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손편지 예찬

박종환 | CJENM 뮤지컬 홍보 담당자. 걷기 모임 <같이 걸을까> 운영 중

SBS 뉴스

작성 2019.08.29 11:03 수정 2019.08.29 18: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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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에드몽 로스탕은 세계적인 명작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집필해 이름을 날렸다. 이 작품은 실제로 17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문필가였던 '시라노'의 일생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주인공 시라노는 자신의 큰 코에 콤플렉스를 가진 남자다. 극은 외모 때문에 사랑을 고백할 용기가 없던 시라노가 훌륭한 외모를 가졌지만 언변이 부족한 남자를 대신해, 그의 편지를 대필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희곡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시라노>에서 동료는 전쟁 중에도 매일 편지를 쓰는 시라노를 원망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목숨 걸고 포위망을 들락날락해야겠어? 고작 편지 한 통 보내겠다고?" 하지만 시라노는 되레 화를 내며 말한다. "고작 편지 한 통이라니!"

사랑하는 여인이 그토록 원하고 기다리는 편지는 이미 시라노 마음의 전부이자, 유일한 고백의 도구였다. 사실 전쟁처럼 극단적인 환경에서가 아니더라도, 또 짝사랑 여인처럼 간절한 대상이 아니더라도, 편지는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해 설렘과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사랑과 이별은 물론 반가운 사람의 소식이나 기다리던 정보를 전하던 손편지의 자리를 요즘은 이메일과 문자, SNS, 메신저가 대신한다. 손편지의 대체품들은 이용 방법도 편리하고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즉각적인 확인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장점 덕분에,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 사이에 많은 교신이 이뤄지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컴퓨터 문자가 주는 각박함은 감정을 나타내는 신박한 이모티콘들이 덜어준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이메일 서비스 개발을 담당했던 내 친구 YJ는 당시 과거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메일 개발을 하다 보니 나의 일이 엄청 가치 있는 일로 느껴졌어. 외국에 가 있는 식구들과 바로 연락이 되고, 연애편지도, 안부 인사도, 감사 인사도 이메일로 슬슬 시작하던 시대에 그 수단을 만든다는 게 마법처럼 느껴졌었지."

YJ는 자신의 일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술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준다는 것에 "내가 하는 일이 바로바로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고 그 피드백을 바로바로 느낄 수 있으니까, 밤을 새워도 재미있고 주말에도 회사 나가 일하고!"

당시 우리는 그렇게 신나게 이메일을 만들던 이들과 더불어 매우 신기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더욱더 편리하고 즉각적인 소통을 원했던 우리는 이 새로운 경험에 열광하고 순식간에 녹아들어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뭔가를 놓쳐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감정은 YJ에게서 더욱 분명히 읽혔다. "어느 날 돌아보니 마법 같았던 서비스는 일상이 되고, 일상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대체돼 있더군. 웹의 시대를 거쳐 이젠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사람과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마주 보고 앉아서도 서로를 보고 있지 않고 핸드폰을 보고 있잖아"라며 YJ는 혼란스러워했다.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이어주고 있다고 느꼈던 마법이 어느 날 돌아보니 사람과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고 있던 게 아닌가,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지." YJ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음'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손으로 쓴 편지, 우편이 붙여진 편지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아니 디지털 시대를 맞아 더욱더 값지게 느껴진다. 내가 올해 생일 선물로 친구들에게 손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건네준 손편지에는 술잔과 커피잔을 기울이며 나누던 대화와는 사뭇 다른 내용의 글이 담겼다. 수신자는 배제된 발신자의 마음이었다. 서로 얼굴 보고 있을 때는 쑥스럽고 혹은 불편해질까 봐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 발신자의 그 온전한 마음이 손편지를 통해 전해졌다.

아마도 친구들은 컴퓨터로 편지를 쓰면서 경험하지 않았던 조마조마함도 느꼈으리라. 쉽게 수정하고 재편집할 수 있는 이메일과는 달리, 손편지를 쓸 때 우리는 무슨 말을 쓸지 미리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편집까지 마치고 나서야 펜을 들 수 있으니까.

2019년, 우리는 이메일과 문자, SNS, 메신저가 없는 일터를 상상하기 어렵다. 공연 관련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하는 나로서는 더는 우편이나 일대일 전화 통화에 의지해 이런 업무를 하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 이메일과 문자, SNS, 메신저를 통해 전달되는 수많은 정보들. 그래서 나는 늘 몸을 곧추세우고 이 글들을 읽는다.

하지만 손편지를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손편지를 읽다 보면 나의 마음이 발신자의 마음에 가 닿는 듯 느껴진다. 그 따뜻함이 좋아 나는 여전히 가끔 손편지를 받고 싶다. 그리고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손편지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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