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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법농단 비판'을 오염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취재파일] '사법농단 비판'을 오염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일을 내세우며 민주당에 입당한 전직 판사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여기저기에서 이들을 옹호하는 분들이 보입니다. 이분들의 옹호 논리는 한 마디로 '왜 우리 편만 가지고 그래?'라는 것입니다. 좀 더 상세하게 풀어보자면 '이전에도 판사를 하다가 출마를 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이번에도 사법농단 비판과 관련 없던 판사 중에 출마를 선언한 사람이 있다. 왜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판사들에게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가? 내부고발자에게 도덕적 순결성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 아닌가' 정도가 될 것입니다.

우선 사법농단 고발에 참여했던 판사 못지 않게, 전두환 씨에 대한 1심 재판을 맡았던 판사가 출마하는 현상을 많은 언론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는 사실을 지적해두겠습니다. 예컨대 2020년 1월 15일에 방송된 SBS 8뉴스에서도 [ ▶ 법복 벗고 선거판으로…'전두환 재판' 판사도 사직 대열]이라는 제목으로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하는 판사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하면서,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판사들보다 '전두환 재판'을 맡았던 장동혁 전 판사의 사례를 우선적으로 다뤘습니다. '심판'으로서 재판을 주관하던 판사가 상당한 휴지 기간도 없이 곧바로 '선수'인 정치인이 되는 것은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든 참여하지 않았든 부적절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법농단 비판' 판사들은 왜 모두 집권여당에 입당하나?

하지만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판사들에 대한 비판을 내부고발자에게 도덕적으로 더욱 엄격한 순결성을 요구하는 이중잣대 적용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판사들의 출마 문제는 단순히 '판사가 법원을 떠난 뒤 충분한 휴지 기간 없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이들의 출마가 '사법농단'이라는 비정파적이고 비정치적이어야 하는 현안을 정파화-정치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기 전에, '사법농단' 또는 '양승태 사법부' 비판에 참여했던 판사들이 정치권에 투신하는 일이 왜 '사법농단' 문제를 정파화 또는 정치화하는 것인지 쉽게 보여주는 구체적 사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왜 '사법농단' 또는 '양승태 사법부'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사실을 내세우며 출마하는 판사들은 모두 집권여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인가요? 자유한국당은 물론 새로운보수당이나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판사는 한 명도 없는 것일까요? 심지어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판사조차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10호로 입당한 이탄희 전 판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문제점을 고발한 많은 판사들이 주장했고, '사법농단'을 비판했던 많은 언론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사법농단'은 결코 특정 정파나 정당의 '이슈'가 아닙니다.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으로 재판과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 여러 판사의 고발과 언론인들의 지적, 그리고 검찰 수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 사안입니다. '사법농단'이 특정 정치세력이 법원을 장악하기 위해 설계한 '이슈'라는 관점이야말로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가장 경계해왔던 바입니다.


● '사법농단 비판'의 정파화-정치화가 본질적 문제

그런데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현실 정치에 투신한 분들은 모두 예외 없이 특정 정당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야당이 아니라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입당하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에 비판적인 성향의 판사들 동향을 보고하라는 업무를 거부해 '사법농단' 사태의 도화선이 된 이탄희 전 판사나,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대법원 내부의 이례적 사건을 폭로했던 이수진 전 판사는 모두 공식적 행사까지 거행하며 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입당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자신이 '사법농단 비판'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발언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봅시다. 법원에 있을 때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정치에 투신한 전직 판사들이 예외 없이 집권여당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사법농단'이 애초부터 특정 정치세력이 법원을 장악하기 위해 설계한 '이슈'라는 관점의 설득력을 강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니면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씀드리지만, 이 글을 쓰는 저는 지금도 '사법농단은 특정 정치세력이 설계한 이슈'라는 관점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직 판사들이 '사법농단'을 법원 내부에서 비판했었다는 사실을 거의 유일한 업적으로 내세우며 특정 정당에 잇달아 입당한 것이 '사법농단 비판'이 정파적-정치적 이슈였다는 관점을 강화시키고 있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탄희-이수진 앞에 또 다른 전직 판사 김형연-김영식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큰 문제입니다. 현직 법제처장인 김형연 씨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꾸준히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문제를 지적했고, 2017년 3월 '사법농단' 의혹이 언론에 처음으로 보도되자 법원 내부 통신망에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력을 가진 김형연 씨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5월 판사를 그만두고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했을 때도 적지 않은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하지만, 김형연 씨는 2019년 5월에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곧바로 행정부의 차관급 관료인 법제처장으로 자리를 옮겨 '판사의 코드 출세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라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지난해 5월 30일, 신임 법제처장에 취임한 김형연 전 판사 (사진=연합뉴스)


● 이탄희-이수진 앞에 김형연-김영식이 있었다.

