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조국과 양현석, 그리고 '검찰개혁'의 진심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19.11.10 16:53 수정 2019.11.11 16: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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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 양현석 씨는 지난 9일 경찰에 다시 출석했습니다. 양 씨가 출석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문 앞에는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양 씨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에게 "경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라는 의례적인 말을 남기고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양 씨의 출석 장면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입니다. 유명 인사가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할 때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고, 혐의에 대해 간단한 질문을 던지면,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라고 한 마디하고 문 안으로 들어가는 '포토라인' 풍경은 지금까지 수백 번 이상 반복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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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양현석 (사진=연합뉴스)● 정경심과 양현석의 서로 다른 '출석 장면'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피의자 신분으로 지난달에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조 전 장관 관련 수사가 시작되면서 검찰개혁 과제의 일환으로 '포토라인' 취재 관행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고, 검찰이 주요 피의자의 출석 예정 시각을 알려주는 관행을 폐지했기 때문입니다. 정경심 교수는 '포토라인' 폐지라는 '검찰개혁'의 첫 번째 수혜자였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비공개 처리된 정경심 교수와 반대로, 양현석 씨의 경찰 출석 장면이 생생하게 공개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정경심 교수는 현 정부의 최고 실세 중 한 명이자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조국 서울대 교수의 가족인 반면, 양현석 씨는 본인은 물론 가족 중 공적인 직위를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 경찰은 애초 양현석 씨에게 지난 6일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양 씨에게 6일 오전 10시에 출석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기자들에게 사전에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양 씨는 '언론 부담 등을 이유로' 6일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양 씨는 토요일인 지난 9일에 출석했습니다. 9일에는 정확한 출석 시각까지는 기자들에게 사전에 알려지지 않아서, 담당 기자들이 출석이 예상되는 시간대에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검찰개혁 과제였던 '심야조사', 양현석에게는?

이밖에도 양현석 씨에 대한 경찰 수사 과정을 살펴보면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순식간에 시급한 개혁과제로 자리 잡아 금지되거나 폐지된 관행이 여럿 눈에 띕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심야조사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양현석 씨는 지난 9일 오전 10시쯤 출석해 밤 11시 50분쯤 조사를 마쳤다고 합니다. 13시간 50분 량 조사를 받은 것입니다. 이른바 '심야조사'를 받은 것입니다.

물론 조사 자체는 일과 시간인 오후 6시 이전에 종료되고, 이후 양 씨가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 내용을 검토하느라 많은 시간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문제로 지적받은 '심야조사' 행태 역시 대부분 조서 검토 시간 때문에 심야까지 조사가 이어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양현석 씨에 대해 검찰개혁 과제로 지적됐던 심야조사가 이뤄진 모습입니다.

