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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우리가 낡은 건물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김종대|건축가.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성수동 카페거리, 음식점 앞 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과 여러 가지 기념품 가게 앞에서 무언가를 고르며 밝게 웃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때는 공장들만 가득했던 성수동에 카페거리가 조성되면서 젊은이들이 찾는 '핫 플레이스'로 등극한 것은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성수동은 예전에 수제화를 비롯한 제조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낡고 지저분한 공장 건물들로 인해 동네 전체가 활기를 띠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공장 건물들이 하나둘씩 커피집과 옷집으로 변하면서 지금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힙'한 공간이 되었다.

이곳에는 커피집이나 옷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서울숲이 조성되고 소셜 벤처기업들과 IT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들이 이곳에 입주하면서 공원과 IT 산업, 소셜벤처기업들이 모여 있는 뉴욕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처럼 변해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한옥 마을이나 화려한 강남의 명품거리도 아닌,  특별할 것 없는 성수동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수동의 어느 카페, 낡은벽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뉴욕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지역은 '미트패킹'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250여 개의 도살장과 고기를 가공하던 공장들이 몰려있던 곳이었다. 분위기가 확 달라지기 시작한 건 아티스트, 작가, 패션디자이너, 건축가들이 이곳으로 입주하면서다. 저렴한 작업실을 찾아 임대료가 싼 옛 공장 건물에 입주한 사람들은 이곳을 뉴욕에서 가장 핫한 예술적 공간으로 바꾸어나갔다.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 폐고가철도를 공원화한 '하이라인'과 '휘트니미술관'이 자리 잡으면서 이 지역은 뉴욕 도시 재생의 아이콘이 되었다.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 근접한 곳에 구글 뉴욕사무실이 입주하면서 예술적인 분위기에 첨단의 이미지를 더하게 되었다.

'재생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뉴욕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성수동과 뉴욕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개발의 공통점은 낮은 임대료다. 새로 시작하는 벤처기업이나 예술가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낡았지만 가능성이 있는 건물을 찾아 일을 시작한다. 임대료를 아껴서 개발비에 더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은 임대료의 효용성은 사업을 새로 시작하거나 예술적인 작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에 재개발된 종로구 교남동의 아파트 단지 상가는 길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영천동의 상가에 비해 임대료가 평균적으로 3배나 비싸다. 비싼 임대료 탓에 새로 지은 상가에는 휴대폰 매장이나 유명 커피 브랜드, 값비싼 음식점들이 들어와 있다.

뉴욕 미트패킹 지역의 유명 패션샵, 입구도 남다르다
그와 반대로 서대문구 영천동의 상가들은 마주한 새 상가의 반짝거리고 당당한 모습에 비해 낡고 작고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곳에 입주해 있는 점포들은 열쇠집, 금은방, 철물점, 도장 파는 집 등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갑자기 필요하게 되는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게들로 채워져 있다. 생필품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다양하게 해주는 중고서점, 작은 전시장, 작가작업실 등도 이곳이 아니면 생존하기 어렵다.

도시에는 반드시 오래된 건물이 있어야 한다. 오래된 건물이 없다면 아마도 활기찬 거리는 물론이고 지구의 성장도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오래된 건물이라 함은 박물관급의 건물, 즉 돈을 많이 들여서 복원한 훌륭한 건축물이 아니라 낡아빠진 노후한 건물까지 포함한 평범하고 흔한 별 가치 없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제인 제이콥스 (Jane Jacobs)
-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미국의 유명한 건축 평론가인 제인 제이콥스 (Jane Jacobs)는 '도시에 오래된 건물이 없다면 아마도 활기찬 거리는 물론이고 지구의 성장도 불가능할 것이다'라며 노후 건축물의 효용성을 강조했다. 그녀의 주장은 59년이 지났지만 대규모 재개발 정책에서 이제야 재생사업으로 눈을 뜨게 된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지적이다.

비단 성수동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핫플레이스'로 등장한 서촌, 익선동이 과도한 주목을 받으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정작 우리 생활에서 진짜로 필요한 가게들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비어진 가게들이 화려한 카페와 부티크 숍, 유명 갤러리로 채워지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화려하게 변신한 마을의 모습에서 잠시 벗어나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가치를 위해 도시가 나아가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 편집자 주 : 김종대 건축가의 '건축 뒤 담화(談話)' 시리즈는 도시 · 건축 · 시장 세 가지 주제로 건축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습니다. 격주 토요일 '인-잇'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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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시즌 2 엔드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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