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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인지뢰와 검찰개혁 : 섞여선 안 될 '조국 수호'

[취재파일] 대인지뢰와 검찰개혁 : 섞여선 안 될 '조국 수호'
대인지뢰는 인명 살상용으로 매우 효율적인 무기입니다. 발명된 지는 수백 년이 지났지만 적군 보병의 행군 속도를 늦추는 데에는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물건입니다.  그런데 1997년, 세계 121개국은 캐나다 오타와에서 '대인지뢰 금지 협약'을 채택합니다. 대인지뢰가 매우 효과적인 무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민간인 피해를 너무 많이 일으키기 때문에 앞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공중에서 폭발해 축구장 1개 이상의 반경에 수백 발의 폭탄을 뿌리는 '확산탄'에 대해서도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이 체결돼 있습니다.

● 대인지뢰·확산탄과 비슷한 검찰의 '특수수사'

저는 예전부터 검찰의 특수수사를 대인지뢰나 확산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압수수색영장과 구속영장을 청구할 권한을 독점하고 있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지고 있는 데다가, 공소유지 권한까지 가지고 있는 검찰의 직접수사 (주로 특수수사)는 정말 무섭습니다. 기소 이전 단계에서는 견제할 수단이 별로 없고, 마음만 먹으면 사람의 영혼까지 털 수 있다는 말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과거 대검 중수부나 지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특수수사는 속도와 강도, 그리고 전문성에서 다른 검찰청의 특수수사와 수준을 달리 합니다.

문제는 강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나 조직의 어떤 범죄 혐의들은 검찰의 특수수사와 같은 특별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규명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인지뢰와 확산탄의 비유로 돌아가자면, 적군이 너무나 강력할 때는 대인지뢰나 확산탄을 쓰지 않고서는 방어나 제압이 불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죠.

(※ '직접수사'와 '특수수사'는 동의어는 아닙니다. 검찰의 직접수사 중 정치/사회적으로 예민한 사건이나 인물과 관련되는 수사를 '특수수사'라고 합니다. 주로 논란이 되는 것은 특수수사이므로 이 글에서는 비슷한 의미로 혼용해서 사용하겠습니다.)

특수수사와 관련된 최근 사례들을 검토해 보죠. 십 수년 전에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특검에서 두 번이나 진상 규명에 실패한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은 아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3개 부서(+알파)를 동원한 특별하고 무서운 수사 방식이 아니었다면 결코 규명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검사가 거의 50명 가까이 투입됐다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1차 수사, 그리고 역대 특검 중 가장 정예로운 특수통 검사들이 투입됐다는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가 없었다면 기소하지 못했겠죠. 전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개입된 사법농단 의혹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 명확한 경우는 김학의 전 차관 사건입니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에 대해서 검찰은 2013년에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강간 혐의'에 대해서만 수사한 뒤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제기됐던 비판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해서는 왜 검찰이 야당 정치인 등에게 그러하듯이 뇌물 혐의 등 다른 혐의까지 확대해서 수사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왜 '특수수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한 것입니다. 결국 올해 김학의 전 차관을 구속시킨 팀도 전국의 유명한 특수부 검사들을 끌어모아서 만든 ‘김학의 특별수사단’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제가 검찰의 특수수사가 대인지뢰나 확산탄과 비슷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강력한 적군을 제압하는 효과는 확실합니다. 하지만 민간인 피해 가능성이 큰 것도 분명합니다. 대인지뢰/확산탄이 야기하는 민간인 피해는 특수수사 특유의 저인망식 수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관련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심지어 심적 부담을 느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 관계인들 같은 경우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을 쓰러뜨리는 효과는 확실하지만 민간인 피해 가능성 역시 대단히 큰 무기, 대인지뢰/확산탄과 검찰 특수수사(직접수사)의 공통점입니다.
서울중앙지검, 검찰 (사진=연합뉴스)
● 특수수사 축소/폐지는 검찰개혁의 핵심 과제
 
그래서 검찰의 특수수사(직접수사)를 개혁하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검찰개혁을 위한 가장 시급하고 민감한 과제입니다. 검찰 직접수사(특수수사)의 편익과 해악을 따져봐서 우리 사회가 어떤 점을 더 필요로 하는지 합의해야 하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검찰의 직접수사(특수수사)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폐지하고, 대신 경찰이나 검찰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지금의 특수수사 기능을 담당하는 기소권이 없는 수사청을 만든 뒤, 직접수사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검찰의 사법적 통제(수사지휘, 영장청구/기소 여부 판단)를 받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이 방식이 아니더라도 검찰 특수수사라는 강력하고 위험한 무기가 보유한 기능을 대체하면서도, 보다 인권 친화적이고 시민에게 안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검찰개혁, 특히 검찰의 직접수사(특수수사) 개혁을 위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지금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조국 장관 관련 수사와 연관 짓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부적절한 걸 넘어서 특수수사와 관련된 검찰개혁의 정당성과 실현 가능성에 모두 큰 상처를 내는 매우 잘못된 행동입니다.

