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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찰총장' 윤 총경 직권남용 무죄와 '새로운 질서'

[취재파일] '경찰총장' 윤 총경 직권남용 무죄와 '새로운 질서'
▲ '경찰총장' 윤규근 총경

지난 금요일, '버닝썬 사태'로 홍역을 치른 승리의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경찰총장'으로 불렸던 윤규근 총경에 대해 법원이 전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윤 총경은 모두 4개 혐의로 기소됐지만,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의 판단 여부였습니다. 이 혐의는 강남경찰서 경제범죄수사과 팀장을 통해 승리의 사업동반자 유 모 씨가 운영하던 '몽키뮤지엄' 단속 관련 정보를 알아봐 준 윤 총경의 행위에 적용됐습니다. 윤 총경이 '경찰총장'으로 호칭된 것도 윤 총경의 이런 역할들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이 혐의의 유무죄 여부에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그런데 윤 총경의 이 직권남용 혐의에도 무죄가 선고되자, 사람들은 두 편으로 쪼개졌습니다. 결과를 정파적으로 바라보는 해석들이 난무했습니다. 한쪽 네티즌들은 윤 총경의 청와대 근무 이력, 조국 전 장관과 찍은 사진 등을 근거로 들며 '여당이 180석 확보해 총선 대승을 하니 판사도 알아서 눕는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반대쪽 네티즌들은 '검찰 개혁 추진 이후 여당과 관련된 인사들을 잡아넣고 보자는 정치 검찰의 말도 안 되는 기소였다'고 했습니다.

이슈가 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성립이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전직대통령과 대법원장에게 적용돼 이들을 구치소에 보내기도 한 것이 이 법입니다. 이른바 '촛불 혁명'의 정당성을 사법적 차원에서 완성하는 데 관계되기도 한 이 법은, '청와대 선거개입',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기소에도 적용되면서 촛불로 탄생한 정권의 턱 밑에 비수처럼 날아와 있기도 합니다. 정권의 명운까지 좌우할 수 있게 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조금 거창하게 해석하자면, 이 법은 촛불혁명으로 87년 이후 또 한 번의 분기점을 맞은 우리나라 제6공화국 체제에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만큼 이 법령의 적용 결과에 대한 해석은 깊고 다양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앞으로도 이어질 직권남용죄 판결의 의미를 정파적으로 제멋대로 해석하는 건 촛불 이후 새로운 질서를 살고 있는 우리 공동체에 결코 적지 않은 해악을 미칠 겁니다. 때문에 이번 취재파일에선 지난 주말 이슈가 됐던 윤 총경에 대한 직권남용 판결 의미를 조금 길지만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지난 1월 직권남용죄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이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주최한 <직권남용죄의 적용 한계와 바람직한 적용 방향에 대한 심포지엄>의 발표문들이 중요한 참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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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권남용'의 적용과 민주적 통제

지난 13일 열린 서울변회 주최 심포지엄에서 검찰 출신 이완규 변호사(연수원 23기ㆍ 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논하면서 '직권남용'을 폭넓게 해석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직권남용'이 확대 해석될 경우 우리 공화국에서 작동하는 민주적 통제의 정당성과 실질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직권남용이라는 형법상 법조 하나가 '민주적 통제'라는 거대한 의미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요?

이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 법체계에서 선출되지 않는 행정부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인 장관들 통제함으로서 작동합니다. 국정감사ㆍ의정활동 등으로 견제 활동을 벌이거나, 심한 경우 해임 건의나 탄핵을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요컨대 '민주적 통제'의 원리는 행정부의 관료들이 잘못하면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견제를 통해 실질적으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책임'과 '권한'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국회의원이 직접 견제하는 대상인 행정부 조직 수장의 '권한'이 인정돼야, 뭔가 잘못됐을 때 국회의원이 그의 '책임'을 물을 명분도 생기는 겁니다. 이를테면 하급 공무원이 상급자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지시는 명백히 불법인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정권이 바뀌거나 했을 때 어떻게 평가받을지 애매한 지시인 것으로 가정합니다. 이 때 하급 공무원이 '이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나는 못 따르겠다'는 상황이 행정부 도처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장관과 휘하의 공무원의 지휘통제체계는 무너지고,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장관에게도 '난 아무 힘도 없다. 내 지시가 안 먹히는 체제인데 내가 무슨 책임을 지느냐'는 '할 말'이 생깁니다. 이럴 경우 국회의원을 통해 장관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행정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기제의 정당성이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직권남용의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이 변호사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명백히 법령과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경우엔 상급 공무원의 지시는 정당한 '지시권의 행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후의 결과를 놓고 직권남용의 판단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검찰이 기소한 공무원의 직권남용 사건들에서 어떤 경우엔 지시를 받은 하급 공무원이 상급 공무원의 '공범'으로 돼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피해자'가 돼 있기도 합니다. 이 변호사는 SBS와의 통화에서 "이처럼 '직권남용'이 고무줄처럼 적용되는 일이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공무원의 지휘통제 체계를 무너뜨리고, 민주적 통제의 정당성과 실효성도 없어지게 된다."고 우려했습니다.

