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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나르시시즘과 라이벌 의식이 키운 일본 속 '혐한'

이홍천|일본 도쿄도시대학 사회미디어학과 준교수

[인-잇] 나르시시즘과 라이벌 의식이 키운 일본 속 '혐한'
일본에서 혐한이 확산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일본의 정보 프로그램들이 한국의 반일 집회나 반정부 움직임을 현미경 위에 놓고 생중계하듯 하는 것은 왜일까. 일본의 정치가들이 혐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한일 관계가 전후 최악이라는 지적에도 10월 18일 98명의 현직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것은 왜일까. 혐한 서적이나 관련 잡지가 서점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일부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는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뉴스위크 일본어 판은 이런 현상을 '혐한의 심리학'(10월 15일자)이라는 특집을 통해 분석했다. 기사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 기초생활수급자, 성소수자 같은 특정 집단에 대해서 부정적인 일본인일수록 한국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특정 외부 집단에 대한 일관된 부정적인 인식의 기반에는 '우익적 권위주의'와 '사회적 지배 지향성'이 중요한 요인이다.

사회적 지배 지향성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집단 간의 상하관계를 용인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는 우수한 집단이 열악한 집단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으며, 일본사회에서 재일 한국인이 깔보기 쉬운 존재로 취급되는 사회적 구조와 맞물려 있다.

최근의 혐한은 일본의 '집단적 나르시시즘'과도 관련이 있다. 집단적 나르시시즘이란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가치를 비현실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일본은 대단하다', '일본인은 다른 국민에 비해 우수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다' 같은 의식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경향이 강한 일본인일수록 혐한 성향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의 NHK의 조사에 따르면, 집단적 나르시시즘을 가진 일본인의 비율이 최근 들어 급속하게 증가해,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인 1980년대 수준을 웃돌고 있다고 한다.

혐한은 우익적 권위주의, 사회적 지배 지향성과 강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집단적 나르시시즘과도 연결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히 개인적 성향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혐한은 개인적 성향을 넘어 사회 문화적인 맥락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본 오사카 대학에서 실시한 '민족 집단에 대한 신념과 태도'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조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꾸준히 진행됐는데, 1941년 실시된 조사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호감도가 전체 조사대상 12개 민족·국민 가운데 4위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상위권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표면적으로나마 협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호감도를 높이는 이유가 됐을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1946년 조사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호감도가 12위로 떨어졌고, 이런 결과는 1958년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더럽다', '지저분하다'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다. 일본에서 독립한 한국과 일본 내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생활 환경이 열악하다는 현실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심리적인 이유가 더 크다. 패전 이후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고 그동안 수면 아래 억눌려 있던 대립과 갈등이 대립이 표면화하자 부정적인 감정이 급속하게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혐한에도 다양한 양상이 있다. 간단히 말해 세대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좌우에 관계없이 해방 이후 '못사는 나라 한국', '낙후된 한국'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들은 한국이 일본을 비판하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이런 태도가 '1세대 혐한'으로 이어졌다.

'2세대 혐한'의 양상은 좀 다르다. 이는 2000년 이후 등장했고 한국의 민주화와 냉전 종식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한국이 많은 부분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라이벌'로 떠오르자 이에 지지 않으려는 의식이 혐한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다.

이런 이유들을 생각한다면, 아베 정권만 물러나면 혐한이 사라질 것이라거나 나이 든 세대가 은퇴하면 한일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 있다. 보다 정교하게 양국 국민 사이 감정의 골을 들여다보고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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