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북적북적] 광속불가!라니…'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오디오 플레이어를 클릭하면 휴대전화 잠금 상태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디오 플레이어로 듣기


[골룸] 북적북적 213 : 광속불가!라니…'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순간瞬間. 눈 깜짝할 순에, 사이 간입니다. 눈 한 번 깜짝하는 그 순간, 빛은 30만 킬로미터를 간다고 하죠. 그런 빛의 속도마저 부족하다면 그 스케일은 도대체 뭘까요. 우주라는 공간과 시간에서,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그럴 것도 같습니다. 제목이 어쩐지 끌렸는데 읽어보니 더더욱 빨려 들었던 이 소설집,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는 책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입니다.

단편 7개가 실려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공생 가설', '감정의 물성'... 대개 그렇겠지만 언뜻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잘 가늠되지 않습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SF 소설이라는 정보 말고는 없어서 가장 끌리는 제목부터 읽었습니다.

"아무리 치명적인 병을 앓는 환자여도 한 10년쯤 얼어 있다 깨어나면 누군가가 해결책을 찾아두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던 시대였지. 마치 인류 지성의 황금기를 보는 것 같았다니까."

"설령 알고 있었더라도 막상 그때로 돌아가면 내가 해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슬렌포니아로 갈 수 있었을까? 고민해봐도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네. 물론 해봐야 의미 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로 개척 행성에서 '먼 우주'로 급격하게 밀려난 행성들은 수십 개가 넘는데, 그 수십 개의 행성에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들을 보내기에는 경제성이 너무나 떨어진다는 거야. 우스운 일이지.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그 경제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방식만을 사용했던 것이 연방 아닌가."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아득해 보이지만, 어느 날 훅 하고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저 멀고도 멀지 않은 미래가. 그런 설정을 제쳐두면 과거의 우리가, 혹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거나 겪고 있거나 이미 겪었던 상황들이 묘하게 떠오르고 때로는 진하게 겹쳐집니다. 이를테면 저는 분단 한국의 특수상황이 빚어낸 비극인 이산가족이라든가 도시 재개발과 철거 문제, 아니면 디지털 격차 문제 같은 것부터 장거리 연애까지 천천히 여러 번 읽어나가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언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살면서도, 얼굴 한 번 볼 일 없이 사이버 공간에서만 관계 맺거나 헤어져 버리는 이 시대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서도요. 그렇게 우리는 어쩌면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해후하고 이별하는데, 그 관계란 얼마나 얄팍하고 또 깊은 걸까요.

김초엽 작가는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과학도라고 합니다. 과학도가 쓴 SF 소설입니다. 얼마 전 북적북적에서 읽었던 테드 창의 소설집을 접했을 때와 조금은 흡사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시인 엄마와 최고의 음악가이자 바리스타인 아빠"를 두셨다고 하니, 유전과 환경 요인이 어우러져 김 작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추측도 해봅니다.

할머니 주인공들, 특히 매력적이고요. "세상을 바꾸려는 개인들에 대해 쓰고 싶다"는 김초엽 작가의 말에 비교하기 어렵긴 하지만 '저도 그러고 싶어요'라고 살짝 얹으면서 크게 공감합니다.

*출판사 허블과 김초엽 작가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 <골룸: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는 '팟빵'이나 '아이튠즈'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PC로 접속하기
- '팟빵' 모바일로 접속하기
- '팟빵' 아이튠즈로 접속하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