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日 혐한 넘어선 '82년생 김지영'…인기 이유는?

이홍천|일본 도쿄도시대학 사회미디어학과 준교수

SBS 뉴스

작성 2019.10.04 11:00 수정 2019.10.04 11:4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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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82년생 김지영'의 인기가 대단하다.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나 K-POP의 '소녀시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조용한 반향은 국경을 넘어서 일본 여성들의 가슴속까지 울려 퍼지고 있다.

2018년 12월 일본어로 번역 출판된 뒤 한 달 만에 5만 부를 돌파했고 올해 9월까지 16만 부 이상 판매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작가 조남주의 인기가 '욘사마' 배용준에 뒤지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8월 31일 번역가와 함께 출연한 북 콘서트에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일본 전국에서 500명 이상이 달려왔다. 청중의 대부분은 주인공과 같은 연령대인 30대와 비슷한 경험을 안고 있는 40대의 여성들. 이들은 초창기 한류 드라마 팬들과 비슷하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좌절했던 경험, 억압을 느끼면서도 참는 수밖에 없었던 좌절감, 여기에 육아를 하며 느꼈던 고독과 무력감까지…. 소설 속 주인공이 거울 속 자신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책장을 넘겼다는 독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도쿄 시부야의 대형 서점. '82년생 김지영'이 혐한 서적을 밀어내고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 해외 문학, 그것도 한국문학 서적이 잔뜩 쌓여 있는 모습은 그동안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도쿄의 주요 서점의 문예 부문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책은 눈·코·입이 없는 여성의 일러스트를 디자인으로 삼았다. 서점 측이 책 앞에 '우리들의 글로 얼굴을 만들자'며 표지를 확대한 대형 패널을 세우자, 독자들은 책을 읽은 감상을 적은 포스트잇으로 얼굴을 그렸다. '내 기억과 너무 겹쳐서',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혐한 서적 출판 붐이 일본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 한쪽 편에서는 한국소설 붐이 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소설이 던진 파장은 여론에 민감한 언론사들도 자연스레 반응하게 했다. NHK는 5월 24일 아침방송에서 소개한 것을 시작으로 5월 30일에는 NHK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인 '클로즈업 겐다'에서도 '82년생 김지영이란 한국소설의 이례적인 인기'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6월 5일에는 '베스트셀러 소설이 보여 주는 한국사회'라는 제목의 방송을 편성하더니, 8월 25일에는 '목격 일본, 김지영과 여성들- 한국소설이 던진 질문'이라는 다큐멘터리까지 방영했다. 9월 30일에는 '스토리(신), 여성들 속의 김지영- 한국소설이 던진 질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한국소설의 인기는 '82년생 김지영'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소설, 특히 여성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을 소개한 계간지 '분계(文藝)'의 '한국 페미니즘 일본' 특집호(2019년 가을호)는 발매 5일 만에 초판 8천 부가 순식간에 팔려 2쇄로 3천 부를 긴급 제작했다. 이마저도 일주일 만에 품절되어 3쇄 3천 부를 추가로 인쇄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잡지가 3쇄를 찍은 것은 86년 만에 이뤄진 일로, 창간 이후 두 번째라고 한다.

한국 소설이 일본 사회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아이러니하게도 혐한 서적 출판 붐이 한창일 때였다.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가 번역되어 제1회 일본 번역대상을 수상하자 일본의 작가들도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6년 작가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아시아인으로서 처음으로 수상한 것도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15년에는 190건의 혐한 데모가 발생했고 혐한 서적도 21권이나 발행됐다.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비율은 33.0%로 곤두박질했다. 전후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었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도 '82년 김지영'이 '사회 현상'이 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진학, 취업, 육아에서 한국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차별과 분노는 일본 여성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젠더(성별)의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어 공통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주인공의 문제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연결시키는 스토리텔링도 인기를 얻는 비결이다.

언어는 달라도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양국 여성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친근감은 39.4%로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한국 소설이 다양하게 번역 출판되기 시작한 2015년부터 20대의 친근감은 상승하기 시작해 작년에는 57.4%까지 높아졌다.

한일 양국 정부가 서로 으르렁대고 있는 가운데서도 양국 여성들의 정서적 연대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당장의 얽히고설킨 한일 간 정치 경제적 갈등을 푸는 동력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 두 나라 국민의 이해와 공감대를 넓히는 배경이 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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