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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객 정보 도용' 렌터카 블랙리스트…게시판 운영은 중단

[취재파일] '고객 정보 도용' 렌터카 블랙리스트…게시판 운영은 중단
'블랙리스트'. 낯설지 않은 단어입니다.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보죠.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주의자 명단'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정상으로 취급하는 가치가 있다면, 이를 위협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비정상의 인물들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겁니다. 이들을 구분 짓고 차별해서 배제하는 게 블랙리스트의 작동 원리입니다.

'렌터카 블랙리스트'라는 게 있습니다. 렌터카 이용객 가운데 문제의 인물들을 추려내 불이익을 주는 겁니다. 분명 잘못은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량 고객이라 불리는 이들의 은밀한 개인 신상을 렌터카 업계가 공유하고, 영업에 활용하는 데엔 문제가 없는 걸까요. 더러 억울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취재의 첫 시작점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렌터카 블랙리스트'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렌터카 영업은 차량을 단기 혹은 장기로 고객에게 빌려주고, 그에 합당한 요금을 받는 서비스입니다. 고객에게 빌려줬던 차량이 손상 없이 제때 반납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렌터카 업체들은 위치추적기 판매 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차량에 GPS 기기를 부착합니다. 차가 어디에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 혹시 문제가 생기면 즉각 대응하기 위한 겁니다. 위치추적기 판매 업체로부터 부여 받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관제 시스템에 로그인 해 현황을 줄곧 살피는데, 이 시스템에 '블랙리스트' 게시판이 있었습니다.

한 위치추적기 업체에 렌터카 블랙리스트라는 게 애초에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물었습니다. 업체 측은 "원래 회원들 간 소통을 위한 자유 게시판 같은 성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연의 서비스와 직접 관련이 없어서 게시판 관리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리하자면, 회원들 간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열어줬는데, 이게 어느 순간부터 불량 고객의 개인 정보를 렌터카 업계가 공유하는 장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게시판의 글들이 대략 지난 2004년쯤부터 올라오기 시작했으니, 약 15년 넘게 렌터카 블랙리스트 게시판이 일종의 방치 속에 운영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렌터카 블랙리스트 목록
● 렌터카 블랙리스트에 담긴 정보는?

15년간 작성된 렌터카 블랙리스트의 양은 1만 건에 육박합니다. 건당 최소 한 건의 렌터카 이용객 정보가 있다고 가정하면, 최소 1만 건의 고객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겁니다. 리스트엔 과거 렌터카를 이용하다가 업체 측과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킨 고객 개인 정보가 정제 없이 노출돼 있었습니다. 반납 지연, 노쇼, 요금 및 수리비 등을 제때 내지 않은 이른바 불량 고객의 명단입니다. 고객의 실명, 운전 번호, 주민 번호, 경우에 따라선 주소와 함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욕설도 더러 적혀 있었습니다.

불량 고객을 응대한 렌터카 업체가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를 위치 추적기 판매 업체 사이트에 올려 공유하는 구조였습니다. 예를 들어, A사의 GPS 기기를 쓰는 렌터카 업체는 같은 기기를 쓰는 다른 업체가 작성한 정보까지 모두 검색이 가능했습니다. 렌터카 업체와 위치추적기 판매 업체 간의 이 같은 업무 관계에 대해 이 사건의 핵심 제보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렌터카 업체는 문제를 일으킨 고객을 거를 수 있어서 좋고, 위치추적기 판매 업체는 자사 사이트에 방대한 양의 블랙리스트가 있으니 이를 기기 판매의 판촉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죠."

렌트카 블랙리스트, 검찰
● 영업에 활용되는 블랙리스트…경찰, 수사에 착수

렌터카 블랙리스트는 실제 영업에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예약 문의 등을 받게 되면, 업체는 우선 게시판을 검색합니다. 이후 불량 고객임이 확인되면 "차가 없다"는 식으로 에둘러 피하는 겁니다.
리스트의 '신뢰도'는 어떻게 될까. 제보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감정에 의해 작성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100퍼센트 신뢰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요. 50퍼센트 가량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작성하는 건 맞는데. 쌍방 간에 이뤄지는 상황을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신뢰성은 많이 떨어진다고 봐야죠."

