨어요?

김종대|건축가.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덩달아 전통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장은 대형마트나 쇼핑몰과는 달리 지금과 같은 긴급재난 상황에서 능동적인 대처가 어렵기 때문에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아주는 건 소상공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요즘 전통시장 방문해 본 사람들이라면 예전의 풍경과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단 분위기도 밝아졌고 상품도 다양해졌다.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잠시 쉬었다갈 수 있는 쉼터도 있고, 주말이면 버스킹 같은 문화공연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이벤트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전통시장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사업은 시장을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닌 주민들 삶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재정립하기 위해 시작됐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고, 이때 재래시장에서 전통시장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각각의 시장이 가진 문화적인 요소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 갔다.

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떡집 사장님의 꿈을 반영한 '비행기 간판', 간판의 내력을 궁금해하는 소비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문전성시' 첫 사업인 수원의 못골 시장은 문화의 옷을 입고 변신을 거듭했는데 변화의 중심에는 스토리가 있었다. 상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 각자의 사연을 담은 간판을 내걸었고, 시장 내 방송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장을 보러온 소비자들은 낯설지만 매력적인 간판에 대해 질문을 이어갔고, 간판에 얽힌 꿈과 희망에 공감했다. '시장 라디오'는 상인들이 직접 DJ가 되어 자신의 인생극장을 들려줬고, 이는 각 방송국의 취재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한 상인들로 조직된 상인 합창단은 유명세에 힘입어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시장의 본질은 물건을 파는 곳이라며 문화적 접근 방식에 의구심을 갖던 사람들도 전통시장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덩달아 매출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문화의 힘'을 인정하게 되었다. 못골 시장에서 시작된 '문화를 활용한 시장 활성화 전략'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서울 서촌에 위치한 통인 시장의 명물 '엽전 도시락'은 반찬가게의 판촉과 시장 인근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반찬들을 500원 단위로 소분하여 밥과 함께 판매했는데, 매일 "오늘 점심은 뭘먹지?"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다양한 반찬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을 직접 고르고 담는 즐거움은 판매자에겐 수고를 줄일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소비자들은 식사 후 남은 음식물 처리까지 본인들이 알아서 하고 가는데, 일반 음식점이라면 당연히 하지 않을 일도 불평 없이 할 수 있는 건 '도시락 카페'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한번은 도시락 카페를 이용하던 중, 엽전 꾸러미를 묶었던 철끈을 빈 종이컵에 담아놓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물어보니 '시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데 철끈 하나라도 재사용하자'는 의미에서 손님들이 반듯하게 펴두고 간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통인 시장의 '도시락 카페'는 시장에 숨어있던 공동체 문화의 가치를 발굴했기에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통인 시장에서만 쓸 수 있는 '도시락 카페' 엽전은 동전 수집 애호가들의 수집 대상이 되었다. (사진=통인시장 홈페이지 캡쳐)

** 통인 시장 명물 '엽전 도시락'
통인 시장 풍경은 다른 시장들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 손에는 엽전, 다른 한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다니며 도시락 카페 가맹점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 도시락에 담아먹을 수 있다. (엽전은 엽전 판매처에서 구입 가능, 1개당 500원)



전통시장 활성화 전략에서 활용된 문화의 힘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이론에 비추어 볼 때도 유효하다. 하버드대학 교수인 조지프 나이(Joseph S. Nye)는 군사력이나 경제 제재 등의 물리적 힘인 하드 파워(hard power)와는 달리 매력과 공감을 통해 얻어지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21세기를 주도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덴마크의 미래학자인 롤프 옌센(Rolf Jenssen)은 앞으로 도래할 미래는 꿈과 이야기 등의 감성적 요소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덜 익은 바나나를 보관하던 창고 건물의 이야기를 상품화한 영국 Sevendials Market 홍보물.

아직 재난지원금이 남아있다면 오랜만에 집 주변의 전통시장을 찾아 소상공인을 돕고 달라진 시장 분위기도 직접 피부로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 편집자 주 : 김종대 건축가의 '건축 뒤 담화(談話)' 시리즈는 도시 · 건축 · 시장 세 가지 주제로 건축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습니다. 격주 토요일 '인-잇'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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