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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육아 휴직합니다" 남자도 당당히 외칠 수 있길

파파제스 |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예쁜 딸을 키우는 아빠, 육아 유튜버

독.박.육.아.

이 단어를 처음 들은 건 4년 전이었다. 지인이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책 제목이 <독박 육아>였다. 그 당시 나는 미혼에 싱글이라 육아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음에도 '독박'이라는 표현에 덜컥 겁이 났다. 독박이란 '혼자서 모두 뒤집어쓰거나 감당한다'라는 뜻이 아닌가. 아이가 생기면 당연히 부부가 함께 키우는 줄로만 알았는데 <독박 육아>라는 제목의 책이 나올 정도라니 '뭔가 잘못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결혼할 아내만큼은 '독박 육아'를 시키지 않겠다고. 그땐 그게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인지 알지 못했다.

'독박 육아'라는 제목의 책까지 나오다니,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아내는 임신 중반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임신으로 가뜩이나 출퇴근이 힘든 상황에서 사무실이 멀리 이전을 했고 동료 직원도 관두는 바람에 업무가 가중되었다. 출근을 멀리 할 수도, 업무를 더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일까? 당시엔 아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육아 휴직을 신청할 수 있었다. (2020년 2월 28일부터는 부부가 동시에 육아 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만약 아내가 휴직을 했더라면 나는 계속 직장을 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곧 회사에 육아 휴직 신청을 했고 몇 달 후 어여쁜 딸이 태어나면서 아내와 함께 본격적으로 육아에 전념하게 됐다.

** 육아 휴직은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근로자가 자녀 1명당 1년 동안 휴직을 할 수 있는 제도로 고용노동보험이 가입된 사업장에서 180일 이상 일 한 근무자는 남녀 누구나 신청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아이 보는 것은 회사 일보다 힘들었다. 회사원 역할에는 익숙했지만 부모 역할은 처음이었다. 아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기저귀 가는 것에서부터 목욕, 트림 시키기, 잠재우는 것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특히 새벽에 잠 못 자고 우는 아기를 달랠 때면 '살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익숙해지긴 했지만 처음으로 경험한 육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아내 혼자서 해야 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쉬는 시간은 있고 아무리 일이 많아도 퇴근은 하지만 육아에는 퇴근이 없다. 쉬는 시간은 고사하고 밥 차릴 시간마저 주어지지 않아 끼니를 대충 때울 때도 있었다. 하루 종일 울리는 재난 경보 문자처럼 아기 울음소리에 집안은 늘 비상이었다. 우는 아기를 안고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눕혀 놓으면 다시 울고, 기저귀를 갈아줘도 울고, 젖을 줘도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100일 전까지 육아 현장은 대게 이런 모습이었다.

다행히 나는 아내와 공동육아를 해서 상황이 그나마 나았지만 혼자서 독박 육아를 했다면 나조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혼자 아기를 보면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고, 잘 씻지 못하고 심지어 화장실 갈 때조차 아기를 안고 일을 봐야 할 정도로 독박 육아는 외롭고 처절했다. 만약 나 혼자 육아를 했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졌을 것이다. '산후우울증이 이래서 생기는구나'하는 것도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혼자서 독박 육아를 했다면, 나 또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어려움도 있었다. 휴직 기간 동안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이 매우 컸다. 고용노동부에서 지급하는 육아 휴직 급여는 회사 월급과 차이가 많이 났다. 육아 휴직 급여는 첫 3개월간 상한 150만 원, 4개월부터 12개월까지는 120만 원으로 정해져 있는데 그마저도 75%만 지급되고 나머지 25%는 복직 후 6개월 이후에 지급되기에 실수령액은 3개월간 1,125,000원 4개월부터는 90만 원이었다. 우리나라 3인 가족 최저 생계비가 약 230만 원인데 비해 육아 휴직 수당은 90~110만 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없었으면 아내와 나 누군가는 당장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복직하지 않고 1년간 육아 휴직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육아의 힘듦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육아 부담을 몽땅 전가하고 나 혼자 출근할 수 없었다. 대신 그동안 저축했던 돈을 아껴 쓰며 생활했다. 돈은 나중에라도 벌면 되지만 지금 이 천근만근 같은 무게를 오롯이 혼자 견디게 할 수는 없었다. 만약 따로 였다면 아내는 집에서, 나는 회사에서 각자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공동 육아로 서로 짐을 덜었기에 싸움 한 번 크게 한 적이 없었고 누구 하나 외롭지 않게 세 가족 모두 몸과 마음 건강히 잘 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육아 휴직 기간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뒤로 나는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 지인들에게 육아 휴직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회사 여건 등 육아휴직을 길게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3개월 정도만이라도 육아 휴직을 통해 부부가 같이 아이를 보면 좋을 것이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 100일 정도가 지나면 밤잠을 길게 자기 시작하고 생활 또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된다. 최소 그 시간 동안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할 수 있다면 부부 사이에도 100일의 기적처럼 동지애가 생기고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다.

무엇보다 육아 휴직 기간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남자들이 육아 휴직을 쓰기까지 여전히 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회사의 눈치와 진급, 고과에서의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고 중소기업의 경우 남자 육아 휴직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라고 한다. 최저 생계비보다 턱없이 낮은 육아 휴직 급여와 휴직자의 부재로 남은 사람들에게 업무가 가중되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서는 '출산육아기 대체인력 지원금(월 80만 원/대기업 30만 원)'으로 사업주로 하여금 출산 휴가자/육아 휴직자를 대체할 인원을 고용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매번 저출산 문제가 지적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있는 육아휴직 제도라도 잘 보완하여 실제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없게끔 정부와 기업이 노력해주길 바란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책임이기에
우리 아빠들도 당당하게 '육휴'를 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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