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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벌새' 감독이 말한 '김은희와 김보라, 그리고 1994년'

[스브수다] '벌새' 감독이 말한 '김은희와 김보라, 그리고 1994년'
1994년, 서울 대치동에 사는 중학교 2학년 김은희(박지후)의 삶은 특별할 것이 없다. 가족, 남자 친구, 동성친구에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한 여중생의 사춘기로 단순화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 '벌새' 속 은희의 삶은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간들이기도 하다. 이 평범한 이야기의 특수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영화를 연출한 김보라 감독은 '벌새'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은희가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물리적인 집이 아니라 심리적인 집이요. 영화의 오프닝에서 주인공이 어떤 상태인지 질문하고 엔딩에서 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은 은희의 얼굴과 얼굴로 끝나는 구조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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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의 유의미한 날갯짓은 관객에게 가 닿았고, 관객들은 극찬과 입소문으로 비상을 도왔다. 지금까지 모은 관객 수는 13만 3,652명.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고, 지난 해까지 범위를 넓혀도 최다 관객이다. 8월 29일에 개봉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영 중이다.

올해의 영화다. 동시에 올해의 여성 영화이기도 하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여성의 시선을 담아 여성 감독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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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부터 완성까지 6년…"제작비 조달 어려웠다"

단편 영화 '리코더 시험'(2011)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김보라 감독은 2012년부터 장편 데뷔작 연출 준비에 들어갔다. 2012년 시놉시스가 나왔고, 2013년 초고가 완성됐다. 가장 어려웠던 건 제작비를 구하는 일이었다.

'벌새'라는 제목은 처음부터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가장 작은 새지만, 꿀을 찾아 아주 멀리까지 날아다니는 벌새는 은희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고. 또한 모호하고 낯설기 때문에 한번 더 찾아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작비를 마련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상업 자본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이 아니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죠. 저예산 안에서 스태프들을 꾸리고 배우를 섭외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고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제작비 3억 원을 확보했고, 총 32회 차의 촬영을 마쳤다. 완성된 영화에서는 제작비의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연출과 시나리오, 연기는 물론이고 음악(마티야 스트르니자 음악감독), 촬영(강국현 촬영감독), 미술(김근아 미술감독)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요소가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했다.

첫 번째 편집본은 3시간 30분 분량이었다. 감독 스스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2시 40분 버전이라고 했다. 김보라 감독은 "지금과 거의 비슷한데 디테일이 좀 더 추가된 버전이예요. 그러나 극장 개봉이나 여러가지를 고려했을 때 2시간 18분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부산영화제에 출품해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최종 러닝 타임을 결정하자고 마음 먹었는데 다행히 반응이 괜찮았어요. 지금 완성본이 이 영화의 운명이구나 싶더라고요."라고 답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벌새'는 성수대교 사건을 다룬 영화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영화에서 성수대교는 매개로 작동할 뿐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사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수대교 붕괴는 1990년대 초반 사람들의 어떤 트라우마를 설명할 때 절대 빼놓을 없는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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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이야기는 시나리오 구성 때부터 들어가 있는 부분이었어요. 이 영화의 구조 안에서 성수대교 사건을 언제 등장시킬까를 고민했고, 그 고민 끝에 지금의 배치가 이뤄졌어요. 그 전까지는 은희의 일상을 촘촘하게 보여주는데, 미세한 균열이 있죠. 특히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요. 그게 영화에서는 은희의 '혹'이라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어요. 또 학교 안에서도 기이한 질서랄까. 은희가 상처를 받거나 누군가 떠나가거나 하는 사건들이 일어나요. 좋아하는 선생님도 어느 날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가고....그 다음에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그래야만 일상이 어떻게 성수대교 붕괴와 연결되고, 이러한 물리적 동기가 영화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만나는지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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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희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의 성장을 그렸다"

'벌새'는 김보라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반영한 영화다. 극중 은희처럼 김보라 감독도 대치동에서 자랐으며 부모님은 아파트 상가에서 떡집을 운영했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누구나에게 가닿을 수 있는 서사로 완성한 것은 오롯이 감독의 역량이었다.

"제게 1994년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사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피부로 와 닿는 시기였달까요. 김일성이 죽고,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큰 사건이 있었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성적에 따라 A반, B반으로 나눠졌는데 그게 저라는 인간에게 잘 안 맞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본질과 맞닿은 삶을 살고, 진실한 인관 관계를 맺을 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던 시기였죠."

김보라 감독은 "나의 이야기로 출발했다가 나를 빼내는 과정을 거듭 거쳤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 수정도 많이 했고,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에게 시나리오 모니터링도 부탁했어요. 어떻게 하면 보편적인 서사가 될 지를 끊임없이 고민했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은희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됐고, 나아가 한국 사회를 은유하는 영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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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의 성장 이야기를 넘어 한국이라는 나라의 성장을 그린 영화기도 해요. 1994년에 성수대교가 붕괴됐고, 그 이후 IMF를 겪고 이겨냈어요. 모든 영화는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기 마련이에요. '벌새'가 성장 영화가 아닌 건 아니지만 성장 영화이기만 한 영화는 아니에요. 삶과 죽음, 사람과 사랑에 관한 영화, 또 신에 관한 이야기기도 해요."

