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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명절 디톡스' 한 방! 나다운 일상으로 빠르게 재진입시켜드립니다-하루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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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명절 디톡스' 한 방! 나다운 일상으로 빠르게 재진입시켜드립니다-<하루의 취향>

"그들은 우리가 꾸며놓은 집을 본 순간, 단숨에 우리의 선언을 이해했다. 그때 알았다. 원하는 대로, 내 취향대로 살아버리는 것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선언이라는 것을. 내 인생을 선언할 권리는 결국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이제, 모든 면에서, 진짜 새해! 경자년입니다. [북적북적]은 연휴가 절반 지났을 때인 일요일 자정에 업로드되니, 이제 슬슬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시면서 '일요일의 루틴' [북적북적]을 틀어 주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상상을 좀 해봅니다.

 요즘은 각각 집안 분위기나 생각에 따라 따라 설 쇠는 방식이 다양하죠. "차례 안 지내?"라든가 "고향 안 가?" 같은 질문을 당연한 듯이 하는 것도 조금은 실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을 두루 만나는 시간으로 보냈다고 하면, 아무리 화목하고 즐겁게 보낸 설이라 한들, 이때쯤 "좀 피곤하네, 눕고 싶네" 느끼는 건 대부분 비슷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특히 올해처럼 설 연휴가 짧을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일단, 결혼한 분들이라면 양가에 인사를 다녀올 테고, 수십 명의 친척들을 한꺼번에 만날 테고, 평범한 휴일이라면 한 끼쯤 건너뛰고 낮잠이라도 잘 수 있을 텐데 마음대로 그러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요.

 오랜만에, 살짝 어색한 먼 친척들까지 두루두루 만나고 돌아오는 연휴를 보낸 경우에, 손맛 가득한 먹을 게 푸짐하게 널려있는 명절 이건만 저는 왠지 패스트푸드 같은 게 갑자기 먹고 싶어 지더라고요. 평소엔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닌 데도요. 아마도, 뭔가 강하고 자극적인 맛으로, 한 시라도 빨리 '나 자신의 관성'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빨리 나만의 궤도로 재진입하고 싶다'는 마음이 '햄버거랑 콜라 먹으러 가자!' 같은 기분으로 치환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음력으로도 이제 진짜- 경자년 새해의 첫 [북적북적]은 설 연휴 끝자락에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듣기에 안성맞춤인, 술술 읽히는 생활 에세이를 선택했습니다. 카피라이터이자 작가, 김민철 님의 에세이를 모은 [하루의 취향]입니다.

 "나는 내가 몰랐던 세계로 재빠르게 이주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맛을 찾아 일부러 먼 식당을 찾고 있었고, 이전에는 보지도 않았던 종류의 영화를 챙겨보고, 이전에는 몰랐던 브랜드의 최신 라인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졌고, 그만큼 싫어하는 것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나의 세상은 넓어지고 있었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취향은 점점 뾰족해지고 있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은근히 깔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쯤이었다.

 겁이 덜컥 났다. 불과 1~2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넓어진 취향으로 누군가의 취향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뾰족해진 취향으로 누군가를 콕콕 찌르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나. 이러다 나중에는 누군가 고수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별로라고 말하면, 그 사람과 나는 안 맞다,라고 섣불리 결론 내려버리면 어쩌나. 그러다 결국 "도대체 나와는 맞는 사람이 없어"라고 습관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나는 내가 걱정되었다.

 하루라도 마음이 말랑할 때 누군가를 만나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이제 막 고수를 좋아하기 시작했으니, 그 누군가에게 "고수 한 번 먹어볼래요? 저도 엄청 겁냈는데, 먹어보니 괜찮더라고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를 감싸며 취향을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어떤 사람. 외롭진 않았지만, 누군가를 만나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김민철 작가는 이 책에 모은 에세이들에서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하나씩 일궈온 직업관, 결혼관, 음주관^^ 등등, 삶에 대한 '취향'을 하나씩 풀어놓습니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조곤조곤 솔직하게 들려주는 그 인생관들이 읽는 이의 생각과 겹치는 순간들도 반갑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렇다면 내 삶에 대한 나의 취향은 어떠한가' 스스로에 대해 하나씩 반추하면서 끄덕끄덕 읽게 되는 맛이 있습니다.

