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국과 함께 살아가자!" 거리로 나선 일본 시민들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19.09.09 10:16 수정 2019.09.10 17: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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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13호 태풍 '링링'의 영향권에 들었던 토요일(7일), 일본 도쿄는 아직 가시지 않은 한여름의 덥고 습한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오후 12시 50분, 휴일을 맞은 관광객들과 나들이 나온 젊은이들로 가득한 시부야 역 하치코 광장 한가운데, 변변한 그늘도 없이 머리 위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그곳에서 하야시다 미츠히로 씨(27)와 모토야마 진시로(28) 씨가 이동식 스피커와 마이크를 내려놓고 자리를 정돈하고 있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기 10분 전에 현장에 도착해 하야시다 씨와 모토야마 씨, 그리고 두어 명의 지인들이 집회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주변에는 그들이 미리 마련해 온 구호와 그림이 있는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0명 안팎 정도였을까요. 노인부터 젊은이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한 데 모이지 않고 살짝 흩어져 있어서 예전부터 서로 알던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 사이를 하야시다 씨는 부지런히 오가며 선전물을 챙겨주고 인사를 나누고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모토야마 씨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정리하고 테스트를 하는 데 열중했습니다.

트위터 프로필에 따르면, 하야시다 씨는 나가사키 출신의 피폭 3세입니다. '피폭자 국제서명' 운동의 캠페인 리더를 맡고 있습니다. 모토야마 씨는 오키나와 출신으로 지금은 히토츠바시 대학의 대학원생입니다. 미군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과 관련한 오키나와 현민투표에서 이전 반대를 이끈 경험이 있습니다.(현민투표에서 과반이 넘는 반대가 나왔지만 일본 정부는 그 결과를 애써 무시하고 있죠.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지사가 당선되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반대파가 당선돼 오키나와 사람들의 반대 의견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났는데도 말입니다.)

