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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우리는 여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다들 무사히 살아 있어요?"

"글쎄요."

"여름 좀 빨리 왔으면... 여름 되면 좀 사그라들 거 같다던데."

"코로나 사라지기 전에 내가 먼저 사라질지도…?"


이런저런 단체 메신저방에서 자주 보이는 자조적 대화들입니다. 요즘, "잘 지내세요?"라며 안부 인사를 건네지 않은지 꽤 되었습니다. 서로가 잘 지내지 못한다는 걸 아는 상황에서 상투적인 인사말을 꺼내기가 참 머쓱하더군요.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들은 '가진 돈으로 몇 월까지 버틸 수 있나'를 세어보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점점 지갑은 말라가고, 마음은 불안해지는 나날일 텐데, "잘 지내세요?"라는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 같았습니다.


우리는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다, 하루하루를

참, 쉽지 않습니다. 모두 힘들어합니다. 마스크 사러 가던 길에 보니, 단골 김밥 집 이모는 세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버렸고, 횟집 아저씨는 가게 셔터를 아예 반쯤 내려놨습니다. 누구 하나랄 것 없이 힘들지만 IMF 때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미성년자였던 20대 청년들은 이런 사태를 피부로 겪어본 것이 처음이라 더 당혹스럽습니다. 취업 준비생들은 채용 공고가 나지 않아서, 최종 면접만 통과하면 되는데 면접 일자가 무기한 연기되어서, 또는 토익 시험이 취소되어서 채용 지원 자체를 당분간 할 수도 없고, 다음 취업 시즌까지 버티려니 있는 알바도 잘리는 상황이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주변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곤 SNS에 공지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문제를 겪고 있는 청년들 누구나 우리의 온라인 상담소 홈페이지를 찾아오면 당분간, 즉각적인 무료상담을 제공하겠다는 글이었지요. 그날 밤에만도 새 글 알림 문자가 참 많이 왔었습니다. 그중 한 프리랜서 청년의 글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요. 신문 읽다가 진짜 제 이야기 같은 글을 봤어요. '(코로나 사태에서) 직장인의 악몽이 사람 가득한 대중교통을 뚫고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이라면, 프리랜서의 악몽은 당장 밥줄이 끊어져 버리는 생계에 대한 위협이다. 밥줄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끊긴다.'라는 문장이었는데, 보자마자 너무 내 얘기 같아서 한참을 울었어요.

밥줄이 이토록 쉽게 끊기는 삶.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충격 완화를 위해 최소 1,000달러 규모의 개인 현금 보조를 골자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고, 우리나라도 최근 소득 하위 70% 4인 가구 당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싸움이 시작되었지요? 이게 맞냐 아니냐를 두고 말입니다.

한국 사회는 보편복지에 대해서만큼은 의견이 팽팽합니다. 공산 국가에 대한 공포와 반감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보편복지는 '공산당 같은' 행동이라고 일단 반감부터 가지고 보는 사람이 적지만은 않으니까요. 무상 급식이 그랬고, 청년수당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코로나19 긴급 지원에 대해서도 "왜 다 주냐"를 따지며 시간이 꽤 많이 흘렀습니다. 그게 얼마나 피 말리는 시간이었는지에 대한 체감은 코로나 사태가 '불편한 일상' 정도인 사람들과, '촌각을 다투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달랐을 겁니다.

그렇게 보편복지에 대한 논의로 시간이 지연되는 사이, 지자체에서 선제적으로 시도된 긴급 지원 정책들이 오히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갑자기 해고당한 아르바이트생 청년들을 위한 '코로나 19로 알바 잃은 청년 긴급 지원', 일감이 끊긴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방구석 배움 교실'등 서울에서 시작된 청년 긴급 지원은 울산, 경남 등 전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부산의 경우는 알바를 갑자기 짤린 청년에게 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약국의 공적 마스크 배포 알바로 다시 연결하는 인상적인 긴급지원책을 내놓았더군요. 이러한 긴급 지원 사업들의 특징은 현재 이 사태로 가장 힘든 대상이 누구일지 '작지만 정확하게 포착해서', 그들 입장에서 필요한 '세밀한 지원'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극복 고난 희망 (사진=픽사베이)

직장인과 공무원, 비정규직, 프리랜서, 그리고 자영업자...평화로운 시절에는 우리 모두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불안정성의 위기가 도래했을 때, 각자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전혀 다릅니다. 여름까지 힘겹게 살아갈 사람과, 여름까지 '아예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의 불안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각자의 직업과 외출 빈도에 따라 한 사람에게 필요한 마스크의 수량이 각기 다르듯, 공적자금의 배분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보편복지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개개인의 상태에 따른 다각화되고 세밀한 긴급 지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요.

사태의 장기화를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지금. 정치인도, 공직자도 부디 조금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는 여름까지, 시민 모두가 무사히 생존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추경은 무엇일지, 정말 필요한 대응은 무엇일지, 그리고 정말 필요한 시선은 무엇일지.
 

#인-잇 #인잇 #장재열 #러닝머신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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