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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로나19에 바닥 뚫린 원유시장…동학개미들의 승리는 계속될까

WTI 가격 추이, 4월 20일 마이너스 37달러로 붕괴

● "돈 줄 테니 원유 가져가"…코로나19에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

지난 4월 20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중질유(WTI) 5월물 가격이 1배럴(158.9리터)에 마이너스 37달러까지 하락했다. 만기가 임박한 5월물 원유 선물을 사면 배럴당 37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계약조건이다. 일부 투자자들이 미리 사둔 원유 선물의 만기가 돌아왔지만 매수세가 없자 돈을 주고서라도 계약한 원유 선물 매각에 나선 것이다. 매입한 원유 선물은 반대매매(매도)를 통해 정산하지 않으면 원유 실물을 인수해야 하지만, 원유를 쌓아둘 저장탱크마저 사라지면서 다급해진 원유 선물 매수자들이 돈을 주고서라도 보유 선물 계약 처분에 나선 것이다.

WTI 가격은 다시 반등해 플러스로 돌아섰지만 아직도 배럴당 10달러 중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 12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10개 비OPEC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가 5월부터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합의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유 가격 부양을 위해 연일 트윗을 날려 대고 있지만 폭락한 원유 가격을 부양하는 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달 초 골드만삭스가 원유 가격을 한 자릿수, 최악의 경우 마이너스까지 갈수 있다고 전망했을 때 대부분 투자자들이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골드만삭스의 예측은 2주일 만에 현실이 됐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생산과 유통, 소비 등 대부분 경제활동이 중단돼 원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코로나19 이전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원유는 하루 1억 배럴이었다. 코로나19 이후 하루 원유 소비는 7천100만 배럴로 29%, 2천900만 배럴 정도가 감소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감소한 원유 소비 규모가 하루 500만 배럴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19가 초래한 원유시장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중동과 남미, 북해의 심해 유전 등에서 하루 1억 배럴씩 쏟아져 나오는 원유는 경제활동에서 필수적인 검은 황금(black gold)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적 가치를 상실하고 생산자들이 서로 떠넘기기를 원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육지와 해상의 원유 저장시설이 꽉 차면서 원유를 가득 싣고 세계 바다를 떠도는 유조선은 60여 척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케이플러는 27일 현재 해상 유조선에 적재된 원유는 지난달 1일보다 76% 늘어난 1억 5천300만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석유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석유 재고는 지난 한 주 동안 1천만 배럴 증가해 5억 1천만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치 1천60만 배럴보다 적지만 재고 증가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1일부터 경제활동을 재개한다고 발표했지만,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 명을 넘어서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제활동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무디스는 28일 발송한 투자가이드에서 원유 감산 합의로 수급 조절에 도움이 되겠지만, 수요의 급속한 증가가 따르지 않는다면 가격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무디스는 올해 서부텍사스중질유(WTI) 평균 가격은 30달러, 내년 평균 가격은 40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의 원유 가격

● 160년 전으로 돌아간 원유 가격…가격 전쟁 종식될까?

원유 가격은 1970년대 이후 급등락을 거듭했다. 1973년 아랍 국가들의 석유 금수 조치, 1979년 이란 혁명과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0년 재스민 혁명 등 이변이 일어날 때 마다 급변동하면서 세계 금융시장도 동반 급등락했다.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급락했던 원유 가격은 중국 등의 수요 증가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풀린 막대한 돈의 상품시장 유입으로 다시 급등했다. 이런 가격 등락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OPEC 국가들과 러시아가 석유시장을 주도했다.

사우디-러시아-미국의 세계 원유시장 점유율

하지만 2010년대 나타난 미국의 '셰일붐'은 석유시장 판도를 바꿔 놓았다. 암반에서 석유를 채취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능해진 '셰일붐'으로 2018년 미국은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은 석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했다.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천200만 배럴을 넘어섰다.

국가별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

셰일가스에 남미의 가이아나(Guyana), 북유럽 노르웨이, 브라질 등에서 산유량이 늘면서 원유가격이 하락하자 2016년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석유수출국기구 국가들과 OPEC+를 구성하고, 산유량 조절에 나섰다. 하지만 감산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배럴당 60달러대에서 원유 가격이 유지되면서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결과를 초래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러시아는 지난 3월 원유 감산 합의를 아예 철회했다. 여기에 화가 난 사우디아라비아는 가격은 낮추고 공급을 늘리는 방법으로 원유 가격 전쟁을 선포했고, 원유 가격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사우디와 러시아 간의 가격 전쟁마저 발생하면서 원유 가격은 폭락했고, 공급이 급증한 원유를 쌓아둘 곳도 없어지자 선물시장에서 결국 마이너스로까지 떨어진 것이다.

