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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당신 곁에도 장재열이 있다면?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장재열? 진짜 이름이에요? 본명? 진짜 장재열? 예명 그런 거 아니고?"

"네?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명인데요... 왜요?"

사람들과 통성명을 나누다 보면, 꽤 자주 듣는 말입니다. 정확히는 6년 전쯤부터 말이지요. 2014년에 방영된 '괜찮아 사랑이야.' 라는 드라마를 보신 적 있는 분들이라면 기억하실 겁니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이었던 배우 조인성 씨의 이름이더군요. 이름만 비슷했던 게 아닙니다. 극 중의 장재열은 책을 쓰는 작가가 본업이고, 라디오 DJ를 겸합니다. 저는 상담가가 본업이지만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했고, 이따금 라디오 DJ를 맡기도 했었으니까, 이름과 더불어 직업까지 비슷한 셈이지요.

하지만 결정적인 공통점은 두 장재열 모두 정신장애를 겪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름이 같고, 직업이 유사하고, 정신장애를 가진 경험이 있는' 드라마 속의 장재열과 현실의 저에게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곤 했던 모양이에요. 물론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외쳤지요.

"조인성 씨랑 전 얼굴이 완전 180도로 다르잖아요!"

하지만 내심 궁금하긴 하더군요. 나와 같은 이름의, 같은 직업의, 또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까지 같은 그 장재열은 어떻게 자신의 정신장애를 직면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뭘까? 마침 최근엔 코로나19로 쉬는 날도 많아지고 해서 해당 드라마를 정주행 해보았는데요, 제 의문에 답이 될 만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장재열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앓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제 병을 백 명 중 한 명이 걸리는 흔한 병이며, 불치병이 아닌 완치가 가능한 병이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믿고,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재열입니다. 저는 조현병을 앓고 있습니다."<br><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사진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스틸컷)" data-captionyn="Y" id="i201428849"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508/201428849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극 중 장재열이 라디오 생방송 중에 직접 밝히는 장면이었지요. 일종의 커밍아웃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많은 연예인이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고백하고 있어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이런 식의 악플이 따라붙곤 합니다. "그 정도로 돈 벌면 그 정도는 힘들어도 되는 거 아니냐." "누가 너보고 연예인 하랬냐? 제 발로 연예계 들어가 놓고 무슨..."

어떠세요? 여러분도 유명인, 연예인이 자신의 정신장애를 고백하면, 반감부터 드시나요? 측은지심이 드시나요? 또는 별 관심이 없으신가요? 아마도 세 번째 입장이 제일 많으실 겁니다. 사실 좀 먼 나라 이야기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 친구, 가족이 내게 커밍아웃을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할 것 같나요?

아마 '내 주변엔 그런 사람 없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주변엔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작년 기준, 주요 정신장애로 진료를 받는 환자는 최소 170만 5,619명으로 집계되었기 때문이지요. 대전광역시 전체 인구보다도 많은 인원 즉, 인구 100명 중 3명은 이미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고, 처방받고 있다는 겁니다. 5년 만에 31%가 늘어났다고 하지요. 심지어 20대는 5년 만에 90.6%가 증가해서 증가율 1위라고 말합니다. 내 주변에 20대가 있다면, 그들 10명 중 1명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는 거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정신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지금, 이들은 '비주류'가 아닌 사회의 실존하는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가까운 친구가 처음으로 당신에게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너에게 처음 말하는 건데, 나 정신과에서 처방을 받고 있어." 라고요. 문제는 이 첫 '커밍아웃 대상'이 환자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첫 고백에서 비난받거나, 외면당하면, 그 트라우마로 인해 영영 자신의 장애를 숨겨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나의 무관심한 반응 하나가, 한 사람에게는 강력한 낙인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다행히, 극 중의 장재열에게는, 공효진이라는 지지자가 있었습니다. 현실 사회의 저 장재열에게는, 가족들이 있었지요. 두 지지자 간의 공통점은 굳이 너무 안쓰럽게 여기지도, 특별 대우하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 네가 그것이 있구나. 라고 '인지'해주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그 덕에, 두 장재열은 정신장애를 잘 보듬어 안고, 사회의 일원으로 무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사랑이야 포스터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분 곁에도, 언젠가 제3의 장재열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의 첫 커밍아웃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을 가장 믿고 의지하던 후배, 가족, 친구 중 누군가가 당신에게 처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정신장애인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중이니까요. 그들에게 여러분은,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드라마 속 대사를 남기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아마도 '좋은 지지자'가 되기 위한 작은 힌트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장애 가졌다고 차별대우 안 할 테니, 특별대우도 바라지마."  -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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