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안정과 도전' 내걸었던 아베 새 내각, 장관 사임 사태로 휘청

스가와라 경산상,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으로 전격 사임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19.10.26 09:09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안정과 도전 내걸었던 아베 새 내각, 장관 사임 사태로 휘청
지난 9월 11일에 출범한 일본 아베 정부의 새 내각(일본에서는 '제4차 아베 재개조 내각'이라고 합니다)의 모토는 '안정과 도전'이었습니다. 아베 총리는 2차 집권을 달성한 2012년부터 새 내각을 국민에게 소개하면서 새 내각이 지향하는 목표를 일종의 '표어'로 만들어 제시해 왔는데, 그때 제시한 단어가 바로 '안정과 도전'입니다.

당시 내각 인사만 보면 '안정'은 주요 보직 장관들의 유임(아소 재무상, 스가 관방장관)과 자리 이동(고노 방위상, 모테기 외무상)으로, '도전'은 극우 성향 측근들의 등용(하기우다 문부과학상, 에토 농림수산상 등)으로 정리됩니다. 물론 일부 일본 언론들은 '안정'은 자민당내 파벌 달래기에 지나지 않고, '도전'은 정권에 공적을 세운 후배 정치인들을 위한 논공행상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재개조 내각'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곳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경제산업성의 수장으로 임명된 스가와라 잇슈 중의원입니다. 경제산업성은 지난 여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수출우대국 배제를 이끌어 한국에도 명칭이 익숙한 곳입니다. 전 경제산업상이었던 세코 히로시게의 발언과 트윗을 저도 여러 번 뉴스에서 전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세코 전 경산상은 지난 개각에서 자민당의 참의원 간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수출 규제 등으로 아베 총리의 '전위부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에 비하면 새 의자가 다소 빈약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
스가와라 잇슈 일본 경제산업상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스가와라 경제산업상은 이른바 '상사맨' 출신으로 도쿄도의회를 거쳐 경제산업성 부상, 재무성 부상 등을 역임해, 경력만 보면 나름 '경제통'입니다. 도쿄 도(都)의 네리마(練馬) 구 일부를 관할하는 중의원 '도쿄 9구'에서 여섯 번의 임기를 지내고 있는 중진 의원이죠. 자민당 내에서는 딱히 소속된 파벌이 없는 '무파벌'로 분류되지만 스가 관방장관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가와라 경산상은 입각이 발표되기도 전에 '언질'을 받았다며 그 사실을 발표 당일 지역구의 중심가에서 스스로 마이크를 잡고 '광고'해 빈축을 사기도 했는데, 이번에 터진 건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바로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입니다.

이런 종류의 폭로 보도에서는 빠지지 않는(그래서 종종 제보를 '독점'하곤 하는) 주간문춘(週刊文春)의 지난 10일 보도에 따르면 스가와라 장관은 의원 시절이던 2006년에서 2007년 사이 지역구 주민들에게 선물을 돌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 비서가 만든 일종의 '선물 발송 리스트'에는 여름에는 멜론, 겨울에는 명란젓과 게 등 '세심(?)'한 선물을 239개 돌린 사실이 적혀 있었습니다. 목록에는 지역구 주민 외에 아베 총리 등 정치권 유력 인사들도 다수 포함됐습니다. 야당 측은 즉시 "유권자에게 금품을 건넨 것이 아니냐"며 추궁했고, 스가와라 경산상은 처음에는 '금품은 아니다'라고 발뺌했다가 다시 '금품이 현금이라고 생각해 아니라고 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는 어제(25일) 중의원에 출석해 추가 질의에 답변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간문춘'의 보도는 2탄이 있었습니다. 주간문춘은 첫 보도 2주일 뒤인 그제(24일)자에서 '스가와라 경산상의 비서가 이달 17일 지역구 유력 인사의 장례식장에 2만 엔이 든 부조금 봉투(일본에서는 코덴香典이라고 합니다)를 스가와라의 이름으로 전달했다'는 폭로를 실었습니다. 일본의 공직선거법은 선거구 내에서의 금품 제공을 금지하고 있고, 관혼상제의 경우 의원 본인이 직접 전달하는 경우만 예외로 보고 있는데, 스가와라 경산상은 이를 '대놓고' 위반한 셈입니다. 그것도 이달 17일이라니, 정치인들이 흔히 하듯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뭉갤 수 있을만큼 오래 전의 일도 아닙니다.

결국 스가와라 경산상은 중의원 발언대에 서 보지도 못하고 어제 아침 일찍 아베 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취임 한 달 반 만의 '불명예' 사임입니다. 이미 전 비서의 폭로로 '장관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여론이 순식간에 끓어오른 상황에서 스가와라 본인의 안일한 대응이 화를 키운 셈입니다.

스가와라 경산상과 관련된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을 당연히 지켜보고 있었을 아베 총리도 이를 재빨리 수리하고 후임을 임명했습니다.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눈에 뻔합니다만, 야당에서는 '스가와라 본인보다 아베 총리의 임명 책임이 더 크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아베 총리 스스로도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말했지만, 당초 9월 개각에 야심차게 내걸었던 '안정과 도전'은 '안정이 도전받는' 형국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