김형연 법제처장의 후임자인 김영식 청와대 법무비서관 역시 판사를 그만두고 3달 만인 2019년 5월에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김형연 법제처장과 마찬가지로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인 김영식 비서관은 사직서를 제출한 직후인 2019년 2월에 일부 언론이 청와대 법무비서관 내정설을 보도하자 "그야말로 오보", "인권법 모임을 폄훼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3달 만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임명됐습니다. 당시 보도를 했던 언론은 김영식 비서관이 거짓말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민주당 입당은 김형연-김영식 전 판사의 청와대행과 연결시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 사법농단 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비판적 성향의 판사라고 인식되어왔으며, 바로 이와 같은 점 때문에 집권세력의 일원으로 영입됐기 때문입니다. 사법개혁 또는 법원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비판받을 것을 알면서도' 민주당 입당이나 청와대 행을 택했다고 말하는 점도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어떤 일이 한 번 일어나면 우연으로 여길 수 있지만, 비슷한 일이 네 번 벌어지면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사법농단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판사들이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연속해서 청와대나 집권여당으로 향했다면, 그리고 이 가운데 일부는 자신이 '사법농단 비판'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업적으로 내세웠다면, 사법농단 비판이 정파적-정치적 이슈라는 비난을 반박하던 사람들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 '사법농단 비판' 판사들의 "법복 정치인" 비판

이렇게 되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실제로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여전히 법원 내부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판사들입니다. 때문에 그 누구도 '적폐'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이런 법관들이 오히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준비모임에 참여했고, 2017년 6월 전국법관대표회의 인천지방법원 대표로 참석했던 이연진 판사는 지난 22일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 글을 올려 민주당에 입당한 이탄희 전 판사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법원 내부 게시판 등에 자신을 비판하는 글보다 지지하는 글이 많다'라고 밝힌 것 등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판사 시절 무엇을 했음을 정치 입문 후에도 주요 자산으로 삼는" 모습은 "법복을 벗은 후에도 여전히 법복을 들고 다니는 정치인으로 보인다."라고 이탄희 전 판사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연진 판사는 "이렇게 법복을 들고 다니는 정치인의 모습, 법복을 들고 다니며 정치를 하려는 모습은, 법원과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송두리째 흔듭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전국법관대표회의에 관계하거나 참여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법관 재직 시 주요 이력으로 표방되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듭니다. 사법개혁 임무를 맡을 만한 적임자라고 정치 입문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양 부풀려진 외관이 참담합니다"라며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사실을 정치 입문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판사들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역시 '사법농단'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정욱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판사도 지난 17일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 [법복 정치인 비판]이라는 글을 올려 "아마 (정치인으로 변신하시는) 그분들은 자신이 법복을 벗고 나서야 비로소 정치인이 되었다고 말씀하시겠지요. 그러나 법복을 벗자 드러난 몸이 정치인인 이상 그 직전까지는 정치인이 아니었다고 아무리 주장하신들 믿어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만 혐의를 감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남은 법관들, 특히 같은 대의를 따르던 다른 법관들에게까지 법복 정치인의 혐의를 씌우는 일입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욱도 판사는 "법복 정치인들이 허문 사법신뢰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기 힘든 일입니다. 사법개혁을 바라는 입장이지만 법복 정치인의 손을 빌려 이루어질 개혁은 달갑지 않습니다. 차라리 법복 정치인의 기억이 흐려질 훗날을 기다리고 싶습니다"라며 사법개혁을 위해 정치에 투신한 것이라는 전직 판사들의 주장과 달리 이들의 행동이 사법개혁이나 사법신뢰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 신뢰할 수 있는 법관 가질 권리가 있는 '국민'이 피해자

그러나 이연진-정욱도 판사처럼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법원 내부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법관들보다 더 큰 피해자가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모든 국민입니다.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확립해 공정하고 올바른 재판을 하겠다는 움직임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슈나 음모라는 식으로 정파화 되거나 정치화될 경우, 재판과 법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더욱 지체될 것이고, 그 피해는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법원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처신과 관계없이 '사법농단'이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흔드는 반헌법적인 행태였다는 진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 이탄희 전 판사 등이 법원에 있을 때 '사법농단' 비판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는 사실 역시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민주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사법농단 비판'이 특정 정치세력의 음모였다는 결론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도 없습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법원 내부에는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처신을 비판하면서도 사법농단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는 판사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반면, '사법농단 비판'이 정치적 음모라고 비난하는 일부 언론의 잘못된 비난에 기대서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행동을 옹호하려는 시도 역시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 등이 예외 없이 집권여당에 입당하면서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이력을 내세운 것은, 법복을 벗자마자 청와대로 뛰어든 김형연-김영식 전 판사의 사례 함께 '사법농단 비판'을 정파적-정치적 이슈로 격하시키거나 오염시키는 효과를 낳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는 사법개혁 추진을 정치에 뛰어드는 명분으로 제시했지만, 정욱도 판사가 지적했듯이 "법복 정치인"들이 추진할 사법개혁조차도 법원에 대한 신뢰 회복에 도움을 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오히려 "법복 정치인의 기억이 흐릿해질" 상당히 먼 미래까지 법원에 대한 대한 신뢰 회복을 지체시킬 뿐입니다.


● '사법농단 비판'은 사유물이 아니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가 '사법농단 비판'에 기여한 바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법농단 비판'을 개인의 정치 입문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 정당한 권리는 없습니다. 특히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하거나 참여했다고 스스로 표방하는 판사들이 예외 없이 집권세력에 가담해 왔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행동이 '사법농단 비판'을 정치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이들이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란 점에서, 이들의 행동은 정당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법농단 비판'은 개인의 업적이나 사유물이 아닙니다. '사법농단 비판'의 정당성을 오염시킬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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