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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일본 아이돌 그룹의 '한류 따라잡기' 성공할까?

이홍천|일본 도쿄도시대학 사회미디어학과 준교수

[인-잇] 일본 아이돌 그룹의 '한류 따라잡기' 성공할까?
한국을 대표하는 보이밴드인 방탄소년단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이라고 들었다. 이전까지 아이돌 그룹들은 대부분 신비주의 장막 안에서 소속사가 만들어놓은 컨셉트에 맞춰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방탄소년단은 이 틀을 깨고 SNS를 통해 솔직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게 차별화된 성공 요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제 연예계도 '신비주의'보다는 '친근함'이 더 큰 매력으로 부각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도 일본의 아이돌 시장만은 예외였다. 일본인들이 일반적으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인 데다가, 연예기획사의 힘이 막강해 소속 연예인들에게 대한 강력한 관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기획사로서는 연예인의 약점 많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 포장된 이미지를 부각하는 게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본의 아이돌 시장에도 아라시(폭풍)가 몰려올 조짐이다. 폭풍을 일으키는 주역은 일본의 남성 아이돌 그룹을 대표하는 아라시(Arashi)이다. 이들은 11월 3일부터 SNS 활동을 개시한다고 전격 발표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지난 1월 2020년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그만한다고 발표한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은 물론이고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웨이보에도 공식 계정을 개설해 현재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까지 시작했다.

아라시의 인터넷 활동 개시가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유명 아이돌이어서가 아니다. 일본의 남성 아이돌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대형 연예기획사 '쟈니즈' 소속 그룹 중 최초로 인터넷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에 대중들은 더 주목하고 있다. 쟈니즈는 소속 가수들의 음원은 물론이고 사진 한 장이라도 인터넷에 무단으로 실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는 팬들조차 자신의 계정에서 소속 가수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일본 아이돌 그룹 아라시 (사진=자니넷 홈페이지 캡처)
쟈니즈는 쟈니 키타가와가 1975년 남성 아이돌 그룹을 집중 육성하겠다며 설립한 연예기획사이다. 아라시를 비롯해서 스맙, 소년대, 토키오, 킨키키즈, 칸쟈니8, 캇툰 등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남성 아이돌 그룹을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일본 연예계의 큰손으로 군림했다. 소속 아이돌 그룹의 인기를 이용해 드라마, 영화, 광고, 오락 프로그램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자사의 인기 그룹들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대가로 다른 연예인의 출연을 거부하거나 캐스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소속 아이돌이 출연한 프로그램은 쟈니즈의 허락 없이는 재방송이나 해외 판매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많은 프로그램의 출연진을 쟈니스 소속 연예인들로 채우고 있는 방송사들로서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일본의 방송 콘텐츠가 해외 진출이 어려운 이유로 쟈니즈의 저작권 횡포가 거론될 정도이다.

이렇게 횡포에 가까운 갑질이 문제가 되자 일본의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제동을 걸었지만, 쟈니스의 눈치를 보느라 대부분의 방송사는 주요 뉴스로 다루지도 않았다. NHK정도만 쟈니즈가 전 스맵 멤버 3인의 방송 출연을 막기 위해서 방송사에 압력을 가한 것은 독점 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의 조치를 내렸다고 전했을 뿐이다.

일본 연예 산업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아라시의 시도가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일본 내에서는 이번 시도가 가능했던 배경으로 아라시가 내년까지만 활동할 예정이어서 새로운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손실을 내년으로 한정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또 쟈니스에서 전권을 휘둘러온 전 사장 쟈니 기타가와가 지난 7월 사망한 것도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공정위의 옐로카드로 인해 쟈니즈가 독점 체제를 이런 방식으로 더는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요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한류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문화 시장을 가졌다고 평가받아온 일본이지만, 요즘은 한류의 흐름 속에 일본 대중문화는 '우물 안 개구리' 취급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의 아이돌 그룹은 물론 드라마나 영화 모두 한국에 밀리는 모습이다. 결국 일본의 대표적인 연예기획사가 한류의 성공요인을 벤치마킹하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SNS를 이용해서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은 요즘 한국의 아이돌 그룹 사이에선 전반적인 흐름이 됐다. 아라시의 새로운 시도는 분명 한류의 성공 요인을 참고한 것이다. SNS 개통 보름 만에 아라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00만 명을 넘었고, 트위터는 214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첫걸음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이런 움직임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류 따라잡기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일본의 아이돌 시장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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