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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2kg 中 여대생의 죽음과 100만 위안

135cm에 22kg. 지난 13일 세상을 떠난 중국의 24살 여대생 우화옌의 키와 몸무게입니다. 초등학생과 비슷할 정도로 작았던 그녀의 죽음은 지금 중국 전역에 큰 슬픔과 분노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난과 불우한 가정환경, 그리고 그녀를 위해 모금됐던 100만 위안의 성금 때문입니다.

● 中 빈부격차의 상징이 된 우화옌

우화옌은 지난해 영양실조를 앓다가 병원에 입원한 사연이 중국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화옌은 "할머니와 아버지 모두 치료비가 없어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가난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우화옌 (사진=중국 CCTV)
그녀는 1995년 중국에서 빈곤층이 많은 구이저우 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4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와 간헐적 정신병을 앓고 있는 동생과 생활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외지에서 일을 할 때가 많았던 아버지도 우화옌이 18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동생과 함께 할머니, 큰아버지 집에서 생활한 그녀는 장학금을 받고 전문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화옌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정부 보조금을 받았지만 동생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크게 부족했습니다. 때문에 생활비를 아끼느라 하루에 1~2위안(170원~340원)의 돈으로 생활해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당초 중국 매체의 보도에서는 5년 동안 매일 2위안어치의 빵이나 절인 고추 반찬과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했지만, 추후 인터뷰에서 계속 그랬던 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우화옌 (사진=중국 CCTV)
지난해 10월 그녀는 걷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지면서 구이저우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 당시 의사들은 영양실조가 심각하고, 심장과 콩팥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치료비가 필요한 그녀의 상황과 초등학생 같은 왜소한 모습이 알려지면서 많은 중국인들은 "그녀가 중국의 빈곤, 빈부격차의 현실을 보여준다"며 온정의 손길을 보냈습니다. 10월부터 모금이 시작해 100만 위안, 1억 7천만 원의 성금이 모였습니다.

우화옌은 "빨리 몸이 나아서 올해 9월에 있을 회계사 자격증 시험을 보고 싶어요. 저는 회계감사인이 되어서 제 두 손으로 제 자신을 돌보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화옌의 병세는 악화했고, 결국 지난 1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화옌의 동생은 누나의 뜻에 따라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했습니다.

● "100만 위안 성금 가운데 2만 위안만 전달"

우화옌의 사망 소식이 퍼지면서 중국 전역에서는 애도의 메시지가 이어졌습니다. 일부 중국 매체는 의료진의 말을 인용해 검사 결과 그녀가 조로증후군(HGPS)을 앓고 있었으며 이미 수술이 힘든 상황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그녀가 학교 식당에서 점심 한 끼에 6위안, 하루에 약 15위안으로 식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학교와 병원, 지역 정부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상에는 "그녀의 상황이 과장됐었다"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자 입을 맞춘 듯 지원이 충분했다는 발표와 보도가 나오는 게 수상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더 큰 논란은 그녀를 위해 모금된 100만 위안의 성금에서 발생했습니다.

지난 10월 우화옌의 딱한 사정이 알려진 이후 자선단체 '중화소년아동자선구조기금' 산하의 '9958구조센터'는 온라인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사망 이후 밝혀진 모금 총액은 1백만 4천9백 위안, 약 1억 7천만 원입니다. 그런데 자선모금단체는 이 가운데 2만 위안 약 3백40만 원을 우화옌에게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우화옌을 위해 낸 성금이 일부분만 보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중국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중화소년아동자선구조기금 (사진=중국 CCTV 캡처)
이에 9958구조센터는 "나머지 금액은 그녀의 수술과 재활 치료에 쓰기 위해 추후에 지급하기로 그녀의 가족들과 합의했다. 하지만 그녀가 수술을 받지 못하면서 지급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이 단체의 기부금 사용 행태에 대한 의혹과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 "현금 부자인 자선단체…죽은 환자에게도 기부 가능"

중국 관영 매체 CCTV는 병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예납금과 사회보장 등으로 적절한 입원 치료가 이뤄졌으며, 지금까지 어떤 구호 자금도 병원이 받은 적이 없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100만 위안 가운데 일부는 우화옌의 동의도 없이 모금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자선단체의 비정상적인 기금 모금 방식에 대한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이 단체의 모금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이미 병으로 숨진 환자에 대해서도 기부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2012년 10월 시작된 모금에는 악성 근육 종 환자를 소개했는데, 소개 글 맨 아래에는 이 환자가 숨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기부가 가능했습니다.
중화소년아동자선구조기금 홈페이지 (사진=중국 CCTV 캡처)
중국 네티즌들은 이 단체의 기금 운용에도 의문을 재기하고 있습니다. 재무보고서를 보면 2018년 말 기준 은행 단기 투자상품에 들어 있는 금액은 무려 4억 9백만 위안, 약 690억 원으로 연초보다 4천4백만 위안, 74억 원 정도가 늘었습니다. 비영리기관이 웬만한 상장사들보다 넉넉한 현금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해당 자선단체에 있었던 활동가는 "이 단체는 이자 수입을 노려 환자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의혹에 대해 중화소년아동자선구조기금은 추가로 해명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이 단체에 성금의 사용 현황을 공개하도록 지도하는 한편, 조사를 진행하고, 문제가 있으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모금을 위해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영업'

중국에서 자선 모금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말 병원비가 부족한 환자들을 위해 돈을 모금해주는 일종의 펀딩 회사인 수이디처우(水滴筹)가 전국 40여 개 도시의 병원에 사람들을 보내 환자들에게 병원비를 모금해주겠다며 '영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원자'라는 명칭으로 병실을 돌아다니며 모금 대상자를 찾은 사람들은 1건을 성공할 때마다 수십 위안에서 최고 150 위안의 돈을 받았고, 월 수입이 1만 위안을 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뇌출혈로 쓰러진 중국의 유명한 만담 배우에 대한 모금이 논란이 됐습니다. 목표 금액은 100만 위안이었는데 이 배우가 베이징에 두 채의 집이 있고 자동차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모금을 할 만한 빈곤층이 맞느냐"라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재산을 숨기고 빈곤층으로 가장해 성금을 받는 행태를 풍자하는 만평
앞서 중국의 적십자사 격인 홍십자회는 2008년 원촨 대지진 때 엄청난 구호 성금을 모았지만 사용처가 불투명해 비난을 받았습니다. (2013년에서야 성금 8천470만 위안, 약 143억 원을 다른 사업에 썼다고 인정했습니다.) 2011년엔 홍십자회 간부라고 주장하는 '궈메이메이'란 여성이 호화 스포츠카 등 사치품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기금 유용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2016년 자선법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자선단체 활동과 모금 절차를 투명하게 해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후 많은 단체들이 정식 설립됐고, 중국의 신흥부호들이 거액을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인터넷과 모바일로 간편하게 기부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생기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선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금 유용, 상업을 위한 자선 등의 논란들은 기부 문화 확산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앞서 우리나라도 기금 유용 등으로 기부하는 행위에 두려움이나 꺼림을 느끼는 현상을 나타내는 '기부포비아'가 발생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우화옌의 죽음을 계기로 자선단체들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자체 노력과 정부의 관리 감독 강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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