다시 윤 총경의 직권남용 사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윤 총경이 직권남용 유죄가 되려면, 윤 총경의 부탁을 받고 부하직원을 통해 '몽키뮤지엄'의 단속 정보를 알아본 공범인 당시 강남경찰서 경제수사과 팀장 A도 직권남용 유죄가 돼야합니다. 만약 당시 A 팀장이 '몽키뮤지엄' 단속 건을 덮으라고 지시했거나, 사건이 유리하게 처리되도록 봐주라는 지시를 했다면 이는 명백히 규정과 법령을 위반한 것이 됩니다. '직권 남용'에 해당될 여지가 매우 커지게 됩니다.

그런데 1심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이 사건 사실관계는 조금 애매합니다. 당시 A 팀장은 부하 직원에게 단속 사건의 내용이 무엇인지 보고만 하라고 지시했다는 겁니다. 지시받은 부하직원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A 팀장이 사건 내용을 물어보는 이유를 밝히지 않아 사건 재배당 등이 이유라고 생각했고, 이후 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압력을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결과적으로 '몽키뮤지엄' 단속 사건은 기소의견으로 송치되기도 했습니다.

이완규 변호사는 이러한 경우 A 팀장과 부하 직원 사이에 있던 일을 '지시권의 작동'이 아닌 '직권남용'으로 해석하는 건 곤란하다고 봅니다. 1심 재판에서 드러난 당시 상황에 따르면, 부하직원은 당시 받은 A 팀장 지시에서 명백한 불법성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지시 관계에까지 '직권남용'이 적용된다면 공무원의 지휘통제체계, 더 나아가 국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정당성까지 상실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변호사는 "업자의 부탁으로 건너건너 사건을 알아봐 준 A 팀장 행위는 '지시권 남용'으로 경찰 조직 내부 징계 대상은 될 수 있겠지만, 형사 처벌 대상인 '직권남용'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선 매우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사건 재판부는 윤 총경이 업자의 청탁을 받고 자신이 근무하지도 않는 경찰서의 사건 내용을 알아봐 준 건 부당하게 직권을 남용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직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못 박지 않은 대목에선 위에서 논의된 것과 같은 우려 지점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 '권리행사방해' 무죄와 현대사회에서의 행정

현대 사회는 복잡합니다. 그리고 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작동하는 행정력 또한 그에 맞게 유기적으로 작동돼야 합니다. 최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만 봐도 그렇습니다. 본질적으론 질병 방역의 영역이지만, 질병의 국제적 확산을 막기 위한 외국과의 공조,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통화와 재정 정책의 역할 등 한 사안에 대해 여러 분야의 행정력이 공조하며 중첩적으로 작동됩니다.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의 행정력의 작동 모습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적용에 대한 해석을 내린 지난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에도 등장합니다. 대법원은 이 죄를 따질 때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를 따로 떼어서 봐야 하는 것은 물론, '권리행사방해'의 부분도 엄격히 따져야 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대법 2020.1.30. 선고 2018도2236 판결 中
행정조직은 날로 복잡·다양화·전문화 되고 있는 현대 행정에 대응하는 한편, 민주주의의 요청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행정조직은 통일된 계통구조를 갖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긴밀한 협동과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 이러한 협조 또는 의견교환 등은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필요하고 동등한 지위 사이뿐만 아니라 상하기관 사이,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 사이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러한 관계에서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협조하는 등 요청에 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 그가 한 일이 형식과 내용 등에 있어 직무범위 내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법령 그 밖의 관련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하여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서울변회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참여한 홍익대 법대 오병두 교수는 지난 1월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 '대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구성하는 2개 요건 중에서 '직권남용'을 넓게 인정하는 전제에서, '권리행사방해등'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그 규율 범위를 제한하는 입장을 보였다'고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문에선 행정부 공무원들이 상대방의 요청이나 지시에 응한 것에 대해 포괄적으로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해석해 형사 책임을 물을 경우,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행정부 운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우려하는 시각이 읽힙니다.

