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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크리스마스는 케이크 or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이홍천|일본 도쿄도시대학 사회미디어학과 준교수

[인-잇] 크리스마스는 케이크 or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무엇을 먹을까? 매년 12월은 일본인들을 고민에 빠뜨리는 달이다. 크리스마스에 먹을 음식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프라이드 치킨과 케이크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기분이 들 정도인데,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다음과 같다.

11월로 접어들면 일본은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변한다. 일본을 처음 찾은 외국인의 눈에는 일본이 기독교 국가로 비쳐질 정도로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갖가지 이벤트와 행사들이 벌어진다. 물론 일본은 기독교 문화가 아니다. 기독교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서 크리스마스 문화로 일본에 뿌리를 내린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치킨'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이다.

미국은 크리스마스에 칠면조 요리를 먹는데, 일본은 닭고기가 주류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KFC의 치킨을 선호하는 것이 특징이다. KFC매장은 'KFC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KFC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자'라는 광고 문구로 뒤덮인다. BBC는 2016년 일본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약 360만 가구가 KFC를 먹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미리 예약을 해놓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전후로 매장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초밥이나 회 등 생선 요리가 유명한 일본에서 '크리스마스에 프라이드 치킨을 먹는다'는 풍습이 생겨난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KFC 1호점 점장이었던 오가와라 씨의 작은 거짓말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야기는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호 매장을 오픈했는데도 매상이 오르지 않아서 근심이 많았던 오가와라 씨에게 근처 미션 계열의 유치원에서 치킨 주문이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산타 분장을 하고 크리스마스 치킨을 배달해달라는 내용이다. 산타 복장으로 춤을 추면서 치킨을 배달한 것이 입소문을 타고 번져서 다른 유치원에서도 의뢰가 쇄도했다. 오가와라 씨는 KFC의 매장 앞에 세워진 창립자의 인형에 산타클로스 분장을 입히는 홍보활동에 힘을 기울이면서 프라이드 치킨을 미국의 칠면조를 대신하는 음식으로 소개했다.

이런 활동이 주목을 받아서 NHK와 인터뷰 하게 되었는데, 프라이드 치킨이 서양에서 크리스마스 먹거리로 일반적이냐는 질문에 오가와라 씨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가짜 뉴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방송이 나가자 너도나도 크리스마스에는 KFC의 프라이드 치킨을 찾기 시작했다. KFC는 1974년 크리스마스 치킨을 전국 매장으로 확대했고 오가와라 씨는 이 공로로 1984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크리스마스 케잌
또 하나의 습관은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는 습관이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는 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일반적이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 기독교 전통이 강한 유럽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습관이다. 그런데 기독교 국가도 아닌 일본에서 이런 문화가 정착된 것은 제과 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의한 것이다.

제과 회사인 후지야는 1922년 크리스마스에 케익을 먹는 습관을 만들기 위한 마케팅을 시작했다. 창립자인 후지이 씨가 미국에서 본 딸기 쇼트케이크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춰서 판매하기 위한 브랜드 전략이었다. 1955년에는 전국 50개 점포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1975년에는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를 먹는다'는 습관이 정착되었다고 한다. 12월이 되면 산타 복장을 한 점원들이 가게 앞에서 케이크를 팔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시작된 것이 일상적인 문화 습관으로 정착된 것이 적지 않다. 밸런타인 초콜릿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 습관 중 일부는 한국으로도 흘러 들어왔다. 일본 기업과 상점들의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을 한국 기업과 상점들이 따라 하고 받아들인 때문이다.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이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어우러져 일본이나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족보 없는 문화'라든가 '마케팅 전략에 이용 당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기념하고 즐길 만한 날이나 계기가 많지않았던 분위기 속에서 당대의 젊은 세대 사이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만들어진 문화일 지도 모르겠다. 다만 외국에서 시작된 문화이든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서 시작된 문화이든, 그 유래는 정확히 알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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