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그들은 왜 '닿지 않을 곳'에 갔나?…'공사기한'이라는 악령

민경호 기자 ho@sbs.co.kr

작성 2019.10.02 10:54 수정 2019.10.02 11: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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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조사 의견서>라는 이름의 보고서는 간결했습니다. '인적 피해 : 사망 3명', '기타 : 공사 중지 등으로 인한 피해 (추정 불가)', 단 두 줄로 정리한 '피해 현황'만큼 말입니다.

지난 7월 31일 아침. 갑작스럽게 내린 비에 저장됐던 빗물이 방류되면서 터널 안에서 일하던 노동자 2명과, 이들에게 방류 소식을 전하려 터널에 들어간 노동자 1명이 숨졌습니다. 이른바 <목동 빗물 저류시설 참사>입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닷새에 걸쳐 재해 조사를 벌입니다. 원청업체인 현대건설과 협력업체 직원들, 터널 배수 시설 운영 업체와 시운전 업체 직원, 양천구청 공무원들이 조사 대상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당시 전체 공정은 96.85%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배수 터널은 6월 말, 이미 6차 공사를 통해 다 지어진 상태였고, 유출수직구를 만들기 위한 골조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특히 이 유출수직구와 터널 배수 시설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카리프트가 추가되는 것으로 설계 변경이 됐는데, 이 때문에 전체 준공일이 지난 6월 말에서 올해 12월 15일로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위해 원청업체인 현대건설과 계약을 맺은 한유건설의 공사 기간도 6월 말 같은 날짜에서 8월 말로 늦춰졌습니다.

문제는 잔여 공사와 함께 터널 시운전이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7월, 양천구로부터 시설물 유지관리 차량을 위한 카리프트를 추가 설치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말 서울시로부터 설계 변경 승인을 받았는데, 그 이후인 지난 1월 14일부터 올해 12월 15일까지를 기간으로 터널 배수 시설 종합 시운전 계약을 맺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6월부터 터널 배수 시설 시운전이 시행됐습니다. 공사가 이뤄지는 유출수직구와 시운전이 이뤄지는 배수 터널은 직각으로 닿아 있는 모양입니다. 한쪽에서는 공사가, 다른 쪽에서는 시운전이 이뤄지고 있던 것입니다.
목동 빗물 배수시설 수몰 참사 현장그리고 잔여 공사를 맡은 한유건설 직원들은 설치돼 있던 전선 수거 작업을 벌이기 위해 시운전이 이뤄지는 터널 내부를 드나들었습니다. 조사단은 '주 공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틈틈이 정리해 반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시운전을 이유로 무전기용 중계기는 이미 제거된 상황이었습니다. 보고서는 이를 '조기 해체'라고 표현합니다. 또, 비상경보기도 없었습니다. 애초에 연락이 닿지 않을 곳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운전과 터널 내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고, 영향성 검토를 통해 주체별 책임도 명확히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두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을까. 조사단은 설계 변경으로 인한 공사 지연 때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공사 지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이뿐이 아닙니다. 공사 현장에서 업체들과 노동자들은 호우주의보나 호우경보 같은 기상정보를 공유하고는 있었지만, 상황을 보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작업을 시작해 왔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기상청의 비 예보가 있었지만, 비고 오지 않자 한유건설 소속 노동자 2명은 가설 전선 정리 작업을 위해 터널에 진입했습니다. 이런 관행 역시 보고서는 "일기예보가 정확하지 않은 점과 공사 일정을 고려했다"고 적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간 직후, 빗물을 저장하는 곳의 수위가 10분 만에 1m가 상승할 정도의 기습적인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수문을 운영하는 양천구는 50~70% 수위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수문을 개방하도록 설정해놨습니다. 폭우로 수위는 순식간에 자동으로 수문이 열릴 정도에 도달했지만, 이를 막을 운영실에는 근무자도 없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 근무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출근 전'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양천구 직원은 터널 배수 시설 운영실에 가 수위를 확인해 달라 부탁했는데, 현대건설 직원은 운영실 비밀번호를 알지 못해 이를 다시 전화로 물어보고서야 운영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수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목동 빗물 펌프장 사고 현장 투입 (사진=연합뉴스)조사단의 보고서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크게 세 종류의 원인 때문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사고 발생 직전에 벌어진 사건이나 사고의 조건을 말하는 '직접 원인', 사고를 직접적으로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을 증가시킨 사건이나 조건을 뜻하는 '기여 원인', 개선된다면 똑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근본 원인'입니다. 보고서에 나타난 조사단의 원인 분석 결과의 각 항목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히 적습니다.)