다시 윤 총경 사건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지난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인용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1심 재판부 판단 취지는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이 사건에 적용되는 법규를 개별적으로 따져보니, 강남경찰서 A 팀장이 부하직원에게 사건 내용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행위는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도리어 경찰 공무원 규정을 보면 상급자가 담당 사건에 대해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면 하급자는 따라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완규 변호사는 "이러한 사안에 있어서까지 '의무없는 일'을 했다고 판단해 형사처벌할 경우, 앞으로 하급 공무원이 개별 판단으로 법령상 정당한 상급자 지시를 무시하고, 이로 인해 행정력에 마비가 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직권남용죄를 엄격히 적용한 이번 윤 총경 판결에 대해선 앞으로도 다양한 평가가 이뤄질 것입니다. 다만 위에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판결이 사회적으로 갖는 긍정적 의미를 찾아보자면, 민주적 통제의 정당성과 국가 행정력의 자율성이 '직권남용죄'라는 형사처벌 법조의 블랙홀 속에 무분별하게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는 점을 짚을 수 있겠습니다.

● 무죄 판결만으로 윤 총경이 '결백한 피해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이 사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또 한가지 있습니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도덕적 평가 영역과 사법적 판단 영역 사이엔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1심 판결문에서 인정된 사실관계에 따르면 윤 총경은 자신이 담당하지도 않은 사건을 옛 부하 직원을 통해 알아봐준 경찰 간부였습니다.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으로서 그의 처신이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아무런 연줄도 뒷배도 없는 일반 국민이 경찰 조사를 받을 때와의 형평을 고려해보면 쉽게 답이 나오는 문제입니다. 재판부도 이 사건 무죄를 선고하면서 "합리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공소사실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며, 피고인이 100% 결백하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부연했습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1심 판결을 윤 총경의 '도덕적 결백함'으로 확장 해석하거나, 이러한 확장 해석을 기반으로 정치적 주장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윤 총경에게 제기됐던 언론 보도나 시민들의 비판을 결과론적으로 해석해 비난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에서의 도덕적 평가 영역을 사법적 판단 영역과 동일시하는 이런 모습은, 시민사회의 평가 영역을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 법관들의 판단에 자진해서 헌납하는 격입니다. 불리한 판결이 나올 땐 누구보다도 법관들을 불신하면서,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법관들 판단에 과도한 권위와 의미를 부여하는 모순적 행동이기도 합니다.

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직권남용 혐의 재판, 즉 조국 전 장관의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이나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하는 논리입니다. 법원의 유·무죄 판결과 시민사회와 언론의 판단과 지적이 항상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 남겨진 과제들

이 글에선 직권남용죄를 엄밀하게 적용한 이번 윤규근 사건 판결의 의미에 대해 논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 직권남용 사건 재판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법관들에게도 이 글과 같은 논지가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습니다. 상명하복하는 경찰 조직 내 경찰관의 경우와 헌법에서 독립을 보장받는 법관의 경우 사이엔 분명 큰 차이가 있습니다. 때문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적용할 땐 법리의 일관성 못지않게, 피고인 직역과 지위가 갖는 무게와 역할에 대해서도 신중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히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직권남용'이고 '권리행사방해'인지 모호함이 남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오병두 교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이 법 조항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취재파일(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733134&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에서 밝혔듯, 직권남용죄가 창출한 '새로운 질서'에 대해 새롭게 구성될 국회는 물론 사법부 내외의 구성원 간에 더 많은 토론이 이뤄져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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