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연평도 포격전 9주년…北은 해병대가 두렵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11.22 08:42 수정 2019.11.22 09: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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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과 연기 속에서 반격하는 K-9 자주포와 강승완 해병내일(23일)은 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진 지 9년째 되는 날입니다. 2010년 11월 23일 화요일 오후 2시 34분 연평도에서 12km 떨어진 개머리 해안으로 북한군 서남전선사령부의 122mm 방사포 부대가 내려와 연평도를 향해 무차별 사격했습니다. 해병대 연평부대는 머리 숙이지 않고 불타는 K-9 자주포로 맞서 싸웠습니다.

연평도 포격전을 상징하는 장면들이 참 많습니다. 화염과 연기 속 K-9 자주포의 포탑 위에 당당히 앉아있는 강승완 해병, 방사포탄이 어디로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목숨 걸고 강승완 해병과 K-9을 촬영한 이성홍 대위, 철모 외피에 불붙은 줄도 모르고 싸운 임준영 해병, 방사포탄이 터지는 주민센터 옆을 뛰어가는 주민들, 곳곳에서 연기가 치솟는 연평도…

연평도 포격전 9주년을 맞아 지금까지 빛을 본 적 없는, 새로운 사진 한 장을 공개합니다. 2013년 북한이 남쪽으로 날려 보낸 선전 전단 즉 삐라입니다. 백령도에서 발견됐는데 당시 박근혜 대통령, 김관진 국방장관, 이영주 해병대 사령관과 함께 낯선 얼굴이 삐라 가운데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을 현장에서 지휘한 2010년 그날의 연평부대장(대령) 이승도입니다. 북한이 삐라를 보냈던 2013년에는 한미연합사 연습 처장(준장)이었고 현재는 해병대 사령관(중장)입니다.

삐라의 제목은 '역적무리에게 내린 사형선고'입니다. 북한은 삐라에 군 통수권자, 국방장관, 해병대 사령관 옆에 계급으로는 한참 뒤인 이승도 연평부대장을 올려놓고 이를 갈았습니다. 그만큼 북한에게는 연평부대가 눈엣가시이고 연평도 포격전이 뼈저리게 아팠다는 방증입니다.
북한은 2013년 살포한 삐라에서 해병대 연평부대장 이승도를 겨냥했다.● 불타는 자주포로 반격한 연평부대의 투혼

해병대 연평부대의 투혼은 눈물겨웠습니다. 북한은 연평부대의 최강 화력인 포 7중대의 K-9 자주포를 집중 공격했지만 포 7중대는 교범에도 없는, 맞으면서 싸우는 신화를 썼습니다. 그해 1월 1일부터 포격전이 벌어진 11월 23일까지 포 7중대는 455회의 전투 배치훈련을 했습니다. 포 7중대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K-9 자주포로 북한 특정 지역을 겨냥해 사격하는 연습을 한 겁니다.

북한군 122mm 방사포들은 눈 감고도 사격할 수 있는 'K-9 자주포 머신'들을 잘못 건드렸습니다. 포 7중대는 자주포 6문 중 1문이 훈련 중 포신에 탄이 걸려 고장 난 상황에서 북한의 방사포탄 세례를 맞았습니다. 1포, 2포, 3포가 불이 붙거나 장비가 파괴돼 임무 불능 상태였습니다.

반격할 수 있는 포는 5포와 6포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피탄돼 끊어진 케이블을 잇고 2포가 극적으로 가담해 총 3문이 반격태세를 갖췄습니다. 이승도 연평부대장의 명령에 포 7중대 K-9 자주포 3문으로 1차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북한군이 방사포 공격을 한 지 13분 만이었습니다.

13분 만의 반격을 두고, 늦었다고 타박하는 이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백전노장인 당시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장 존 맥도널드 장군이 연평도 포격전 상황을 파악한 뒤 남긴 말입니다. "갑자기 포탄이 날아와 옆 동료가 죽었는데 13분 후에 다시 현장에 나가 대응 사격을 했다. 쉬울 것 같나! 바깥에서는 몰라도 그 용기를 우리는 안다."

포에 불이 붙고, 기절했다 깨어난 대원들은 고막이 나가 천지 분간이 안되던 3포도 불을 끄고 포를 수동으로 전환해 2차 사격에 참가했습니다. 2차 때는 K-9 자주포 총 4문으로 반격했습니다. 당시 포 7중대장이었던 김정수 소령은 "만약 우리가 선제공격했다면 무도와 개머리의 북한군은 전멸했을 것"이라며 "맞은 뒤 때렸으니 북한군 피해가 그 정도였다"라고 말합니다.
불 붙은 철모를 쓰고 싸운 임준영 해병● 연평도 포격전은 승리한 전투이다

포 7중대는 1차 사격 때 도발 원점인 개머리 해안이 아니라 무도를 노렸습니다. 연평도의 대포병 레이더 AN/TPQ를 운영하던 타군 측에서 원점의 좌표를 못 잡아냈던 겁니다. 그래서 입에 단내나도록 익힌 무도의 북한군 진지를 향해 1차 사격을 했습니다. 무방비였던 북한 무도는 초토화됐고 북한군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승부는 1차 사격으로 이미 끝났지만 연평부대 포 7중대는 전열을 정비해 2차 사격에 나섰습니다. 이때는 타군으로부터 좌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원점의 고도를 잘못 입력한, 부정확한 좌표였습니다. 개머리 해안으로 30발을 쐈지만 북한군 방사포를 직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 방사포 부대는 퇴각했습니다.

북한이 먼저 포를 쐈고 연평부대는 불바다 속에서 반격했습니다. 연평도에서는 서정우 해병과 문광욱 해병이 전사했고 민간인 2명이 숨졌습니다. 우리 정보 당국은 북한군 사상자가 사망자 10여 명을 포함해 30~40명 선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북한군 인명피해가 사망 10여 명, 부상 30여 명이라는 탈북자의 증언도 나왔습니다.

북한 노동신문 2011년 4월 30일 자 정론에는 "'여러분, 원쑤의 포탄에 우리 병사들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합니까'라는 방송차 소리에 '아닙니다'하고 병사들이 싸우는 전호(戰壕)로 달려간 황해남도 농민들여"라는 묘사가 나옵니다. 포 7중대의 1차 포격 당시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거야. 저 XX들 왜 이러는 거야. 이거 뭐야"라는 무도 주둔 북한군의 다급한 통신이 우리 군에 감청되기도 했습니다.

포를 먼저 내린 쪽은 북한군 서남전선사령부였고, 피해도 북한이 훨씬 컸습니다. 연평도 포격전은 연평부대가 이긴 싸움, 승전입니다. 북한이 이승도 연평부대장을 겨냥한 삐라를 제작해 살포한 사실만 봐도 충분히 짐작됩니다. 해병대는, 훈장 없는 승리를 거둔 연평부대는 존재 자체가 북한군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억지력(Deterranc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