● 장군과 국방부 장관의 비유…조국 사태는?

다시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대인지뢰와 확산탄을 매우 잘 사용하는 어떤 장군이 있다고 합시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 장군이 대인지뢰와 확산탄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해 강력한 적군을 여러 차례 패퇴시킨 점을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공로를 인정해 합참의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대인지뢰와 확산탄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심하니 이를 금지하는 국제 협약에 가입하자는 주장이 적지 않았지만 외교안보수석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얼마 뒤 외교안보수석은 국방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임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합참의장이 국방부 장관의 부인과 5촌 조카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군사집단이 특정 지역을 공격한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합참의장은 평소 그랬듯이 대인지뢰와 확산탄을 동원해 반란군을 진압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국방부 장관은 크게 화를 내며 대인지뢰와 확산탄 금지 조약에 서둘러 가입하는 것이 '국방 개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관의 측근들도 대인지뢰와 확산탄 금지 조약에 가입하는 '국방 개혁'이 곧 장관을 수호하는 길이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합리적이거나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과 조국 법무부 장관 사이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조국 법무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윤석열 총장이 특검 수사팀장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특수수사(여러 번 얘기했지만 대인지뢰와 확산탄에 해당)를 통해 전직 대통령들이나 전직 대법원장을 수사할 때,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를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주변에서 검찰의 특수수사/직접수사를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도(=대인지뢰/확산탄 금지조약에 가입하자는 의견을 내도) 조 수석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지난 1월에는 조국 수석이 검찰의 특수수사를 직접 거론하며 이런 말 까지 했습니다.

"첫째, 수사권 조정, 둘째, 고위공직자 수사의 이관, 셋째, 직접 수사의 축소, (다만) 이미 검찰이 잘하고 있는 특수수사(특별수사) 등에 한하여 검찰의 직접 수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 수사가 시작되자 앞세운 "특수부 폐지" 구호

그런데 윤석열 검사가 검찰총장(=합참의장)으로 임명되고 조국 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조국 장관의 부인과 5촌 조카가 연루된 부패 의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조국 장관은 갑자기 검찰개혁, 그중에서도 검찰 특수수사(=대인지뢰/확산탄)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자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 장관의 측근과 지지자들은 조 장관 가족과 관련돼 진행되는 특수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특수수사를 폐지하고 검찰은 개혁하는 것이 조 장관을 수호하는 길이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명박, 박근혜, 양승태의 경우와 달리 조국 장관과 관련된 이번 사건에서만 검찰 특수수사가 문제 투성이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 과연 정상인가요?

피의사실 공표 관련 논란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로 설명한 적이 있지만, 검찰개혁, 그중에서도 검찰의 특수수사 축소 또는 폐지 요구는 충분히 정당성이 있는 주장입니다. 특수수사의 기능을 고려하면서도 인권 침해적 성격을 인정해 사회적 대안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밝혔듯이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축소 또는 폐지하고 별도의 수사청을 설치한 뒤, 직접수사 기능이 없는 검찰이 이를 통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 검찰개혁의 정략적 소모 우려…섞여선 안 되는 '조국 수호'

하지만, 진지하게 이어져야 할 이런 논의를 (적어도) 가족이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위공직자를 '수호'하거나 '보호'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조국 가족 관련 수사가 지금까지의 다른 특수수사에 비해 특별히 더욱 과도하게 진행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배달음식이니, 여성 2명만 있는 집을 압수수색했다느니 하는 허위사실을 굳이 하나하나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여러 수사에서 입증된 특수수사의 장점, 즉, 강대한 권력을 가진 수사 대상자를 효율적으로 수사하는 기능과 더불어 검찰 특수수사의 단점, 즉, 수사 관련자들의 인권이 방식의 효율성과 비례해 상당히 침해되는 점이 조국 장관 관련 수사에서도 똑같이 드러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마치 조국 장관 관련 수사만 특별히 부당하고 과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듯이 상황을 과장하면서, 정작 특수수사 또는 검찰 직접수사의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주장의 정당성을 정략적으로 오염시키는 행위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찰개혁 구호와 조국 수호의 구호를 연관 짓거나 함께 외치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검찰 개혁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두 사안을 연결 지어선 안 됩니다. 검찰개혁은 검찰개혁이고, 조국 수사는 조국 수사입니다. 섞여서는 안 되는 두 가지를 섞는 것은 잘못입니다.

※ 참고로 우리나라는 북한, 중국, 미국과 함께 대인지뢰 금지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대표적 국가 중 하나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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