 이 글들에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시간에 휩쓸려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마음이 듬뿍 묻어납니다. 저는 특히 김민철 작가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선택했던 순간과 이유들을 회상하는 대목들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어떤 사람과 인생길을 같이 걷기로 결정하느냐, 는 삶에 대한 그 사람의 핵심적인 성향과 의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른이 되어가는 서로를 지켜봐 주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친구를 반려로 선택하고, 그 사람과 함께 생활의 구석구석에 '나다움'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인생의 모양을 만들어나가고 또 이를 기록하는 모습에서, 글쓴이가 삶과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성실한 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보다 훨씬 작은 체구의 목수 언니를 만나 나의 테이블과 책장을 부탁했다. 요구 사항은 딱 두 개였다. 여러 명이 둘러앉아도 아무 무리가 없도록 테이블은 클 것. 지금 집보다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갈 수도, 더 큰 집으로 이사 갈 수도 있으므로 책장은 사이즈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 것. 그러니까 어떤 집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이 테이블과 책장은 나와 함께 늙어갈 수 있도록 해줄 것.

 초보 목수 언니가 만들어준 테이블과 책장은 내 기준에서 완벽했다. 하지만 목수의 기준에서 언니는 '초보'였고, 수축률이 다른 두 나무를 붙여 테이블을 만드는 실수를 해버렸다. 그리하여 여름이 되면 안쪽 나무의 팽창을 바깥쪽 나무가 견디지 못해 테이블의 모서리들은 무기력하게 벌어졌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말끔해졌다. 언니는 그 부분을 볼 때마다 부끄러워했지만, 나는 그 부분을 볼 때마다 내 테이블에도 다리미 자국이 생긴 것 같아, 또 하나의 이야기가 덧대어지는 것 같아 유쾌해졌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우리가 가진 것들과 사이좋게 늙어가고 싶었다."

"맥주를 계산하다 말고, 슈퍼 아저씨는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 "닭발 좋아해요?" 한 번도 닭발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좋아한다 싫어한다 어느 쪽 대답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으니까 아저씨가 한 마디 더했다. "내가 아까 닭발을 볶았는데 맛있게 잘됐어. 소주랑 같이 마셔요." 이래도 되나 망설이며 난감한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는데, 아저씨는 벌써 채소 냉장고 앞에 작은 의자를 깔고 있었다.


 엉거주춤 목욕탕 의자보다 낮은 그 의자에, 원래는 컴퓨터 책상이었음이 분명한 정체불명의 테이블 앞에, 당면 진열대 옆에, 그러니까 슈퍼 구석에, 왼손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들고, 오른손에는 나무젓가락을 들고, 동네 아주머니까지 다 함께 모여 앉았다. 아저씨는 소주를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꽐꽐 부었다. 그 컵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소주를 부을 수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리 소주를 들이부어도 그 컵은 넘치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 나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이 초대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뭔가, 동네 유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은 이 슈퍼 구석탱이 술집에 초대받은 적이 없다는 동네 아주머니의 증언까지 더해지자, 나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 자부심에 취기가 더해지고, 더위까지 더해져서 나는 자꾸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슈퍼 아저씨는 또 무심하게 말했다. "더우면 그 옆에 냉장고 문 열어요." 아저씨, 장사는 어쩌려고요. 이 삼복더위에 채소가 시들면 어쩌려고요.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동네 아주머니가 나 대신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열어라 그럴 때 열어야 해. 저 짠돌이가 언제 맘 바뀔지 모른다니까."


