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손흥민보다 '빨리·많이' 뛰는 한국 럭비…'새 역사' 원동력

[취재파일] 손흥민보다 '빨리·많이' 뛰는 한국 럭비…'새 역사' 원동력
한국 럭비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의 역사적인 순간은 두 장면으로 압축됩니다.

#장면1. 중국과 준결승. 7대 0으로 지고 있던 종료 30초 전. 공을 받은 선수는 오른쪽 측면의 장성민. 키 187cm 109kg의 '거구'가 중국 선수들의 태클을 연거푸 뿌리치더니 코뿔소처럼 달려 골라인을 뚫었습니다.

#장면2. 홍콩과 결승전. 이번에도 7대 0으로 지고 있던 후반전. 주장 박완용이 독주를 시작했습니다. 뻥 뚫린 중원을 시원하게 갈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홍콩 선수들이 뒤를 따랐습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우리나라는 두 경기 연속 끝내기 승리를 거두고 도쿄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우승했습니다. 한 장뿐인 올림픽 직행 티켓을 거머쥐며 1923년 럭비 도입 후 새 역사를 썼습니다.

연장에서 짜릿한 끝내기 트라이를 성공한 장정민(중국전)과 장용흥(홍콩전)의 질주도 눈부셨지만 앞선 두 장면에서는 한국 럭비의 강인함이 돋보였습니다.
[취재파일] 손흥민 보다 '빨리·많이' 뛰는 한국 럭비…'새 역사' 원동력
● 손흥민보다 빨리, 많이 뛰는 7인제 럭비

럭비와 뿌리가 같은 축구와 비교하면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강인한지 알 수 있습니다. 7인제 럭비에선 11명이 뛰는 축구보다 공간이 많습니다. 더 많이 뛸 수밖에 없죠. 수시로 공격과 수비 전환이 이뤄지고, 7명이 한 몸처럼 속도를 맞춰야 해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 속에 숨 돌릴 틈 없이 뛰어야 합니다.

세계 정상급 스피드를 자랑하는 손흥민(토트넘) 선수와 비교해볼까요? 지난 주말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전에서 손흥민 선수가 기록한 최고 속도는 33.67km/h. 결승 진출을 확정하던 순간 장정민은 이보다 약간 빠른 33.87km/h로 달렸습니다. 대표팀에서 가장 빠른 '삼총사' 장용흥(NTT커뮤니케이션스), 장정민(포스코), 정연식(HINO자동차)은 모두 100m를 11초에 끊습니다.

전력질주 횟수를 비교하면 더 놀랍습니다. 손흥민 선수는 한 경기에 전력질주를 가장 많이 하는 선수로 꼽히는데요, 웨스트햄을 상대로도 24회(시속 25.2km/h 이상)를 기록해 양 팀 통틀어 압도적 1위를 차지했습니다. 팀 내 2위인 알리(13회)의 두 배에 가깝죠. 럭비 대표 선수들은 전후반 14분 동안, 손흥민 선수의 90분 기록과 비슷한 수치를 찍습니다.

평균 속도를 분석하면 분명히 드러납니다. 손흥민 선수의 평균 속도는 시속 6km. 대표팀 '최고령' 박완용(35·한국전력) 선수는 10km/h에 가까운 평균 속도를 기록했습니다. 중간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박완용 선수는 한 경기에 2~3km 정도를 뛰는데, 이번 대회에선 이틀 동안 5경기, 교체 없이 70분을 소화하며 10km가 넘는 활동량을 보였습니다. 팀 내 최고입니다. 90분을 뛴 손흥민 선수(9.95km)보다 많은 셈이죠. 이렇게 뛰면서도 축구보다 훨씬 격렬한 몸싸움도 버텨내야 합니다. '체력왕' 박완용 선수의 결승전 트라이 장면 (#2)을 이번 대회 결정적인 순간으로 꼽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취재파일] 손흥민 보다 '빨리·많이' 뛰는 한국 럭비…'새 역사' 원동력
● 데이터+과학의 힘…교체 전술의 비밀

이와 같은 객관적 비교는 스포츠 과학 발전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우리 축구대표팀, 토트넘과 마찬가지로 럭비대표팀도 위치추적장치(GPS)로 활동량과 속도 등을 실시간 분석하고 있습니다. 체력 상태를 정확히 예측하면 부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취재파일] 손흥민 보다 '빨리·많이' 뛰는 한국 럭비…'새 역사' 원동력
[취재파일] 손흥민 보다 '빨리·많이' 뛰는 한국 럭비…'새 역사' 원동력
럭비대표팀은 이 데이터를 전술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준결승전 교체가 적중한 배경입니다. 키 187cm에 몸무게가 105kg로 힘을 갖춘 한건규는 한국 럭비의 간판입니다. 압도적인 신체조건을 앞세워 중국의 돌진을 온몸으로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상이 감지됐습니다. 최고 심박수가 분당 218회에 이르더니 잘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이번 대표팀 소집 전 부상 탓에 체력 훈련이 부족했는데 연이은 강행군에 몸이 신호를 보낸 겁니다. 회복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상태로 계속 경기를 뛰면 상대 주요 선수를 놓치거나 최악의 경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한 코치진은 한건규를 빼고 장성민을 투입했습니다. 장성민은 최고 속도 30.59km/h로 적진을 돌파해 동점 트라이를 성공했습니다. 앞서 최고의 장면 (#1)으로 뽑은 순간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한때 아시아 정상을 호령하던 한국 럭비는 무관심 속에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국내 실업팀은 3개뿐(한국전력, POSCO, 현대글로비스)입니다. 1부 리그에만 16팀, 2부까지 더하면 24팀이 있는 일본과는 격차가 큽니다. 그사이 일본은 아시아 정상을 넘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4강에 올랐고, 올해 자국에서 개최한 15인제 월드컵 대회에선 사상 첫 8강에 진출했습니다.

부활 가능성을 확인한 우리 선수들은 다음 달 지옥 훈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인함을 되찾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을 꺾어보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자료 제공 : OPTA, CATAPULT)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