불량 고객이 다수인 반면, 애꿎은 피해자 역시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실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몇몇 이용객에게 전화를 걸어 봤습니다. '예약 취소'를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한 이용객은 "금연 차량 배차를 요구했었고, 렌터카 업체에서 예약이 된다고 했다가 당일 배차가 여의치 않다고 해 그러면 취소를 하겠다고 이야기한 게 전부"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아울러 본인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이 본인 동의 없이 게시판에 게재돼 있는 사실을 듣곤 황당하다고 말했습니다.

'반납 지연'의 꼬리표가 붙은 또 다른 블랙리스트 이용객은 "갑자기 일이 늦어져 렌터카를 좀 더 이용했어야 했고, 제때 반납하지 못하는 사정을 업체에 충분히 설명했다. 추가 요금 및 기름값까지 전부 정산했고 업체 측에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렌터카 업체도 이해해서 큰 마찰 없이 마무리 된 기억이 난다"며 그럼에도 관련 정보가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것에 화가 난다고 답했습니다.

경찰도 지난해 관련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주된 혐의는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그러니까 렌터카 이용객의 개인 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임의로 가져다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렌터카 업계가 영업에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관련 법엔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거나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하여선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경찰은 위치추적기 업체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이어왔고, 그 결과 모두 7명의 업계 관계자를 불구속 입건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제보자는 경찰 수사에서 빠진 게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킹' 관련 혐의가 수사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블랙리스트 게시판을 운영해온 각기 다른 위치추적기 업체가 경쟁사가 보유한 블랙리스트까지 해킹으로 훔쳤다는 게 제보자의 주장입니다. 실제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업체 별로 달라야 할 블랙리스트에서 중복 검색되는 이용객 정보가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수사와 관련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습니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에서 다시 검토되고 있습니다.

● "리스트 만들어 돌리는 건 당연"…정말 그럴까?

렌터카 블랙리스트 보도 이후 주된 반응은 "렌터카 업체의 사정이 이해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리스트를 만드는 게 당연하다"는 댓글도 많았습니다. 취재 당시 렌터카 업계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봤습니다. 이들은 영업손실을 줄이기 위해 리스트가 반드시 필요하고, 업계엔 리스트를 공유하고 활용하는 게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고객의 개인 정보를 악의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고도 해명했습니다. 한 위치추적기 업체는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개인 정보의 경우 "이름과 생년월일, 가운데 번호가 ****처리된 고객의 개인 정보만 처리"하고 있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조계 의견은 다릅니다. 실제 게시판엔 고객의 실명과 더불어 주민번호 및 휴대전화 번호 전체가 게재된 경우가 적지 않을 뿐더러, 이름과 주민번호에 나타난 생년월일만으로도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관련 법에도 "해당 정보만으로 특정 개인 정보를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을 개인 정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렌터카 블랙리스트'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관계자들에겐 법적 책임이 지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행위에 선행되는 정당한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현의 방법이 우리 사회가 정한 법이란 규칙을 위반했으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취재를 한 저의 결론입니다.

● 잠정 폐쇄된 블랙리스트 게시판…대안은?

경찰의 수사와 더불어 취재가 시작되자 블랙리스트 게시판은 운영이 잠정 중단됐습니다. 한 위치추적기 업체는 "경찰 조사 이후, 문제를 인지해 바로 해당 페이지를 폐쇄했다"고 밝혔고, 다른 업체들은 게시판 운영 시스템 전반을 점검한다며 현재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업에 꼭 필요하니, 블랙리스트 게시판을 다시 열어 달라는 렌터카 업계의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일부 위치추적기 업체는 대안 모색에 나섰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진흥원이나 개인정보보호협회 등의 자문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 방안이나, 적법한 범위 내의 게시판 운용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게시판을 활용하지 않는 대신 SNS 단체 대화방을 통해 여전히 문제의 리스트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관련 제보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앞선 업체의 설명대로 합리적 대안이 마련될지, 아니면 눈에 띄지 않는 음지에서 문제의 리스트가 암암리에 유통될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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