 [하루의 취향]에서 신나게 펼쳐지는 '망원동 로망'이 저는 특히 부럽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우연찮게, 서울 망원동에 살고 있거나 망원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망원동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공동체적인 삶에 대해 얘기하는 책들을 몇 권 읽게 되었는데요. 망원동의 옛 가게들을 밀어내고 새로 생기는 술집들에 속할 곳들만 다녀본 외부인 뜨내기로서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아마도 망원동은 요즘, 자기 삶의 개성과 진실성을 소중히 가꿔 나가려는 고집을 가진 사람들이 서울 한가운데에서 그런 삶을 함께 구현하는 공동체를 결성해 나가는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동네 로망, 이웃 로망, 공동체 로망의 상징처럼 이 책 저 책에서 자꾸 그 이름이 나오는 서울 '망원동'이 점점 궁금해지는데, 책 몇 권 읽고 이사를 갈 수도 없고…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네요^^ 그러나 굳이 '망원동 주민'이 되지 않더라도 함께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요. [하루의 취향]에는 이웃과 친구, 동네와 공동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삶과 사람 사이의 연결에 대해서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맛 좋은 글들이 여럿 실려 있습니다. '그래, 이런 삶이 가능하겠지'… 잊고 살아온 '연결'에 대한 취향과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나다운 모습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이 연휴의 끝자락에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기분에 잠기기에 안성맞춤인 에세이들입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나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탈춤이라니, 춤이라니. 몸으로 뭔가를 하겠다니. 아이고 김민철아. 어릴 적 개다리춤도 못 춘 주제에. 무용 시간에 제일 몸치였던 주제에. 이 몸뚱아리에, 춤이라니. 나는 아침에 학교로 걸어가며 팔 동작을 연습했고, 점심시간엔 건물 뒤로 가서 걸음걸이를 연습했고, 저녁에 집에 가며 둘을 합쳐보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백정처럼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언제나 실패였다. 실패, 또 실패.

명백한 실패 앞에 언니는 가장 먼저 나의 춤 감각을 포기했다.

"너,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구나. 그래, 한 동작 한 동작 외워가며 추면 되지. 다시 해볼까?"

하지만 다시 실패. 다음으로 언니는 나의 춤을 포기했다.

"그래, 민철아, 걸음걸이부터 해보자. 걸음걸이가 완성되면 춤은 자연스럽게 될 거야. 오른쪽 발이 앞으로 나갈 때 어깨가… 아니, 내가 하는 거 자세히 봐봐. 이렇게."

하지만 또 실패. 어떻게 해도 실패. 결국 실패. 나는 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울고만 싶었다. 매일 생각했다. 여기서 그만둬야 하나. 결국 내가 모든 걸 망쳐버리게 될 거야. 지금이라도 그만둔다고 말해야 할까.

하지만 언니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전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나답게 살기'에 대해 새삼 돌아보게 하는 이 책 [하루의 취향]을 경자년의 첫 책으로 발췌 낭독하면서, 마지막 낭독으로는 '멋진 언니'들에 대한 김민철 추억과 현재의 자각이 담겨있는 에세이를 골랐습니다. 김민철 작가님이나, 어쩌면 누구나가 그랬듯, 저도 늘 '멋진 언니'들을 동경했고요. 생각해 보니, 어느샌가 제 인생에 하나둘씩 들어온 멋진 언니들 몇과 함께 제 삶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언니들의 '멋짐의 모양'이 서로 맥이 닿아있는 것도, '나다움'이, 서로의 취향이 철저히 반영된 결과겠죠. 그리고 이제는 제가, 누군가들에게 멋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따뜻한 언니가 돼줄 차례라는 걸 깨닫습니다. 언니를 원했던, 언니가 필요한, 그리고 기꺼이 스스로 그 언니가 되고자 하는 마음. 또는 각오. 이것이 새해에도 우리 모두를 이끌어주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경자년에도, 일요일엔 북적북적해요^^

*김민철 작가님과 출판사 북라이프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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