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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손발 시리고 귀뿌리 도려내는 추위 느껴야"…한겨울 백두산 답사

[취재파일] "손발 시리고 귀뿌리 도려내는 추위 느껴야"…한겨울 백두산 답사
지금 백두산에서는 21세기에 보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눈이 가득 쌓인 백두산 눈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정상을 올라가는 '겨울철 백두산 답사 행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이른바 '백두산 혁명전적지 답사'는 수시로 이뤄지는 일이지만, 한겨울 엄동설한에까지 답사행군이 벌어지는 이유는 왜일까?

● 김정은, "겨울철 백두산 답사 조직하라"

발단은 김정은 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이 이달 초 백두산에 올라 겨울철에 백두산 답사가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 질타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꽃피는 봄날에 백두대지에 오면 백두산의 넋과 기상을 알 수 없다고, 손발이 시리고 귀뿌리를 도려내는 듯한 추위도 느껴보아야 선열들의 강인성, 투쟁성, 혁명성을 알 수 있고, 또 그 추위가 얼마큼 혁명열을 더해주고 피를 끓여주는가 체험할 수 있다"며 "겨울철에도 혁명전적지 답사를 많이 조직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 자신은 말을 타고 백두산에 올랐고 이동 중간중간 보온과 휴식을 위한 대비가 충분히 마련되었을 것인데, 자신이 백두산의 칼바람을 맞은 것을 계기로 북한 주민들도 한겨울 백두산 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행 강요에 다름 아니다.

김 위원장은 "백두산 혁명전적지 답사를 통한 '백두산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백두산대학'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는데,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백두산대학'이라는 제목의 글까지 게재하면서 '백두산대학'을 북한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상황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한겨울 엄동설한에 고난의 '백두산대학'을 나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김정은 백두산 등정
● 한겨울 백두산 답사 지시한 속뜻은?

김정은 위원장은 즉흥적으로 한겨울 백두산 답사를 지시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김 위원장은 백두산에 올라 "새 세대 당원들과 근로자들과 인민군 군인들과 청소년 학생들에게 백두의 혁명전통은 … 조선 혁명의 유일무이한 전통이라는 것을 똑바로 인식시켜야 하며 … 혁명전통교양을 더욱더 강화하는 것은 현시기 우리 혁명 앞에 나서는 전략적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백두의 혁명정신'은 무엇을 말하는가?

노동신문은 '백두의 혁명정신'을 "위대한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과 결사옹위의 정신, 혁명의 요구라면 맨주먹으로 폭탄도 만들고 대포도 만들어내는 자력갱생의 정신"이라고 규정했다. 또,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을 인간본능의 전부로, 인간을 생물학적 본능에 얽매인 나약한 존재로 보는 온갖 진부한 견해들을 무자비한 칼바람으로 쓸어버리고 …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 뚫고 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이 '백두의 혁명정신'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먹고 살기 어렵다고 불만을 표출하지 말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백두의 혁명정신'이라는 것이다.
백두산 찾은 북한 노동당 답사 행군대
● 내부 반발 잠재우는 엄혹한 분위기 만들어

김 위원장이 한겨울 백두산 답사를 지시하며 백두의 혁명정신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분위기 엄혹한데 잘못 보였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당분간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미국과의 대결을 결정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가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이 주민들에게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최근 북한 매체들을 통해 전면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백두산정신, 백두산대학은 그래서 내부 결속을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외부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주민들에게 백두의 칼바람을 맞게 할 정도로 자력갱생으로 버텨갈 준비가 돼 있으니 비핵화 협상에서 쉽사리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마냥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북미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한겨울 백두산 답사 행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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