지난 160년 간 원유의 실질 가격 추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물가 상승률을 뺀 원유의 실질 가격은 미국에서 남북 전쟁이 발생한 160년 전 1861년,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으로 원유 금수 조치가 발표되기 직전인 1970년대 초반과 같은 수준이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원유 시추업체 화이트닝 페트롤륨(Whiting Petroleum)에 이어 해양 시추업체인 다이아몬 오프쇼어(Diamond offshore)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지금과 같은 저유가가 지속된다면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 수백 곳이 파산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원유 컨설팅업체인 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는 원유 가격이 20달러일 경우 2021년까지 미국에서 533개의 원유 시추 생산업체들이 파산하고, 10달러일 경우 1천100개의 업체들이 도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유가격이 10달러일 경우 부채가 있는 대부분 업체들이 도산하거나 구조조정을 해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5천억 달러의 외환 보유고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경우 배럴당 40달러 선에서 재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생산 단가는 3.2달러로 미국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낮은 가격이 유지될 경우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현재 추진하고 있는 탈석유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84달러는 돼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력이 없는 석유 생산업체들이 파산하거나 유정을 폐쇄해 공급이 줄고, 코로나19가 물러가 경제활동이 재개되면 원유 가격은 40~50달러 선으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전 세계 확진자가 317만 명을 넘어 계속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언제 종식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그 이전의 세계와 달리 원유 수요가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원격 근무를 하고 불필요한 해외여행을 줄이는 한편, 기업들은 안정적인 공급망 유지를 위해 해외에 있는 공급선을 국내로 전환하면서 석유 수요에 구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첨단기술의 발전과 함께 수요 분야의 이런 구조적인 변화는 석유 수요를 감소시키고, 원유 가격의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미국 다우지수

● 주식시장에서 선방한 동학개미들…원유시장에서도 성공할까

주가를 예측하는 것이 어렵듯이, 장기적인 원유 가격을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꼽힌다. 기본적인 수요와 공급의 변화와 함께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돈이 상품시장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 지금 확실한 것은 코로나19 극복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코로나19가 가져올 경제적인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6개월간 WTI 가격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지난 3월 19일 1,439.43까지 하락했던 코스피는 4월 29일 1,947.56으로 바닥에서 35.3%가 올랐다. 외국인의 팔자 공세 속에서 개인 투자자들, 이른바 '동학개미'들은 사자에 나서 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짭짤한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투자자들은 원유 가격이 폭락하자 원유 가격 변동에 베팅하는 상장지수증권(ETN)이나 상장지수펀드(ETF)에도 대거 투자하고 나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 10일부터 24일까지 원유 선물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상장지수증권(ETN)과 펀드(ETF)를 1조 3천억 원 어치나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부터 미국이 점진적으로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완전 고용과 물가가 정상화할 때까지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 등 모든 조치를 동원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는 4월 29일 532.65포인트가 올라 24,633.86이 됐다. 지난 3월 20일 기록한 18,213.65에서 35.2%가 올랐다.

지난 20일 장중 한때 마이너스 40달러까지 폭락했던 서부텍사스중질유(WTI)의 가격은 배럴당 15달러까지 상승했다. 산유국들이 5월1일부터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하고, 감산 합의에서 빠졌던 미국에서도 채산성이 나빠진 원유 생산자들의 파산과 감산이 확산하면서 3월 하루 1천310만 배럴에 달했던 원유 생산량은 4월 셋째 주에 1천210만 배럴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의 원유 수요가 하루 3천만 배럴 가까이 줄어들어, 감산에도 불구하고 남아도는 원유가 많은 상황이다. 원유 저장탱크도 곧 완전히 포화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돼 6월물 원유 선물의 만기가 다가오면 또 한번의 원유 가격 폭락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 억제에 일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세계 각국이 백신 개발에 매진하면서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희망도 커졌다. 하지만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를 적용해도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은 내년 상반기에나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에서 유럽과 미국, 중동과 아시아를 거쳐 이제 아프리카와 남미로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가 어떤 재앙을 더 몰고 올지 알 수 없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황이지만 봉쇄 조치가 장기화하면서 경제적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유럽과 미국 등 코로나19 감염 국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봉쇄 조치 해제에 나서고 있어 코로나19의 2차 확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블랙스완의 시대', 언제 어디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은 다시 오기 힘든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 포착한 투자 기회를 활용하되 어느 한 곳에 '올인'하기 보다는 어떤 상황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는 여유를 남겨두고 투자하는 안배가 필요하다고 투자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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