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항상 버섯 모양의 파마머리를 하고, 청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왼손에는 큰 팔레트를 들고 있었는데, 오른손으로는 큰 붓으로 물감을 착착 섞어서 풍경화를 그려 나갔습니다. 별 고민도 없이 붓질을 막 하는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산이 나타나고, 나무가 등장했습니다. 서커스같이 현란하게 그림을 그리고는 '참 쉽죠?'라는 말을 할 때면,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그리는 건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1990년대 EBS를 통해 우리나라에 방송됐던 프로그램 <그림을 그립시다>의 주인공 밥 로스 이야기입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밥 로스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그의 프로그램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흐릿한 화질에 응팔 세대들이나 기억하는 8, 90년대 영상이었지만, 어린 시절 경이롭게 보던 밥 로스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이미 1995년에 세상을 떠난 밥 로스였지만, 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무려 3백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꽤 많은 프로그램에서 여전히 밥 로스를 패러디하고 있었고, 기념품도 다양하게 나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밥 로스 캐릭터를 담고 있는 시리얼까지 출시돼 있었습니다.
● "밥 로스의 모든 그림은 어디 있을까?"…美서도 구경하기 어려운 밥 로스 작품
실제 이베이에 보면 진품이라고 설명하는 밥 로스 그림은 거의 없습니다.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그림은 9만 5천 달러, 우리 돈 1억 1천3백만 원에 올라와 있을 정돕니다. 이게 시장 가격이라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워낙 작품이 귀해서 부르는 사람 마음대로 가격을 책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그렸던 밥 로스는 실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방송을 하면서 똑같은 그림을 세 번씩 그렸습니다. 녹화 전에 한 번, 녹화하면서 한 번, 녹화를 끝내고 교본에 넣기 위해 또 한 번을 그렸던 겁니다. 11년 동안 13편짜리 시리즈를 31번이나 했다고 하니 방송을 위해서만 1천140여 점을 만들었습니다. 전체를 다 합치면 무려 3만 점이 넘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밥 로스 재단을 가보니 실제 그림들이 창고에 보관된 박스 속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습니다. 유통되는 그림은 거의 없고, 그림은 밥 로스 재단에 거의 모두 있다보니 밥 로스 그림 구경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 아주 드문 밥 로스 전시회…전시회에 걸린 진품 24점 직접 보니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1993년도에 완성된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유화가 마르기 전에 그 위에 바로 그리는(wet-on-wet) 기법의 대가답게 그림에 힘이 있었습니다. 알래스카에서 공군 부사관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밥 로스의 그림은 울창하고 빽빽한 산림과 아름답게 눈 덮인 광경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눈앞에서 보면서도 이런 그림을 단 30분 만에 그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 밥 로스 재단 "그림을 팔 생각을 해보질 않았다"
이곳에서 밥 로스 그림을 대부분 보관하고 있는 밥 로스 재단의 존 코왈스키 회장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코왈스키 회장은 한국에서 여전히 밥 로스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한국팬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사실 밥 로스 재단이 그림을 보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멋 훗날을 기약하며, 가격 관리를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림을 판매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코왈스키 회장은 "그렇게 할 생각을 해보질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밥은 생전에도 사람들에게 그림을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그리는지 가르치는데 관심이 있었지 그림을 팔 생각을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PBS 방송에 출연했을 때도 출연료 자체를 받지 않았고, 자신은 미술을 하는 사람에게 물감, 붓 등 미술용품을 판매하는 수입으로 충분히 돈을 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코왈스키 회장은 "밥 로스는 다 그린 그림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며, "우리는 그의 생각을 따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단지 그림을 보관하는 거는 그의 그림 기술을 사람들이 실물을 보면서 익혀야 하는데 강습용으로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행복한 사고가 생긴 것뿐입니다" 이 말은 밥 로스의 가장 유명한 대사는일 겁니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마다 이 말을 하며 그림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는데요. 코왈스키 회장은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 한다면, 잘 안 되어도 그건 괜찮다"는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밥 로스는 캔버스에 무언가를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그림이 마르기 전에 바로 지우고 다른 걸 그렸는데, 그래서 실수도, 사고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단지 자기가 그림을 좋아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실수를 해도 고치면 그만이고, 그걸로 괜찮다는 게 밥 로스의 철학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美 문화의 아이콘 된 밥 로스…"한국 전시도 원해"
밥 로스 전시회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밥 로스의 그림 방송을 보던 어린이들이 이제 중년이 돼, 자신의 아이와 손을 잡고 함께 그림을 그리는 기쁨을 얘기할 수 있는 무대였습니다. 부모세대의 TV가 만든 스타 미술가 밥 로스는 지금은 아이들이 보는 유튜브를 통해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11년간 미국 TV를 주름잡았던 밥 로스는 미국 대중 문화의 한 아이콘임이 분명합니다. 스미소니언 미국 역사박물관이 밥 로스의 작품과 그림 도구를 받아가 보관하고 있다는데, 미국 역사의 한 부분으로 조만간 전시를 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코왈스키 회장은 말했습니다. 코왈스키 회장은 조만간 한국 전시도 희망한다고 말했는데, 실제 밥 로스를 기억하는 한국 팬들에게도 그의 작품이 전시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