영화의 문학적인 오프닝과 엔딩에 대해서도 의미를 설명했다.

"오프닝과 엔딩을 은희의 얼굴과 얼굴로 끝나는 구조를 택했어요. 오프닝에서는 집이 있지만 집이 있지 않다고 느끼는 은희의 불안감을 드러내고 싶었죠. 보통은 집에 벨을 누르고 응답이 없으면 '엄마가 외출했나보다'라고 느낄 텐데 은희는 마치 버림받았다는 듯 울어요. 은희와 가족이 어떤 관계인지를 넌지시 드러내려고 했어요. 이 오프닝 톤이 다소 튄다고 빼라고 하는 사람도 꽤 있었어요. 그렇지만 전 이 오프닝이 있어 '벌새'가 일반적인 영화로 보이지 않고, 또 어떤 분위기를 세팅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벌새'는 국내에 정식 개봉하기도 전에 전세계 영화제에서 27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로 보이는 이 영화를 해외 관객과 평론가들은 어떻게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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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별로 구체적이고 독특한 상황은 있겠지만 결국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는 걸 느꼈어요. 여성이 아직도 억압 받고 있다는 것도 세계 어디나 비슷해요. 스페인의 한 관객이 영화를 보고 쪽지를 보내왔는데 '은희가 나고, 지금의 나도 그 과정을 헤쳐나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성수대교 붕괴의 경우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란디 다리(이탈리아와 스위스 제노바를 잇는 다리) 붕괴 사건을 떠올리며 이입하고, 일본 관객들은 동일본 대지진을, 미국 관객들은 9.11을 떠올리더라고요. 철거촌 문제도 세계 많은 나라들이 개발과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니까요."

해외 관객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이해한 건 '인간의 자유롭고자 하는 열망'이라고 했다. 김보라 감독은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랑하고 사랑 받길 원해요. 그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보다 근본적인 사랑일 수도 있겠죠. 이 영화를 자유에 대한 영화이자 사랑에 대한 영화로 여기시더라고요. 해외에서 만난 한 아시아 관객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아시아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공감했어요. 대부분의 여성 관객들은 여성의 억압을 잘 다뤄졌다고 칭찬하시기도 했고요."라고 덧붙였다.

김보라 감독은 '벌새'를 통해 엘리슨 벡델과 만났다. 벡델 테스트(영화에 최소한의 젠더 개념이 반영되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테스트)로 유명한 미국의 여성 만화가다.

"제가 아는 분이 벡델의 매니저였어요. 제 영화 '리코더 시험'과 '벌새'를 보고 좋았다고 이메일을 보내주셨어요. 벡델의 집에 놀러 가서 아내분과 다같이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저와 마찬가지로 벡델도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많이 반영해왔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인 지를 말하는데 말이 잘 통했어요. '벌새'에 대해서도 여중생 이야기를 영웅서사나 대서사시처럼 그린 것이 독특하다고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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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내 본질을 표현하는 창구"

김보라 감독이 영화감독을 꿈꾼 건 대학교때부터였다. 그는 "나를 굳이 설명하지 않고 영화로 보여주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만들어서 내놓으니까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되게 좋더라고요. 내 본질을 영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요. 대학원에 가서는 나의 이야기와 더불어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어요."

김보라 감독은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컬림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관이 확장된 시기였다. 2011년에는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벌새'라는 영화를 구상한 건 이즈음이라고 했다.

"30대 저에게 가장 큰 화두가 '벌새'였어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데뷔작이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화를 준비하며 힘든 일도 많이 겪었지만 저를 저만큼이나 사랑해주는 가족, 친구, 스태프, 배우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보라 감독은 '전망 좋은 방'을 연출하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각본을 쓴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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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졸업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면 유명한 할리우드 감독과 만나는 기회를 줬어요. 그때 제임스 아이보리를 만나 '좋은 영화란 어떤 것인가?', '좋은 캐스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했었어요. 좋은 영화란 '가짜를 삭제해나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찌보면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별로인 문장과 진실이 아닌 문장을 빼나가는 과정이니까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이 대사는 본질인가?'를 생각하면서 글을 읽어봤을 때 설익거나 겉돌 때가 있어요. 그때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하나하나 다듬어 나갔죠."

그렇다면 김보라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어떤 것일까.

"나를 발견하고, 나의 어떤 부분과 만나고, 내가 겪었던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고 있다는 거니까요."

불현듯 마지막에 이 궁금증을 해소해보고 싶었다. 단편 '리코더 시험'과 장편 '벌새'까지 이어진 '은희'라는 이름과의 깊은 인연 말이다.

김보라 감독은 "처음 듣는 질문이네요"라며 웃어 보인 뒤 "사실 어려서부터 만화가 김은희 씨의 팬이었어요. 그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발음이 청량하면서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달까."라고 답했다.

은희의 서사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묻자 "음...성인 버전을 만들 수도 있을 거 같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신감과 자기 확신,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감독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은희의 여정'이 계속해서 영화로 이어지길 바라며 김보라 감독과 첫 악수를 나눴다.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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