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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조작 · 고문했던 53명 '훈장 취소', 아직 회수 안 됐다

<앵커>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간첩으로 몰아서 훈장까지 받았다 취소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 방침과는 다르게 그들이 누군지 공개되지 않고 있고, 심지어 훈장도 제대로 반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원종진 기자, 그리고 김민정 기자가 차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기자>

1979년 세 아이의 엄마로 살던 김순자 씨는 삼척 일가족 간첩단으로 지목돼 남영동으로 끌려갔습니다.

[김순자/삼척 가족 간첩단 조작 사건 피해자 : 남영동에서 아주… 내가 가기 일주일 전부터 (가족들이) 다 고문받아 가지고 쓰러져 있고, 그냥 비명소리에 다 지쳐서. (당시 고문했던 사람) 얼굴 보고 싶어요. 나하고 정면을 보고 싶어요.]

모진 고문을 받았고 5년 넘게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김순자/삼척 가족 간첩단 조작 사건 피해자 : 아버지한테 편지라도 좀 하게 해주지. 막내 남동생이 편지가 왔더라고요. '누님, 아버지는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대구 교도소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37년 뒤 법원은 이 사건이 조작됐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처럼 판결과 재심을 통해 간첩 조작 사건으로 결론 난 건 행안부가 파악한 것만 13건.

조작에 가담했던 군인, 경찰, 안기부 요원 53명이 훈장을 받았다가 취소됐습니다.

피해자와 시민사회에서는 이들의 명단 공개와 훈장 회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고문 기술자를 포함한 이들의 명단, 왜 공개되지 않고 있을까요. 판결문에 따르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수 있고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과 국정원 등 정부 측이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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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이들 53명의 명단과 재심 판결문들을 입수해 이 사람들이 실제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봤습니다.

군사법경찰관 이 모 씨는 1983년 정삼근 간첩 조작 사건 수사 공로로 훈장을 받았는데 판결문에는 이 씨는 물고문과 전기 고문 등을 한 '고문 기술자'로 명시돼 있습니다.

이병규 간첩 조작 사건 수사공로로 훈장을 받은 서 모 씨,  군인 신분으로 민간인들을 불법 연행해 고문과 구타를 했습니다.

이들 53명은 모두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문을 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걸 공로로 인정받아 대부분 승진을 하거나 훈장과 포상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잘못된 훈장과 포상을 되돌려 놓기 위해 정부 대신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최종 판결이 난 뒤에 피해자들이 정부에 요청을 해야 서훈 취소가 이루어진 겁니다.

[김순자/삼척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정부가 서훈 취소) 근거를 우리보고 달래요. 아니 자기(정부)들이 찾아야지, 우리가 찾냐고요. 할 수 있는 권한이 너(정부)한테 다 있지, 나한테 있냐고요. 막 화를 냈어요, 그때 행자부에 가서.]

서훈이 취소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고 서창덕 씨 간첩 조작 사건에 가담한 공무원의 서훈 취소는 검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행안부 서훈 담당 팀장 : (서창덕 씨 사건은 검토를 하지 않으셨다고…) 이거는 무죄 판결 난 게 없어요. 판결 안 났다니까요? 정말 나왔었으면 저희한테 주십시오. 저희가 바로 취소할게요.]

하지만 취재 결과 11년 전 이미 재심에서 무죄 확정판결이 났고 피해자 가족도 정부에 훈장 취소를 요청했습니다.

[서진석/납북어부 고 서창덕 씨 아들 : 저희처럼 피해받고 그냥 사시는 분들이 엄청 많거든요. 솔직히 조사도 안 되고, 증거도 없고 그렇다고 저희(가족들)가 찾아다닐 수도 없는 거잖아요?]

정부 관계자는 SBS 취재가 시작된 뒤 고문 피해자 가족에게 연락해 무죄 판결문을 요청했습니다.

[최정규/변호사 :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해) 법무부가 검찰을 통해서 입수를 해서, 행안부에 넘겨서 행안부가 그걸 검토해서 서훈을 취소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 이게 국가의 시스템 아니겠습니까? 피해자가 판결문을 줘야지 서훈 취소 시스템이 작동된다? 그럼 국가는 왜 존재하는 거냐는 거죠.]

서훈 취소하면 훈장과 상패를 회수해야 하지만 이 작업도 지지부진합니다.

[행안부 서훈 담당 팀장 : 저희가 그거(훈장 회수)는 확인 안 합니다. 일부 회수됐고, 일부는 회수 못 하고 있고.]

국가의 잘못으로 삶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은 서훈 취소와 박탈, 그리고 명단공개가 잘못을 바로잡는 출발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옥선 씨/납북 어부 고 서창덕 씨 아내 : 많이 아팠던, 아팠던 사람들인데… 그 마음을 좀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영상취재 : 제 일, 영상편집 : 전민규, VJ : 정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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