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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역린(逆鱗) 건드린 볼턴, 결국 백악관서 퇴출

[취재파일] 역린(逆鱗) 건드린 볼턴, 결국 백악관서 퇴출
미국인들도 '슈퍼 호키시(super-hawkish)', 초강경파로 부르는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짐을 쌌다. 오간 말들을 보면 단순 경질이 아니라 퇴출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10일 트위터를 통해 "지난 밤 볼턴에게 그가 백악관에서 일하는 것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알렸고, 사직서를 요구했다"고 알렸다. 트럼프 특유의 트위터 통보였다. 지난밤(9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CNN은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격한 언쟁을 벌였고, 두 사람의 만남이 끝날 무렵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에게 사임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틀 뒤 트럼프 대통령은 경질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트럼프는 12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볼턴을 "미스터 터프 가이"로 부르면서 "그가 정책과 관련해 많은 잘못을 했고 행정부 내에서 다른 인사들과 잘 지내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서는 "그가 김정은을 향해 리비아 모델(핵 포기 후 정권 붕괴)을 언급했을 때 일종의 매우 큰 잘못을 한 것"이라며 "그것은 좋은 언급이 아니었다"고 콕 짚어 말하기도 했다.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 역린(逆鱗)을 건드려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선 "(볼턴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이후) 김 위원장이 말한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볼턴과 함께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편들었다.

트럼프와 볼턴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는 지난 5월 말 북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볼턴 보좌관은 이 발사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하루 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 이것이 나의 사람들 일부와 다른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지만, 나는 아니다"고 트윗을 올렸고 그다음 날에는 기자회견장에서 "내 참모들은 결의 위반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고 일축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약속한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않겠다는 것이지, 이런 단거리 미사일 시험은 다른 나라들도 하는 활동이라는 취지였다.

대북 문제에 있어 볼턴의 역할이 제한됐다는 보다 분명한 신호는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 때였다. 하노이 정상회담장에 노란 봉투를 들고 배석할 정도로 존재감을 보였던 볼턴은 판문점에는 오지 않았고, 대신 몽골로 출장을 떠났다. 한 달 뒤 북한이 거듭 미사일 도발에 나선 상황에서 볼턴은 "김 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정색에 움찔한 볼턴이 자신의 '소신'을 잠시 접고 메시지를 조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언론에서는 북한 문제가 볼턴 퇴출의 결정적 이유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퇴출 트윗 이틀 전인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조직 탈레반 지도자들과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평화협정에 서명하려던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런 계획이 사전에 언론에 유출됐고, 미군에 대한 탈레반의 차량 폭탄 테러가 겹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 하루 전인 7일 행사를 취소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행사 취소를 발표하기 전 볼턴과 고성이 오가는 말다툼을 벌였다. 탈레반과의 협상에 끝까지 반대했던 볼턴이 비밀회동 계획을 언론에 흘린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다시금 역린을 건드렸다는 이야기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용인술을 놓고 '굿캅(Good cop) 배드캅(Bad cop)' 이야기가 있었다. 상반되는 성향의 참모들을 함께 쓰면서 상대방을 헷갈리게 만들어 협상력을 높인다는 건데, 대북 문제의 경우 볼턴 보좌관에게 나쁜 역할을,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착한 역할을 맡긴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볼턴의 퇴출로 보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예스 맨'만 쓰겠다는 생각임이 분명해 보인다. 어찌 됐건 볼턴의 퇴장은 북미와 남북 관계 모두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앞서 북한도 지난달 미국 입장에서 북미 협상의 걸림돌로 여겨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장금철로 교체한 바 있다. 이르면 이달 안에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북미 실무협상이 양측 강경파 교체 이후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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