핵 문제와 미군 주둔 문제, 일본의 과거 전쟁 책임과 연결되는 사회적 활동을 하는 두 사람이 더운 여름날 시부야 한복판에 모인 것은 '한일 연대 행동 0907' 집회 때문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이날 집회는 나흘 전인 3일에 SNS로 개최가 결정됐습니다. 하야시다 씨가 제안하고, 모토야마 씨가 찬성하며 개최를 돕기로 했습니다. 평소 이들과 SNS상에서 친분이 있던 몇몇 활동가들이 찬성하며 개최 소식을 곳곳에 전파했습니다. (저도 이 활동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들이 집회를 열기로 한 직접적인 계기는 주간지 [주간 포스트]의 최신호의 한국 관련 특집 '한국 따위는 필요없다'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 미디어들의 혐한 보도의 강도와 빈도가 모두 강해져 있던 상황.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예전처럼 눈치도 보지 않는 혐한 보도에 대한 분노를 느끼던 차에, [주간 포스트]의 특집 기사가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겁니다.
유성재 취파/ 주간포스트 표지주간 포스트(9월 13일 자)의 표지입니다. 한가운데 '혐한 특집'의 기사 제목들이 세로 쓰기로 나열돼 있습니다. 주요 제목은 이렇습니다. '혐한'이 아니라 '단한(斷韓, 한국을 '끊다')이다. 기분 나쁜 이웃나라에 안녕을', '한국 따위 필요 없다', '[군사]GSOMIA 파기로 서울이 김정은에 점령당하는 악몽', '[경제] 삼성은 스마트폰, LG는 TV도 만들 수 없게 된다', '[스포츠] 도쿄올림픽 보이코트로 일본 메달이 2자리 수로 늘어나나?'. 어이가 없는 것은 물론 분노를 금할 수 없는 제목들입니다. 가장 가관인 것은 이 제목입니다. '10명에 1명은 치료가 필요…분노를 억제할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병리(病理)''.
유성재 취파/ 시부야 집회 시작직후2오후 1시, 집회가 시작됐습니다. 혼자서, 또는 지인들과 함께 참석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가운데로 모이지 않고 마이크를 잡은 모토야마 씨의 뒷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조금씩들 더 가까이 서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 참가자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양쪽 끝에서부터 한 명, 두 명씩. 조금 늦었다며 앞서 와 있던 참가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무리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분명히 그냥 지나가는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뒤쪽에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서로를 이미 알고 있는 듯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하야시다 씨에게서 받은 플래카드를 가만히 들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집회는 모토야마 씨가 사회를 보고, 중간중간 원하는 사람이 나와서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모토야마 씨는 "오늘 집회는 정해진 순서도 없고, 정해진 발언자도 없다"며 "딱 1시간 동안 발언하고 해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발언을 원하는 사람은 주최자인 하야시다 씨-여전히 여기저기 분주히 오가며 참가자들을 챙기고 있었습니다-에게 미리 발언 의사를 표시하고 앞으로 나와서 마이크를 잡으면 된다고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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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발언자가 몇 명인가 나왔습니다. 먼저 SNS로 집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가나가와 현에서 왔다는 한 참가자는 본인을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뒤 대학생 때 한국에 '연수'로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연수 시절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들, 즐겼던 한국 드라마 이야기들로 발언을 시작한 뒤, 요즘 일본의 크고 작은 미디어들이 한국을 적대시하는 보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내는 것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게 큰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그런 보도를 보고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상이 되어 버린 '혐한 보도'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는 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오늘 집회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를 고등학생이라고 소개한 참가자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처음에는 '일본이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자료들도 찾아보면서 일본이 '해야 할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기와 친구들은 한국의 음악이나 패션도 좋아하지만 '한국이 좋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최근 이어지고 있다며, 일본이 지금이라도 역사와 진지하게 대면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유성재 취파/ 시부야 집회 중간요코하마에서 참가한 재일 한국인 3세라고 자기를 소개한 참가자도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는 '친구나 가족이 혐한적인 발언을 했을 때 흘려듣지 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는 갑자기는 변하지 않지만, 주변 반경 5미터는 스스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 젊은 세대, 미래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최근 일본의 한 지역 민방이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인 여성이 폭행을 당한 사건을 방송에서 다루는 과정에서, '일본인도 한국 여성을 폭행해야 한다'고 한 출연자의 망언이 그대로 전파를 탄 것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1시간을 예정한 집회가 거의 끝나갈 때, 마지막 순서로 주최자인 하야시다 씨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사실 하야시다 씨는 지난 2015년 안보법 개정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섰던 학생단체 실즈(SEALDs,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의 전 멤버입니다. 올해 27세로 이미 결혼해 아이도 있는 하야시다 씨는 이날 집회의 취지에 대해, 힘 있는 목소리로 열변을 토했습니다.

"혐한 보도들이 계속 나왔고, 저마다 다들 어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주간 포스트]의 보도는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말도 안 되는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여과 없이 담은 제목이 광고판에 그대로 적힌 채로 지하철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어를 아는 한국인들, 한국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들,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들이 이걸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들은 무서움에 몸을 떨 것입니다. 틀림없이 공포스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정치적인 대립이 깊어지고 있다고 해도 이런 헤이트 스피치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되고, 혐한 무드를 조성하는 방송도 결코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인으로서 이건 안된다고 확실하게 말해야 합니다."

집회가 끝날 무렵에는 시작할 때에 비해 눈에 띄게 참가자들이 늘어 있었습니다. 백 명은 훌쩍 넘어 보였습니다. 집회 결의와 준비는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 했지만, 참가자들은 대부분 집회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모인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열에는 같이 서지 않았지만 언론들의 포토라인 뒤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가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중간중간 "맞아!" "그렇다!"고 하는 외침도 나왔습니다.
유성재 취파/ 시부야 집회 후반마지막 순서는 하야시다 씨의 즉석 제안으로 이뤄졌습니다. 참가자들이 취재를 나온 미디어들을 위해 한가운데 모여, 모두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기로 한 겁니다. 먼저 모토야마 씨의 선창으로 일본어 구호를 세 번 외치고, 그걸 한국어로 번역해 세 번. 한국어 번역은 참가자 가운데 한 분이 큰 목소리로 선창 했습니다.

"一?に生きよう!" "우리 함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