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육돼지만 발병한 국가는 없다…구멍 난 멧돼지 방역

아프리카돼지열병과 환경부의 '야생멧돼지 정책' ①

김관진 기자 spirit@sbs.co.kr

작성 2019.10.08 07:54 수정 2019.10.09 10: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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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 견딜 수가 없네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A 씨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취재기자와 발병 초기부터 몇 차례 통화를 했던 농민이다. 그로부터 전화를 다시 받은 건 지난 10월 3일. 연천군에서 발견된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내용을 SBS가 단독 보도하고, 곧이어 환경부 발표를 인용한 후속 보도가 이어지던 때였다. 10년 가까이 양돈업을 해오고 있는 A 씨는 발병 피해를 입진 않았다.

하지만 사육돼지 살처분 소식을 듣는 건 동종업계 종사자로 고통스럽긴 매한가지다. A 씨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 발병하기 전인 올해 6월 환경부 청사 앞에서 야생멧돼지 개체 수를 줄여달라는 양돈농가 시위에 참석했다"며 "정말 간절하게 요구했지만, 환경부는 울타리를 설치하는 게 효과적이라고만 답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얘기였는데요…"

● 환경부, 발병 초기부터 "양성 나온 적 없다"며 야생멧돼지 연계에 '거부감'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을 총괄하고 있는 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다. 농식품부는 양돈농가 관리와 함께, 방역·검역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환경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이슈 가운데 원래 부처 고유 업무 영역인 '잔반(음식물찌꺼기) 급여'와 야생동물인 '야생멧돼지' 부분을 담당한다. 잔반 급여와 야생멧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발병 훨씬 이전부터 바이러스 주요 전염 매개체로 꼽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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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7일 경기도 파주에서 국내 첫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농가가 발생했을 당시, 환경부는 선제적으로 '야생멧돼지를 통한 전염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다양한 전염 경로가 추정되는 상황이었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역학 조사가 이제 막 시작한 단계였다.

당시 첫 발병 농가가 잔반 급여를 하지 않았다고 일찌감치 확인된 상태였기 때문에, '야생멧돼지는 상관없다'는 환경부의 발표를 두고 부처 책임만을 피해 가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쏟아졌다. 김현일 수의사는 "역학 조사라는 건 끝까지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며 "섣부르게 이건 아닐 것 같다 예상을 해 놓으면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오랜 기간 연구한 또 다른 수의사는 "환경부에는 발병 전부터 멧돼지와 관련한 여러 가지 요구가 많았다"며 "전염경로가 야생멧돼지라면 큰일 나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멧돼지당시 환경부의 판단 근거는 크게 2가지이다. ①발병 농가가 위치한 파주 지역이 야생멧돼지 서식환경에 맞지 않고, 목격한 주민도 없었다는 점, ②접경지역에서 발견한 야생멧돼지 폐사체나 포획한 야생멧돼지에서 단 한 차례도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①의 경우, 생태학적으로 야생멧돼지가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건데 현지 주민 상당수가 SBS를 포함한 여러 언론에 야생멧돼지 활동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하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환경부가 일찌감치 이 같은 입장을 내놓으면서 '야생멧돼지'를 통한 전염 가능성은 이후 크게 공론화되지 못했다. 바이러스의 확산 저지를 위해 유력 전염매개체를 '초기'에 관리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이후 환경부는 '인력을 투입해 폐사체를 더 열심히 찾고, 포획틀 설치를 늘리겠다' 등의 정책을 얘기했지만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책이 아니다"라는 학계와 양돈업계의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 야생멧돼지만 발병한 국가는 있어도, 사육돼지만 발병한 국가는 없다

환경부는 '음성 판정'을 근거로 야생멧돼지를 통한 바이러스 전염 가능성에 거리를 뒀지만, 지금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을 경험한 다른 국가 사례들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이 검역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세계동물기구(OIE)의 공개 자료를 종합해 본 결과에 따르면,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국가 가운데 야생멧돼지는 발병하지 않았는데 사육돼지에게서만 바이러스가 검출된 사례는 없다. 한마디로, 연천군의 '양성' 폐사체 발견 전 우리나라와 같이 '야생멧돼지는 깨끗한데 사육돼지만 병에 걸린 사례는 없는 것'이다.

사실상 풍토병이 되어버린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최근 3년간 발병한 유럽 15개국과 아시아 8개국 총 23개국 가운데 사육돼지에만 발병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반대로 야생멧돼지에서만 발견된 국가는 여러 곳 존재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이후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유럽 지역에서는 전체 감염 돼지 가운데 야생 멧돼지의 비중이 96%로 높다.
유럽 지역 야생 및 사육 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 검출 실적 (자료=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 농림축산검역본부)아프리카 다음으로 발병국이 많은 유럽의 경우, 유럽연합(EU)이 지난 2017년 전체 회원국들을 상대로 질병 상태에 따라 아래와 같이 총 4단계 지역(Area Ⅰ~Ⅳ)으로 분류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확산 모양과 정도, 풍토병화(化) 여부에 따라 나눈 것인데, 주목해 볼 부분이 있다면 '사육돼지에서만 발병'한 단계의 지역은 없다는 것이다. 발병 전과 발병 초기, 야생멧돼지 가능성을 의미 있게 들여다보고 방역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AREA Ⅰ - 아프리카돼지열병 미발병, 야생멧돼지 집중 예찰
AREA Ⅱ -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야생멧돼지에서만 발병.
AREA Ⅲ -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사육돼지와 멧돼지 발병, 풍토병은 아직.
AREA Ⅳ -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사육돼지와 멧돼지 발병, 풍토병화.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경기지역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검출됨에 따라 4일 오전 인천 국립환경과학원을 방문해 신속한 분석을 당부하고 있다.● "없는 게 아니라 못 찾은 것 아니냐" 비판 피하기 어려워

환경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야생멧돼지를 제대로 찾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의 배경이 여기에 있다. 지난 8월까지 경기와 인천 강화 지역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 가운데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아프리카돼지열병 정밀검사를 실시한 개체는 단 34마리였다. 정밀검사를 한 포획 멧돼지는 전국 단위로 계산해도 총 806마리에 불과하다는 게 검역본부의 자료를 분석한 김현권 의원실의 의견이다. 수만 마리에 달하는 야생멧돼지 추정 개체 수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수치다.

환경부도 할 말은 있다. 인력도 예산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생멧돼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 여부를 판단하고, 폐사체 예찰활동을 주도하는 등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은 총 16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정규직은 7명, 다시 그중에 수의사는 겨우 1명이다. 그마저도 이 팀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전담하는 게 아니라, 구제역과 AI 등 동물질병 전체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 한 환경부 관계자는 "언론이 연일 비판하고 있는데 우리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며 "사람도 돈도 부족한데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하소연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지 20일이 넘었습니다. 국내 최초 유입 경로를 찾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풍토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길일 것입니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국내 '야생멧돼지 정책'을 짚어보려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발병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양돈 농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