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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버스의 탈을 쓴 도시철도…슈퍼 BRT란 무엇인가?

대광위, 지하철 같은 간선급행버스 체계 'S-BRT' 추진

[취재파일] 버스의 탈을 쓴 도시철도…슈퍼 BRT란 무엇인가?
막히는 길에서 시간 버리는 걸 '극혐' 하는 직장인 화강윤 씨는 버스나 자가용보다 철도 이용을 선호합니다. 네 저의 이야기입니다. 비록 버스보다 이용료가 다소 비싸도(KTX), 인파에 떠밀려 불쾌하더라도(서울 지하철), 끝을 모르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야 하더라도 (공항철도) 시간을 맞추는 데는 철도만 한 게 없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정시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버스는 불확실성이 큽니다. 내가 원하는 버스가 언제 올지도, 그걸 타더라도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지도 들쭉날쭉합니다. 중앙차로가 도입된 곳은 버스도 교통체증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졌지만, 중앙차로 역시 출퇴근 시간에는 막힙니다. 교차로의 신호대기와 승객들의 승하차 시간 때문입니다. 막힘없이 타고 내리고 다음 역까지 이동하는 지하철과는 편의성과 정시성에서 비교가 안 됩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해, 버스를 타이어 달린 열차처럼 만들자는 게 간선급행버스 체계(Bus Rapid Transit), BRT의 구상입니다. 그리고 이 BRT의 효율성을 한 층 더 끌어올려 정말 지하철처럼 편하게 이용하게 하자는 정부의 구상이 이번에 나온 S-BR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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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광역 간선급행버스BRT
● BRT란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2004년부터 BRT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큰 혼란 끝에 도입된 버스전용중앙차로 역시 낮은 수준의 BRT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산백과는 BRT를 "도심과 외곽을 잇는 주요한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하여 급행버스를 운행하게 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BRT는 지하철 절반 수준의 공사 기간과 10% 정도에 불과한 저렴한 공사 비용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거기에다 지하철에 준하는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까지가 목표였지요. 극심한 대도시의 교통 문제와 갈수록 낮아지는 대중교통 서비스 질을 저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서울과 경기, 부산 등 전국 24곳에 도입된 BRT는 도로 위의 지하철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정류장이 많아지니 간선버스도 아니고, 버스의 수 자체가 많아 중앙차로에서 생기는 정체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현행 도로 체계 안에서는 교차로를 신호대기 없이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새로 건설한 행정수도 세종시에는 그나마 가장 높은 수준의 BRT 체계가 도입됐습니다. 정부청사가 위치한 세종시의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KTX 역인 오송역이나 대전까지 빠른 속도로 이어주는 간선 급행 버스가 다니고 있습니다.
세종시 BRT 버스가 입체화된 고가도로로 교차로를 지나는 모습
서울과 차이는 뭘까요? 일부 신호 대기를 해야 하는 교차로가 있지만, 상당수의 교차로를 BRT 버스만 다닐 수 있는 지하도나 고가도로를 통해 대기 없이 바로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 도로와 버스전용 차로는 아예 연석이나 화단을 깔아 나누고 있습니다. 천장과 가로벽이 설치된 반 독립형 정류장이 설치돼 있고, 정류장을 최소화해 간선 기능을 높였습니다.

그런데도 진정한 BRT라 부르기엔 여전히 부족함이 많습니다. 여전히 일부 구간엔 신호대기가 불가피하고, 기존 버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승하차 시간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공식 평가를 받지는 않았지만 비영리 단체인 국제교통개발정책연구원 ITDP(Institute for Transportation & Development Policy)의 BRT 평가체계에 견주어 보면 골드-실버-브론즈-베이직 등급 중에 브론즈 등급 정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 수준을 골드 등급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입니다.

● S-BRT란 무엇인가?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는 기존의 간선 급행버스체계에서 정시성과 이용 편의를 끌어올려 지하철 같은 버스 교통체계를 만들겠다며 이를 슈퍼-BRT로 이름 붙였습니다.

