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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로나19와 검찰공화국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만희 총회장을 비롯한 신천지 지도부를 살인죄 혐의 등으로 어제(1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들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더라면 다수의 국민이 사망에 이르거나 상해를 입는 일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박 시장은 주장했습니다.

법조인 출신 박원순 시장이 낸 고발장이지만 이 경우에 살인죄 적용이 무리하다는 점에 대해선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만희 총회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세월호 참사 당시 도주했던 이준석 선장의 경우처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살인죄의 부진정부작위범)를 적용해야 할 텐데, 교단의 총회장이 방역 협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을 선장의 승객 구호 의무 방기와 동일한 수준의 행위로 해석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에 대한 더욱 상세한 설명은 법률 전문가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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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죄 고발' 보다 우려되는 박원순 시장의 말

살인죄 고발 자체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박원순 시장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 깔려 있는 '검찰 만능주의'입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하는 것과 아무 일이나 하는 것은 다릅니다.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검찰 수사를 활용해 돌파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검찰 만능주의'라는 고질병을 심화시키는 일입니다. 정치적 논란이 되는 거의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을 검찰에 의뢰하는 것이 '검찰공화국' 체제가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어제(1일) 고발장 제출에 앞서 페이스북에 올린 메시지를 보겠습니다. 박 시장은 "윤석열 검찰총장께 요청합니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진원지의 책임자 이만희 총회장을 체포하는 것이 지금 검찰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로 "이만희를 비롯한 신천지 지도부는, 즉각 잠적한 곳에서 나와 국민들께 사과하고, 본인부터 스스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뿐 아니라, 전체 신도들도 바로 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 방역당국에 적극 협조해야"하는데 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제시합니다.


● '체포'는 범죄 혐의 입증을 위한 수단

박원순 시장의 말처럼 이만희 총회장에게는 방역당국에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잠적한 곳에서 나와서 전체 신도들에게 검사를 받으라고 지시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체포'는 행정이나 위협의 수단이 아니라 범죄 혐의 입증을 위한 수사의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방역에 협조하지 않아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 예방법')을 위반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체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어서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줄 경우 수사기관이 이만희 회장을 체포할 수 있는 것이지(긴급체포는 예외), 이만희 총회장의 소재를 파악하거나 방역에 협조하라고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체포'를 활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 총회장의 처벌을 주장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살인죄는 아니겠지만 감염병 예방법 위반 혐의는 인정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정당한 행정 조치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은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방역 조치에 적극 협조하도록) 검찰이 이 사람을 지금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더라도 인권변호사 출신 정치인이 행정 조치에 대한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당사자를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검찰 직접수사' 축소하자더니…

게다가, 이 같은 주장은 적어도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부터는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주장하며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검찰 직접수사 축소' 방침과도 배치됩니다. '검찰 직접수사'를 일정한 영역에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람들조차 규모가 큰 경제범죄, 공직자 부패범죄, 선거범죄 등의 경우에 허용하자는 것이었지, 감염병 예방법 위반 혐의나 살인죄에 대해 '검찰 직접수사'를 유지하자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이 주요 수사를 담당하도록 수사권을 조정하는 것을 국정 주요 과제로 추진해왔던 여당에 소속된 유력 정치인이 갑자기 이만희 총회장 체포를 "윤석열 검찰총장께" 요구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방역에 협조하지 않는 이만희 회장을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부적절해 보이지만, '검찰 직접수사 축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면 검찰이 아니라 경찰에 체포를 요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원파 유병언 씨 체포 실패에서 드러나듯이 '체포'는 검찰보다 경찰이 압도적으로 잘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신천지 총회장 체포를 뜬금없이 검찰총장에게 요구한 행동의 배경에는 신천지 관련 이슈에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검찰을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 "압수수색 지시"를 공개한 추미애 장관

