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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한항공 안전비디오 논란…외국 항공사는?

눈길 끌지만 '안전 요령 전달에 문제' 지적도

대한항공이 지난 4일부터 도입한 새 기내 안전비디오(세이프티 비디오·safety video)가 논란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보아와 슈퍼엠 등 유명 아이돌 가수를 출연 시켜 만든 뮤직비디오 형식 영상이 '안전 안내'라는 본질을 등한시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 랩으로 '비행 안전 안내'…"신선" vs "안전 전달력 ↓" (11/10 8뉴스 리포트)
노동규 취재파일_이미지

● 14년 만에 '새 안전비디오'…"신선하다" VS "내용 전달 안 돼"

새 안전비디오는 아이돌 가수들이 우주로 보이는 초현실적 공간에서 여객기(?)를 이용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가운데 안전 요령을 안내하는 식입니다. 한 편의 K팝 뮤직비디오 같은 이 영상은 공개 1주일 만에 벌써 유튜브 5백만 조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댓글을 보면 아랍이나 동남아시아계 K팝 팬들이 주로 뜨거운 반응인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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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시민들도 일단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10대들이 특히 흥분했습니다. 신원중학교 김은채 학생은 "승무원들이 몸짓으로 보여주는 건 좀 따분했는데 이건 한눈에 집중되고 좋다"고 말했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한국을 찾은 캄리시 씨도 "전자적인 느낌의 영상이 현대적이라고 느꼈고 아이들과 노래가 나와 주의를 끈다"고 좋아했습니다.

반면, 우려를 보인 승객도 있었습니다. 공항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온 미취학 아들을 마중 나갔던 한 30대 여성은 "노래가 나오니 애들이 볼 거 같긴 한데 이게 구명동의를 입는 법을 알려주는 건지 (그냥 오락물인지) 모를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승객의 관심을 끄는 건 좋은데 내용 전달이 제대로 안 된다는 불만입니다.

● 기계음으로 왜곡된 음성·랩으로 안전 요령 안내 논란

실제로 논란인 대목들도 바로 '전달력'과 관련돼 있습니다. 전자기기와 배터리 사용 주의사항과 같은 중요한 기내 안전 요소를 왜곡된 전자음으로 안내하거나, 비현실적인 공간에 모여 있는 아이들과 랩을 하는 컴퓨터그래픽 캐릭터를 통해 구명동의 착용 방법을 설명하는 연출이 대표적입니다. 한 인터넷 항공 관련 커뮤니티 사용자는 "부정확한 발음의 어린이가 구명동의 착용 방법을 안내하다니 제정신이냐"고 말했습니다.

국내외 전문가들도 비슷한 반응입니다. 호주의 항공 저널리스트 브라이언 윌슨은 트위터를 통해 대한항공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매체가 주관하는 "멍청한 동영상 상(賞)"을 주겠다고 조롱했습니다. "안전과 오락을 혼동하는 항공사는 비상상황에 대처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겁니다. 한국항공운항학회장 송병흠 한국항공대교수도 "목숨을 살리는 데 중요한 안전 요령을 정확히 전달하는 게 중요하지, 멋있는 비주얼을 보여주는 게 안전비디오의 주목적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송 교수는 "비상상황에 처한 사람이 기억하는 건 컴퓨터그래픽보다는 실물이다"며 직관적이지 못 한 요란한 그래픽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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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안전비디오…에어프랑스·콴타스·버진아메리카의 경우

각국 항공사들이 앞다퉈 특별한 안전비디오를 만들고 있는 건 세계적 경향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압도적 영상미의 안전비디오로 유명한 호주 콴타스항공 앨리슨 웹스터 CEO는 안전비디오가 "매년 수백만 고객과 호주의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창의적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호주의 국민가요 'I Still Call Australia Home'이 흐르는 가운데 세계 각지에서 호주인들이 보여주는 낙천성과, 이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안전 요령은 절로 눈길이 갑니다. 다인종 모델들이 강렬한 원색의 옷을 입고 우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몸짓으로 안전 요령을 안내하는 에어프랑스는 어떻고요? '에어프랑스 시크'라는 말까지 낳으며 가장 성공적인 기내 안전비디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성공한 안전비디오 영상들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파격적이되 '안전은 양보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한항공 안전비디오가 콘셉트를 차용한 게 명백한 저가항공 버진아메리카의 영상만 해도 그렇습니다. 운율 맞춘 가사와 경쾌한 노래·군무로 유명한 이 '뮤직비디오 스타일 안전비디오의 원조'는 처음부터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 안전 팁을 알려주겠다"며 시작합니다. 앞서 언급한 다른 항공사들과 마찬가지로 안전 요령만큼은 명확한 기내 실물을 보여주며 안내합니다. 보수적인 게 곧 촌스러움이 아니란 건 이들 영상을 직접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 국토부 고시 따른 '의무'…기본 잊은 건 아닌지 돌아봐야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주목도를 높이는 부분에 치중해 자극적이거나 관심 끄는 요소들로만 메시지를 구성하다 보면 시청자가 실제 메시지를 기억 못 하는 커뮤니케이션 실패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영상에 대한 좋은 생각과 감정을 갖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보를 시청자에게 각인 시켜 실제 행동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결국, 대한항공 새 안전비디오 논란은 어쩌면 기본을 잊은 까닭에 불거진 것인지 모릅니다. 안전비디오는 국토교통부 고시인 '운항기술기준'의 '승객브리핑'에 따른 것입니다. 기장이 승객에게 비상구와 흡연 금지 안내부터 좌석벨트·산소마스크 사용법, 비상 탈출 방법까지 기내에서 승객이 알아야 할 안전의 모든 것을 안내하는 건 법이 정한 항공사의 '의무'입니다. 의무에 따른 안내인 걸 잊은 채 흥미 본위의 제작을 한 건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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