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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검찰개혁으로 가는 길

[취재파일] 검찰개혁으로 가는 길
● 누가 개를 풀어놓았나

'조국 수사팀'의 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조국 장관 딸의 입시 부정을 수사하는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시 비리를 맡아 수사한 바 있습니다. 조국 수사팀을 일선에서 이끄는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다스 횡령과 뇌물 등 혐의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바 있습니다.

대검찰청의 지휘라인을 살펴보겠습니다. 검찰의 특수부를 지휘하는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국정농단 특검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사법농단 수사 등 '적폐청산' 수사들을 이끌어왔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어떤 수사를 해왔고, 어떻게 좌천과 복귀를 겪었는지는 워낙 잘 알려진 스토리입니다. (※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경우 참여연대 '그시절 그검사 DB'에서 검사 이름을 검색하면 해당 검사가 맡은 사건검색이 가능합니다. ▶바로가기)

박근혜 국정농단 수사를 시작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수사, 최근에 진행되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까지 연속적으로 해왔던 특수부 검사들은 진보 진영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국 장관 수사가 시작되자 몇 주 만에 '정치검찰'이라 비판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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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들에게서 같은 검사에 대한 평가가 몇 주 만에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부분 외에도 주목할 점은 앞서 언급한 굵직한 수사들을 동일한 검사들이 연속적으로 해왔다는 점입니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이번 정부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개혁의 동력이 되는 수사를 해 온 건 전체 검사의 1% 정도 되는 소수의 특수부 검사들이었다고 평가됩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특수부의 20~30명 가까운 검사들이 하나의 수사에 몇개월간 투입되고, 수사의 연속성과 공소유지를 이유로 같은 검사가 중앙지검 특수부에 몇 년간 머물 수 있게 허락했습니다. 적폐청산 수사의 선의와 무관하게, 이들 검찰 특수부가 정치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고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든 배경에는 지금의 청와대가 있었다는 걸 부정하기는 힘듭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정치 검찰' 만들기

청와대는 주어진 인사권을 통해 관료 조직과 공무원을 컨트롤합니다. 몇 차례의 검찰 인사를 통해 청와대는 검사들에게 메시지를 줬습니다. 검찰 간부 인사는 조국 장관이 얼마전까지 이끌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법무부 검찰국이 협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검찰 간부 인사에서 적폐청산 수사에 참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직 승진을 하거나, 대검찰청으로 그대로 옮겨오는 이례적인 고속 승진을 하는 모양새였습니다. 고검장급이 아닌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무리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바로 검찰총장에 임명시킨 것도 청와대의 결단이었습니다.

최근 인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시킨 검사들은 승승장구 했지만, 청와대의 심기를 거스르는 수사를 한 검사들은 좌천됐습니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한 남부지검을 보면 당시 지검장은 사표를 냈고, 수사를 지휘한 2차장은 서울고검으로 좌천성 인사가 난 것으로 분석됩니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한 동부지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동부지검장을 포함해 수사 라인이었던 2차장과 형사6부장은 모두 사표를 쓰고 검찰을 떠났습니다. 검사장 승진 대신 서울고검으로 전보, 중앙 특수부 대신 지방의 소규모 지청으로 발령이 나는 등 일관되게 좌천을 당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한 검사는 승진, 청와대에 칼끝을 향한 수사를 한 검사는 좌천. 이러한 인사가 주는 메시지는 검찰의 정치 예속을 부추깁니다. 검찰이 불법에 대해 공명정대하게 수사를 하기보다 청와대의 인사권을 바라보고 정치적인 수사를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정치 검찰' 만들기는 역대 정부에서도 계속되었고, 검찰개혁을 공약으로 삼은 이번 정부에서도 오히려 심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검 수사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고 출발한 정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전전 정부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성공적으로 구속시켰습니다. 대법원 뿐 아니라 국정원·기무사 등 주요 권력기관도 검찰 수사를 활용해 쌓여있는 적폐를 털어냈습니다.

현대의 정치는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 세력이 전쟁과 살인이 아닌 평화적인 방식을 통해 정권 교체가 가능하도록 제도화한 것입니다. 정치권력 간의 경쟁은 선거를 통한 심판으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정권교체 뒤 전 정권에 대한 수사가 공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민주 정부 10년 이후 집권한 이명박 정부에서는 전 정권의 대통령을 직접 소환조사하기에 이르렀고, 보수 정부 10년 뒤 집권한 현 정부에서는 10년 전 출범한 전전 정부의 대통령까지 불러 수사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은 정권이 교체될때마다 주체를 달리해서 나왔습니다.