그러나 조국 전 장관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 때와는 달리, 양현석 씨가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조사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양 씨에 대한 조사가 밤이 되기 전에 마무리됐는지, 조서 검토 시간을 포함해 심야까지 조사가 이어진 것인지 따져보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조국 전 장관의 가족들이나 양현석 씨나 똑같은 인권을 가진 사람인데도, 양현석 씨를 무리한 수사로부터 지키고 양 씨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양현석 (사진=연합뉴스)● 양현석에 대한 피의사실은 공개되어도 되나?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피의사실 공표' 문제 같은 경우 양현석 씨 사건과 비교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양현석 씨, 그리고 양 씨의 기획사 소속 가수인 승리에 대한 사건만큼 광범위하게 피의사실이 공표되고 보도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승리의 경우에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공표되거나 보도된 피의사실 중 상당 부분에 대해서는 경찰이 검찰로 사건을 넘기면서 불기소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나중에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을 정도가 되기는커녕, 경찰조차 기소 의견을 밝히기 어려울 정도의 어설픈 '피의사실'이 여러 차례 공표되고 보도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조국 수사 때 벌어졌다면 어떤 반응이 있었을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에 대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피의사실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많은 사람 중에 양현석 씨나 승리의 인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양현석 씨뿐만이 아닙니다.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는 와중에 해외에서 머물다가 귀국하면서 체포된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의 경우는 어떨까요? 김 회장은 지난달 23일 공항에서 체포돼 연행되는 장면이 수십 곳의 언론사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습니다. 김 회장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언론사도 거의 없었습니다. 검찰에 출석하는 장면 정도가 아니라 체포돼서 수사관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공개된 것입니다. 하지만, 공적 인물이 수사기관에 출석하는 장면이 공개되는 것이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던 사람 중에 김 회장의 체포 장면이 생생하게 공개된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포토라인 폐지나 피의사실 공표 금지가 가장 시급한 검찰개혁 과제처럼 서둘러 추진된 것도 납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故 노회찬 前 의원은 "법은 만인에게 평등합니까? 만 명(萬 名)만 평등할 뿐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법이 다르게 적용되는 현실을 꼬집은 발언이었습니다. 포토라인 폐지나 피의사실 공표 금지는 노회찬 前 의원이 말한 '만 명'에게만 적용되는 개혁에 가깝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검찰청에 오게 되더라도 포토라인에 서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보통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일반 형사사건과 관련해 피의사실 공표가 문제가 될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조국 양현석 (사진=연합뉴스)● 양현석-승리의 인권도 '조국 일가'와 똑같이 중요한 이유

물론 '만 명'에게만 유효한 개혁 방안이라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포토라인이나 심야조사 폐지, 피의사실 공표 금지가 정말로 인권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면, 왜 비슷한 시기에 포토라인, 심야조사, 피의사실 공표가 모두 더욱 심각하게 문제가 된 양현석 씨나 승리의 경우에 대해서는 문제제기가 거의 없는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양현석 씨나 승리의 경우는 조국 전 장관이나 그 일가보다 공익적 목적을 이유로 권리를 일부 제약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훨씬 어려운 사람들인데도 말입니다. 이들은 어떠한 공직도 맡은 적이 없고, 고위공직자와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양현석 씨나 김준기 전 회장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조국 전 장관이나 정경심 교수가 받고 있는 혐의나 양현석 씨나 김준기 전 회장의 혐의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가 진행될 때 가장 시급한 검찰개혁 과제처럼 제시되고, 실제로 긴급하게 개혁을 수행한 것이 정말로 보편적 인권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면, 정경심 교수뿐만 아니라 양현석 씨나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에게도 같은 잣대가 적용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양현석 씨 등의 경우 경찰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인권 보호에 대해서 검찰 사건 피의자와 경찰 사건 피의자 사이에 차이를 둘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수사와 관련해 지금보다 경찰의 재량권을 훨씬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라면 포토라인, 심야조사, 피의사실 공표 금지 같은 검찰의 직접수사 관행과 관련된 개혁 방안을 경찰도 시급하게 실행하도록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기소권이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공식 기자회견을 포함해 모든 형태의 수사결과 발표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경찰의 경우,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를 막겠다면서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 같이 내용적으로도 극히 부적절하고 현실성도 부족한 훈령을 제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경찰로서는 적절한 방안을 찾기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대한민국 검찰 (사진=연합뉴스)● 그러한 '검찰개혁' 요구에 '진심'이 담겼다면…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가 진행될 때 검찰개혁을 주장했던 사람 중에, 검찰이 지금 '우리 편'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되어야 한다거나, '우리 편'을 지키기 위해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상대 편'이거나 '옳지 않은 편'에 서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마땅합니다. 미국 수사기관의 인권 보호 규칙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미란다 원칙'은 미성년자 강간범이었던 미란다의 인권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마련된 것이란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이른바 '조국 대전'이 벌어졌던 당시에 시급하게 포토라인을 폐지해야 하고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에게 인권보호라는 '진심'이 정말로 있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