○ 직접 원인 (Direct Cause)
① 우기 시 작업자 터널 내부 출입제한조치 미실시
② 경보·통신 설비 미설치
③ 비상용 기구(구명구 등) 미비치

○ 기여 원인 (Contributing Cause)
① 설계변경에 의한 공기 연장
② (의사소통 부재) 터널 배수 시설 공동운영 시 주체별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 미공유
③ (국내 최초도입 시설물) 기존 우수박스 수문 및 터널 배수 시설 운영시스템 분리발주
④ (시운전 단계) 현장 안전팀 인원 축소 (3명→1명)
⑤ 단시간 집중호우

○ 근본 원인* (Root Cause)
* 사고 재발 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사고 요인으로서 재해조사반 심층 논의 후 결정
① 사업장 변화 요인에 대한 위험성 관리(Control) 미흡
- (수몰 사고 위험성 증가 요인) 설계변경에 의한 공사 지연으로 터널 배수시설 시운전 및 터널 내부 가설 전선 정리 작업이 동시에 진행
- (터널 내부 우수유입 위험성 도출 실패 요인) 터널 배수시설 합동 운영 시 의사소통 부재로 양천구 및 시공사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공유되지 아니하였음.
- (유해 위험요인 발굴 노력 부족) 06차 공사 완료 전 터널 배수시설 시운전을 전문 업체에 위탁하여 진행 시 터널 배수시설 시운전과 터널 내부 작업 동시 진행에 따른 유해 위험요인 발굴 노력이 부족하였음.
② (터널 배수시설 합동운영) 주체별 책임과 역할이 불명확
- 7/1부터 양천구 주체로 터널 배수시설 인수 · 인계를 위한 합동운영(시공사 등 협조)이 진행되었으나, 시공사는 호우주의보 발령 시 운영실 인력 지원계획만 수립하였음
· 시운전과 터널 내부 작업 동시 진행에 따른 상호 영향성 검토 미실시
→ 각 주체별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하지 아니하였음.
③ 형식적인 비상 대응체계 수립
- (긴급상황 대응 미비) 사고 당일 집중호우로 기존 우수박스 수위가 10분 만에 급격히 상승하여 수문 자동 개방에 의한 터널 내부 우수 유입 상황 발생 시의 문제점
· 운영실에서 수문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음(양천구 직원 출근 전)
· 터널 내부에 비상경보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음.
· 터널 내부에 구명구 등 비상용 기구가 비치되어 있지 않았음.
고용노동부 (사진=연합뉴스)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결과는 이렇습니다. 그런데, 하나 빠진 것이 있습니다. '2013년부터 이뤄진 이 공사 현장에 대한 노동부의 관리 감독은 잘 이뤄졌는가?'입니다. 그 결과는 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3년 착공 이후 노동부의 점검은 단 세 차례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5년 5월 검찰 합동 단속, 2016년 11월 전국 현장 감독, 2018년 고위험 사업장 밀착관리 단속 세 번뿐이었습니다. '수몰 재해 고위험 건설 현장 긴급지도'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실시하지 않았는데, 이때도 목동 현장에 대해서는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2013년 '노량진 배수지 수몰 참사'로 노동자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는데도 사전 점검에 소홀했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문 의원은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시운전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공사 기간을 당기려다 발생한 참사"라면서 "책임자 엄벌과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많은 사고 요소들을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물론, 고용노동부와 서울시 등 관계부처 어디서도 짚어내지 못했다.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 양천경찰서가 수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양천구청 직원 1명과 서울시 직원 1명, 현대건설 관계자 2명, 감리단과 협력업체 관계자 각 1명 등 모두 6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 역시 경찰 수사에 반영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