지난 3일엔 'S-BRT 표준 지침'을 내놨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 같은 사업 주체들을 대상으로 '버스 교통 체계의 수준이 이 정도는 되어야 S-BRT라고 할 수 있다'라는 기준을 마련한 겁니다. 지자체가 따라야 하는 강제 기준은 아니고 이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목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핵심은 고가도로나 지하도, 우선 신호 등을 이용해 간선버스가 정차 없이 교차로를 통과하는 겁니다. 우선 신호에는 버스가 접근할 때 신호가 자동으로 파란불로 유지되거나, 아예 버스가 다니는 시간에 맞춰 신호를 운영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수평 승하차가 가능한 정류장
승하차 시간을 줄이는 것 역시 중요한 축입니다. 버스를 타기 전에 정류장에 들어가면서 미리 요금을 내고, 저상버스 같은 전용 차량을 이용해 수평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승객이 타고 내리는 속도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박진홍 대광위 간선급행버스체계과장은 "노약자와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편의성도 함께 개선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출퇴근 시간 등 수요가 몰릴 때 더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는 굴절버스 같은 전용 차량을 도입해 한 번에 태울 수 있는 승객 수를 늘리는 방안도 포함됩니다.

이럴 경우 지금 시속 20km 수준에 불과한 간선 버스의 평균 운행속도가 급행 기준 시속 35km까지 높아집니다. 강남역에서 행신역까지 버스로 1시간도 안 걸린다는 겁니다.

● 우리는 언제 S-BRT를 탈 수 있는가?

대광위는 표준 지침을 마련하면서 5곳의 시범 사업 지역을 선정했습니다. 인천과 인천 계양·부천 대장, 경기 성남, 경남 창원 그리고 세종시입니다.

선정 기준은 'S-BRT를 할 수 있는 곳'이 최우선으로 고려됐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있겠지만 결국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만큼, 각 지자체의 도입 의지도 중요한 선정 요소였습니다. 서울시처럼 이미 도로 체계가 짜인 곳에는 사실상 도입이 어려워 빠졌습니다.

S-BRT의 윤곽이 가장 빨리 실체화되는 곳은 이미 높은 수준의 BRT 체계가 운영 중인 세종시가 될 전망입니다. 당장 이번 달 중에 전기 굴절버스가 최초로 도입되고, 정류장 첨단화는 이미 지난해부터 부분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이로써 승객들의 수평 승하차가 가능한 곳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사전 요금제나 교차로 우선 신호도 협의가 진행 중입니다. S-BRT의 각 요소가 올해부터 하나씩 드러나면서 단계적으로 버스의 속도가 빨라지는 겁니다.

하지만, BRT가 갖춰지지 않은 다른 4곳의 시범지역에 S-BRT 체계가 마련되는 데는 설계와 시공까지 앞으로 4~5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도로가 아직 없는 곳도 있고 도로가 깔려 있다고 하더라도 입체화나 정류장 마련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S-BRT 체계를 앞으로 5~6년 안에 차례대로 건설될 수도권 3기 신도시의 중심 교통체계로 만들겠다는 게 대광위의 계획입니다. 아예 도시 설계 단계에서 S-BRT 체계를 적용하고, 이 간선망을 이미 존재하는 서울의 주요 교통망에 이어 붙여서 서울 접근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겁니다.

● 버스는 도시철도를 대체할 수 있을까?

S-BRT 체계가 갖춰지더라도 완전히 지하철 같은 수준의 정시성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교차로는 무정차 통과를 한다고 하더라도, 승객들이 중앙차로로 진입하는 횡단보도에서는 멈춰야 한다는 문제는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BRT가 비용이 싸고 공사 기간이 짧기는 하지만, 지자체에서 운전자들의 민원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뚫고 지하철 확장 대신 BRT를 선택해 밀어붙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우선 차를 모는 운전자들이 BRT를 싫어합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도로에서 한 차선을 다 잡아먹는 버스전용 차로가 반갑지 않은데 우선신호라니요. 모든 교차로를 입체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버스가 우선신호를 받는다는 것은 교차로를 이용하는 차들이 그만큼 더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BRT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차량 운전자들의 불편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신호 체계를 관리하는 경찰청이 BRT를 싫어합니다. 다양한 방식의 우선 신호 체계가 검토되고 있지만, 운전자들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준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대광위는 최종적으로 지금 운행 중인 BRT를 가능하면 S-BRT 수준으로 모두 끌어올리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지지와 이해도를 끌어올리는 것부터 신호 기술 고도화와 지자체 인식 개선 등 내외적으로 과제가 많습니다. 트램을 검토했다가 BRT로 선회하면서 이도 저도 아닌 '가짜 BRT'라는 혹평을 받은 세종시의 사례가 아쉽습니다. S-BRT가 싼 가격에 대중교통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맞는지 입증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종에서 BRT의 수준을 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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