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스크린으로 간 '82년생 김지영'…'희망'을 말하다

[취재파일] 스크린으로 간 '82년생 김지영'…'희망'을 말하다
"매체가 곧 메시지다(Medium is the message)." 캐나다 출신의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라는 책에서 한 말입니다. TV, 신문, 영화 등 서로 다른 종류의 매체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집니다. 따라서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매체를 통하느냐에 따라 수용자들에게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맥루한은 주장했습니다.

100만 부 넘게 팔린 화제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영화로 나왔습니다. 누구에게나 친구나 이웃 가운데 한 명쯤은 있을 법한 평범한 이름의 주인공 '김지영'을 통해 우리 사회 여성들의 '흔한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여성들의 공감이 폭발적인 만큼 일부 남성들의 거부감도 격렬했던 문제작입니다. 이 때문에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개봉에 즈음해 다시 한 번 젠더 이슈가 대한민국을 뜨거운 논쟁으로 달굴 거라는 예상이 쏟아졌습니다.

작품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순식간에 '페미니즘 문학'의 대표주자로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읽으면서 명성에 부합할 만한 감흥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문학성이나 작품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평범한 대한민국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소설 속 김지영의 삶은 너무 익숙하고 '평범'했습니다. 너무 익숙하고 흔한 이야기다 보니, 굳이 '공감'을 이야기할 만큼의 특별함을 느끼기 어려웠다고 할까요?
굿모닝연예05. 82년생 김지영
스크린으로 다시 본 김지영의 삶은 활자로 볼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에피소드들인데도 보는 내내 수시로 마음이 저렸습니다. 시사가 끝난 뒤 영화관 로비에서 만난 몇몇 기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중에는 눈물까지 흘리며 공감했다는 이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원작이 있는 영화가 나올 때마다 따라붙는 질문이 있습니다. 영화와 원작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가? 만듦새나 작품성을 칼로 무 자르듯 비교할 수는 없지만, 스크린에서 만난 '82년생 김지영'은 '매체'의 차이만큼은 분명히 실감하게 합니다. 활자만으로는 담을 수 없었던 작은 표정 변화, 목소리의 떨림 같은 공감각적인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이 보는 이들의 더 많은 공감을 부릅니다. 그 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는 의미기도 하겠지요.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큼 인상적이었다"는 이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남성 기자였습니다. 책 표지나 영화 홍보 행사에 응원차 참석했다는 사실을 SNS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페미질'이 되고 '안티 페미' 세력의 무차별 공격을 부르는 '82년생 김지영'입니다. 그런데 그 작품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드는 남성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남편 역을 맡은 배우 공유
여성을 넘어 남성들에게마저 공감을 부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책과는 조금 다르게 그려진 남성 캐릭터의 역할이 클 듯합니다. 철저히 '김지영'의 이야기였던 원작 소설과 비교해 영화는 남편 '대현'에게도 적잖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소설 속 '대현'은 흔한 김지영들의 흔한 비극을 만드는 흔한 주변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지만, 영화 속 '대현'은 훨씬 적극적인 지영의 조력자입니다.

어찌 보면 '미화'로 여겨질 수도 있는, 남성 관객들을 잡기 위한 계산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부를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대현은 영화를 만든 이들의 희망이 담긴 캐릭터라고 보는 게 옳을 듯합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 속에 증거가 있습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단호함과 의지가 묻어나는 미소를 띄고 정면을 응시하는 지영과 살짝 비껴 선 뒤에서 따뜻한 눈길로 지영을 바라보는 대현. 화면을 꽉 채운 두 사람의 클로즈업 속에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원작과는 조금 다른 결말 역시 '희망'에 대한 만든 이들의 '희망'을 확신하게 하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그래서 궁금해집니다. 활자에서 스크린으로. 달라진 캐릭터, 달라진 결말과 함께 다른 매체를 통해 관객들을 다시 만나는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사회에 다른 '메시지'를 낳을 수 있을까요? 증거는 댈 수 없지만, 만든 이들이 걸었던 희망에 함께 마음을 보태 봅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