수사를 통해 역대 대통령들이 감옥으로 가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줄줄이 징역을 살게 되면서 정권교체는 정치적 심판이 아닌 실제 전쟁 혹은 사화(士禍)의 모습을 띄게 됐습니다. 정치의 공간에 법적 잣대가 들어오면서 타협의 여지는 없어졌습니다. 사실관계를 따져 '불법이냐 아니냐, 유죄냐 무죄냐'로 양분되는 형사법의 세계에서 정치적 타협과 상상력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국회나 선거에서 해결되어야할 문제가 정치권의 고소고발 남발로 인해 검찰과 법원으로 무대를 옮겨왔습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서초동의 검찰이 여의도까지 왔다"고 말한 바 있지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서초동으로 공을 넘긴 건 오히려 여의도와 효자동인 측면이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 검찰개혁의 방향 설정은 올바른가

검찰개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형사소송법 학자들이 사법개혁에 대해 쓴 책 <서초동 0.917>에서는 검찰개혁은 곧 '정치로부터의 독립'이라고 말합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처럼 행정부의 간섭을 확대하는 제도는 오히려 검찰을 정치기구화한다고도 주장합니다. 결국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중립적인 검찰'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의 거리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분석합니다.

조국 장관은 민정수석이던 지난해 1월 14일 검찰개혁안을 청와대에서 직접 발표했습니다. 이 수사권조정안의 초안은 이광철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과 '버닝썬 유착' 의혹으로 수사대상에 오른 윤모 총경 등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관련 기사 : "우려되는 경찰 통제" "검찰 개혁도 역행"…비판 목소리도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경찰이 사실상 수사 종결권을 가져 검찰에 통제 받지 않도록 만들고, 특수수사의 경우 검찰이 그대로 직접수사할 수 있도록 유지하도록 한 조정안이라는 비판입니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래 뺐어야 될 힘은 안 빼고, 엉뚱한 데서 힘을 빼서 경찰에 가져다줬다"며 검찰의 특수수사 기능을 축소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습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도 통제가 없어지고, 남은 수사 부분에서 검찰도 통제가 없어진다"고 우려했습니다.

여당 내에서도 "특수부 수사를 축소하고,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경찰의 수사와 검찰의 기소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금태섭 의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적폐청산 수사가 진행 중이던 당시 청와대는 수사권 조정의 방향에 검찰 특수부 축소를 넣지 않았습니다.

학계와 법조계에서 수차례 지적이 나왔지만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던 '검찰 특수부' 문제를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은 언급했습니다. 특수부 수사를 응원하고 승진 인사로 보상했던 청와대와 여당이 검찰의 칼끝이 본인들을 향하자 권한 축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낸 셈입니다.

정부 여당이 사법개혁에 대해 입장을 바꾼건 처음이 아닙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져 판사들조차 법관대표회의에서 '연루 법관 탄핵'을 촉구했지만, 박주민 의원을 제외한 민주당 의원들은 적극적으로 탄핵을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댓글 사건으로 법정 구속되자 갑자기 해당 재판장을 포함해 법관 탄핵을 추진해야한다며 일제히 목소리를 낸 바 있습니다. 정치적 이익을 따진 '법관 탄핵'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 됐습니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원칙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개혁의 방향이 우리 편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를 따져서, 상대방이 공격당할 땐 침묵하다가 우리 편이 공격받으면 개혁 목소리를 높이는 방식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설득을 얻기 힘듭니다. 풀기 어려운 숙제인 검찰개혁·사법개혁이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지지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조국 법무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 핵심은 '권한 내려놓기'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기능을 폐지하고, 검찰의 범죄정보 수집을 축소하는 등 권한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유독 '검찰 특수부'와 '정보 경찰' 두 가지는 내려놓기는커녕 적극 활용해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적폐청산'으로 검찰의 몸집을 크게 부풀린 현 정부가, 다시 '검찰개혁'을 통해 검찰을 축소시키는 양립되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여러 가지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장관을 개혁의 주체로 내세우면서 어떤 개혁이든 의도를 의심받게 된 상황이 됐습니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스스로 가진 권한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적폐청산이라는 국면에서 검찰의 수사 권한을 절제해서 사용하지 못한 면이 있고, 검찰 인사를 통해 정치적인 종속을 가속화 시킨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청와대가 먼저 가진 권한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쉽지 않은 검찰개혁이 가능할 것으로 평가됩니다.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검찰의 수사권과 인사권을 사용하지 않고 법과 인권, 원칙의 기준으로 이를 절제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형사소송법 전공 학자들이 말하듯 검찰 개혁은 결국 정치권력으로부터, 정확히는 청와대로부터 독립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검찰 개혁의 요체에 대해 청와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님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해서 국민들의 희망을 받으셨습니다. 그런 자세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끝까지 지켜주십사 합니다. 제가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청와대든 정부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국민들이 체감도 하게 되고, 권력의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그런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7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식 당시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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