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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베이루트에서 '지난날 꿈'을 떠올린 이유

정우성|배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저자.

정우성 인잇_쿠르디 이미지
2015년 9월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준비한 난민 토크 콘서트가 있던 날이었는데, 행사장으로 가던 길에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을 기사로 접했다.

시리아의 쿠르드계 세 살배기 아이인 쿠르디는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지중해를 건너던 중 타고 가던 배가 난파되면서 바다로 던져졌다. 그리고 파도에 떠밀려 왔는지 터키의 한 해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진 속 마치 잠이 든 것처럼 평온하게 엎드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죽음을 초래한 시리아 내전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휴전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이내 교전 소식이 잇따른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혼란은 이내 내전으로 번졌고, 이후 정치적 입장과 종파, 민족 그리고 인근 국가의 이해까지 뒤섞여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리아를 떠난 난민은 480만 명, 시리아 내 다른 지역으로 피신한 국내 실향민은 660만 명에 이르렀다. 내전 전 시리아 인구가 2,200만 명이었다고 하니, 인구의 절반이 난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2016년 2월 29일, 나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레바논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레바논은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인지라 적잖은 수의 시리아 난민이 머물고 있었다. 당시 레바논의 인구는 약 450만 명이었는데, 레바논이 보호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은 100만 명이 넘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은 그 수가 150만에 이른다고 한다.

레바논에서도 처음에는 난민 캠프를 만들어 시리아 난민을 수용했다. 하지만 난민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캠프 운영이 어려워졌다. 유엔난민기구 측도 난민 생활이 장기화된다면 난민 캠프에 고립해 있기보다는 현지 주민들과 융화하면서 사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레바논 내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 도시난민 형태로 지원 방향을 전환했다.

도시난민의 경우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는 난민보다 더 많은 어려움에 처하는 게 사실이다. 일단 매달 집세부터 문제다. 이들은 주로 주차장이나 폐건물 또는 대지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데, 그렇더라도 소유주에게 다달이 임대료를 내야 한다. 게다가 난민이 생활하는 지역은 대부분 빈곤 지역이라, 주변 주민들에게 관대함을 바라기도 쉽지 않다.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은 대략 1,700여 개 지역에 가족 단위로 흩어져 생활하고 있다. 우리가 찾은 와하 공동 거주지는 예전에 쇼핑몰이었다가 폐업으로 빈 건물이 된 곳이었다. 빈 상가 자리 칸칸에 시리아 난민 가족들이 머물고 있었다.
정우성 인잇용 (사진=UNHCR/Jordi Matas)
내가 이곳에서 만난 시리아인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자식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먹고사는 문제도 걱정이었지만, 더 큰 걱정은 아이들의 미래였다. 좀체 나아지지 않는 시리아의 혼란한 상황 그리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타지에서의 버거운 삶 속에서, 그들은 아이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다 한들 사실상 나라를 재건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조국의 재건이 불가능해지거나 다음다음 세대까지 재건에 100년은 걸릴지도 모른다는 게 이들의 불안이다.

6·25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피란지에 학교를 세우고 수업을 했다는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몸이 부서져라 노동하면서도 자식 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가라앉을지 모르는 배에 올라타면서까지 굳이 유럽으로 가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와 난민 사회의 이런 기대를 알고 있다 보니, 이곳 아이들에게도 공부는 단순한 공부 이상이다. 아이들은 지금 하는 공부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언젠가 돌아갈 조국을 지켜내고 다시는 비극에 빠지지 않게 할 일종의 무기이자 자산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우성 인잇용 (사진=UNHCR/Jordi Matas)
레바논의 도시난민들 틈에서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가난이라는 환경 때문인지 공부에 집중할 수도 흥미를 둘 수도 없던 상황에서 어쩌다 가져 본 배우의 꿈. 그 꿈은 얼마나 절실했던가. 어렸던 나에게 그 꿈은 비루하던 삶을 바꿔줄 유일한 희망 같았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하는 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꿈과 희망이다. 각자의 꿈과 희망은 타인에게 특히 그것을 이미 가진 사람들에겐 보잘것없거나 무모해 보여도 쉽게 값을 매기거나 평가절하할 수 없다. 이 아이들에게 공부란, 내가 가졌던 배우에 대한 막연한 열망보다 훨씬 절박하고 강렬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난민 아이들이 어떠한 가능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들에게 미래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비단 이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지구촌을 살아가는 우리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쿠르디는 비록 미래를 잃어버렸지만, 베이루트에 남은 이 아이들에게라도 부디 꿈을 위해 노력할 기회가 허락되길 소망해본다.

#인-잇 #인잇 #정우성 #경계에선사람들

(사진=©UNHCR/Jordi Ma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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