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얼룩말 진화의 비밀

이정모 | '청소년을 위한 과학관' 서울시립과학관의 초대 관장

SBS 뉴스

작성 2019.08.31 11:01 수정 2019.08.31 22:1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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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 <마다가스카>는 아프리카 동물 4인방의 정글 탈출기다. 주인공은 사자 알렉스, 기린 멜먼, 하마 글로리아 그리고 얼룩말 마티. 4인방은 아프리카는 구경도 해본 적이 없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동물원에서 자랐다. 마치 온실의 화초처럼.

그러던 얼룩말 마티가 호시탐탐 남극으로의 탈출을 노리던 펭귄의 꼬임에 빠져 동물원을 나간다. 의리로 똘똘 뭉친 친구들은 마티를 찾아 동물원을 빠져나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아프리카로 향하는 배에 오르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센트럴파크 동물원 4인방의 면모를 살펴보자. 사자는 밀림의 왕이다. 기린은 가장 키가 큰 초식동물이다. 하마는 가장 강한 초식동물이다. 그러데 얼룩말은 왜 4인방에 끼게 되었을까?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특이한 외모 때문이다. 검은 털과 흰 털이 교대로 난 얼룩무늬를 빼면 얼룩말은 내세울 만한 게 딱히 없다. 그런데 이 특이한 얼룩무늬는 왜 생겼을까?

얼룩무늬에 대한 가설은 많다. 찰스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이론을 만든 월리스는 '위장효과'라고 주장했다. 찰스 다윈은 즉시 "웃기지 마! 오히려 눈에 더 잘 띄어!"라고 일축했지만 이 이론은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널리 통했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초원에서 얼룩무늬가 마치 군복의 얼룩무늬처럼 위장효과가 크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얼룩무늬가 눈에 잘 띄어서 자기네 무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 것을 보면 위장효과 가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흰색과 검은색에 따른 온도 차이에 주목한 이들도 있다. 날아다니는 새 가운데 가장 커다란 날개로 가장 멀리 날아가는 앨버트로스를 보자. 한 번 날아오르면 1만 6천 km까지 날아간다. 당연히 날갯짓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리다. 날갯짓 없이 날아가는 활공능력 때문이다. 여기에 깃털의 색깔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날개 위쪽은 검은색, 아래쪽은 흰색이다. 햇볕을 받는 위쪽의 검은 깃털은 뜨거워진다. 아래쪽의 흰 깃털보다 10도나 더 높다. 날개 위쪽은 뜨거워서 공기밀도가 낮다.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밀어 올리는 양력이 발생한다. 앨버트로스뿐만 아니라 큰 새의 날개 위쪽이나 적어도 날개 끝이 검은색인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이것은 2019년 여름에 발표된 연구결과다. 하지만 얼룩말의 얼룩무늬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비슷한 가설이 있었다. 검은 털에서 데워진 공기가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얼룩말 표면의 공기들이 소용돌이를 일으켜서 체온을 조절한다는 주장이다. 어떤 질병에 다양한 치료법이 있다는 것은 쓸 만한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는 뜻인 것처럼 얼룩말 무늬 가설이 많다는 것은 확실한 이론이 없다는 뜻이다.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때는 2012년경이다. 헝가리와 스웨덴 연구팀은 얼룩말의 좁은 줄무늬가 흡혈파리의 눈길을 끌지 않는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했다.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줄무늬를 그려놓고 끈끈이를 붙인 뒤 흡혈파리의 일종인 말파리가 어디에 더 많이 달라붙는지 확인한 것이다. 그 결과 검은색에는 562마리, 얼룩무늬에는 8마리, 흰색에는 22마리가 달라붙었다. 얼룩무늬에는 흡혈파리가 확실히 덜 꼬였다.

아프리카에서 파리는 단순히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체체파리 같은 흡혈파리에 물리면 수면병에 걸려서 생존이 위험해진다. 연구팀은 얼룩무늬가 말파리나 체체파리 같은 흡혈파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왜?

궁금하면 해결하는 게 과학자다. 2019년 2월 21일 미국 연구팀은 '검고 하얀 줄무늬를 보면 파리들이 혼란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보통 말에 얼룩무늬를 비롯한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옷을 입힌 후 접근하는 파리의 모습을 고속카메라로 촬영했다. 파리들은 줄무늬를 향해 다른 경우보다 더 빨리 돌진했다. 파리들은 충돌하든지 급선회해야 했다. 실제로 말 피부에 안착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낮았다.

아직 얼룩말 진화의 비밀이 완전히 벗겨진 것은 아니다. 이제는 파리 신경망에 대한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얼룩말의 얼룩무늬는 흡혈파리를 막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얼룩말은 흰 바탕에 검은 무늬 털이 있는 걸까, 아니면 검은 바탕에 흰 무늬 털이 있는 걸까? 확인하는 법은 간단하다. 면도를 해보면 안다. 답은? 얼룩말의 피부는 검은색이다. 검은색 피부에 흰 털과 검은 털이 교대로 나와서 얼룩무늬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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