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중소벤처기업부와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가 연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피칭 데이'는 그래서 여러모로 아쉽다. 강소 기업을 대기업이나 벤처 투자자(VC)들과 연결해 일본 수출 규제 파고를 넘겠다는 뜻으로 열린 행사지만 효과는 의문이다. 서로 업종 다른 8개 사가 단지 소부장이란 명목으로 뭉뚱그려 불려 나와 벌인 피칭은 산만하기만 했다. 피칭 데이라는 업계 형식에 얽매여 단 5분의 발표시간이 주어졌지만 그마저도 지키는 회사가 없었다. 이런 형식에 익숙하지 않은 듯 어지러운 내용이 가득한 발표 자료를 읽느라 시간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참가 기업 스스로 어떤 대기업과 투자자를 상대로 피칭하는지도 모르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한 참가 기업 대표는 "우리 기술을 써 줄 회사를 찾아왔는데 나도 어떤 회사가 나와 있는지 모르겠다"며 "무슨 행사가 이러냐"고 푸념했다. 이에 대해 중기부 담당 사무관은 "대기업들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의지가 있다는 걸로 일본에 알려지는 게 좋을 게 없어 참가를 비밀에 부쳐 달라 했다"고 말했다. 행사 사회자는 대신 "피칭 업체 평가표에 기업명을 잘 남겨주면 나중에 맞춤 연락을 드리겠다"고 공지했다. 미팅 상대방을 모르는 채로 재롱을 부리는 TV 맞선 예능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래도 민간 기업인들의 날카로운 눈은 어수선한 가운데 소기의 성과도 기대하게 했다. 업체 발표에 여러 차례 손들어 질문하며 관심을 보인 효성 구매담당 이종훈 상무는 "처음엔 우리 회사랑 별 상관없는 곳들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와서 들어보니 두 군데 정도가 우리 사업과 접목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취지가 좋은 행사니만큼 다음엔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기부는 "소부장 피칭 데이가 앞으로 11월 반도체, 12월 디스플레이, 내년 1월 자동차 업종으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행사처럼 중기부와 협회가 일방적으로 선정한 업체들이 계통 없이 모이는 관제 행사에 그친다면 큰 소득을 거두긴 어려워 보인다. 여러 단계 공개 피칭을 거쳐 선발된 업체들이 사활 걸고 뛰어들고, 이런 기업들을 찾아온 자발적 투자자들과의 상호 교류로 흔쾌히 지갑이 열리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업계 자생력을 기르기보다 가두리 양식하듯 지원금 살포만 하면 창업 대국이 되고 유니콘이 생긴다고 믿는 평소 정부 벤처 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 피칭 데이였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제공/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