또, 방역에 협조하지 않는 이만희 총회장을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은 신천지 교인 명단 확보와 관련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는 일련의 주장과도 맥이 닿아 보입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런 주장을 했고, 추미애 장관도 비슷한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추미애 장관의 경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월 28일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일부 지역별로 발생하는 방역 저해 행위 등에 대하여 압수수색 등으로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대검찰청을 통해 각급 검찰청에 아래와 같이 지시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메시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무부 장관의 "압수수색 지시"가 외부에 공개됐다는 것입니다. 압수수색은 밀행성(密行性), 즉 압수수색 대상이 사전에 알지 못하도록 진행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압수수색이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처럼 증거물이 될 수 있는 물품을 은닉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이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검찰에 압수수색 등을 지시"했다고 공개하면 압수수색을 받을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당연히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 경우에는 교인 명단을 은닉하거나 인멸한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추 장관이 압수수색을 통해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거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신천지 교인 명단을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압수수색 지시"를 외부에 공개한 것은 부적절했습니다.


● '신천지 명단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의 메시지에서 더 눈에 띄는 것은 여러 수사 방식 중에서도 유독 "압수수색"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나 박원순 서울시장 그리고 여권 정치인 여러 명의 '압수수색' 언급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김경수 도지사는 2월 24일 브리핑에서 "지금 신천지와 관련해서는 2가지 방향으로 대응 중입니다. 하나는 시설 폐쇄와 집회 금지 등 강제 행정명령을 검토 중이고, 하나는 명단 확보를 위해 정부와 압수수색 등 입수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박원순 시장도 2월 23일 "정부는 신천지교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전수조사를 위한 신도 명단을 확보해야 합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김경수 도지사와 박원순 시장의 말은 모두 "압수수색"이 신천지 신도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강제 수단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체포'와 마찬가지로 '압수수색' 역시 행정적 목적 달성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강제 수단이 아닙니다. 압수수색은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는 수사 절차입니다. 이를 통해 수사기관이 확보한 자료는 원칙적으로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교인 명단을 행정당국에 넘기면 원칙적으로는 위법입니다. 감염병 예방법 위반이라는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것과는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12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서버를 압수수색해 당원 명단을 확보한 적이 있습니다. 이 경우 검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당원 명단을 활용하는 것은 허용됩니다.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준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검찰이 확보한 당원 명단을 청와대나 인사혁신처 등에 넘겼다면 원칙적으로 위법행위입니다. 선거법 위반 혐의 입증과는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매우 긴급한 상황에서는 수사 목적을 위해 압수한 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방역당국에 넘기는 행위도 공익성이 인정돼 이례적으로 용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역이라는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또는 행정당국이 강제로 교인 명단을 가져오기 위해서 당연히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인 것처럼 '압수수색'을 언급하는 것은 "검찰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이만희 체포"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 '검찰공화국' 막으려면 '잘 드는 칼' 찾지 말아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 검찰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고방식은 '검찰 만능주의'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이 어떤 식으로든 형사법적 논리를 개발해 수사에 착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여러 사회 이슈에 대해 집행자 또는 판단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검찰의 힘을 빌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방식입니다. 정치적 다툼이 있을 때마다 명예훼손 법리 등을 활용해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는 국회의원들의 행동이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박원순 장관 등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사진=연합뉴스)

앞으로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이 박원순 시장 등이 요구한 조치를 행동에 옮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워낙 긴급한 상황인 만큼 검찰이 웬만큼 무리를 해도 크게 비판받지 않을 것입니다(물론 세월호 참사 당시 검찰의 대대적인 구원파 수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죠). 검찰이 이만희 총회장을 실제로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검찰공화국'의 근본적 문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검찰을 해결사로 활용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면 '검찰공화국'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공수처를 만들고, 수사권 조정을 하고, 심지어 검찰이 과거와 달리 깨끗하고 공정한 조직이 되어도, 이런 행태가 이어지는 한 검찰의 비대한 권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검찰개혁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급할 때 '잘 드는 칼'을 찾는 습관부터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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