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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제보자 소문 흘리는 관세청, 제정신인가

[취재파일] 제보자 소문 흘리는 관세청, 제정신인가
"강 기자, 요즘 관세청 취재하는 거, 제보자가 누구라며?"

말문이 턱 막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19일부터 SBS 8뉴스를 통해 보도된 관세청 관련 기사를 한창 준비하던 지난주, 한 정치권 인사를 만난 자리였다. 아직 보도를 하지도 않은 기사의 내용이 도는 것만 해도 기자에게는 치명적인 일인데 제보자가 누구라는 소문까지 돌다니, 정말 아찔했다. 아무리 이 바닥이 소문이 빠르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구체적이고, 악의적이었다. 낙종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 제보자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보도일이 다가올수록 관세청 안팎에 소문이 파다했다. 취재의 특성상 복수의 관계자들을 만나 사실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정보가 노출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성격이 약간 달랐다. 그냥 '카더라'가 아닌, 한쪽의 입장에서 교묘하게 편집된 다소 의도 섞인 정보가 제보자를 특정해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기자는 심지어 검사 출신인 김영문 관세청장이 직접 청와대에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는 복수의 증언을 취재할 수 있었다. SBS에서 관세청 직원들의 비리를 취재하는데 제보자는 누구로 추정이 되며,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다더라 하는 친절한(?) 개요와 함께였다. 국회를 출입하는 관세청 직원이 한 국회의원실에 찾아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는 말도 들었다. 이 직원 또한 제보자가 누구로 추정되는지 소상하게 이야기했음은 물론이다. 정부 기관이자, 비리 관련 보도의 당사자인 관세청이 직접 나서 제보자가 누구라고 소문을 내고 다닌 셈이다.

제보자를 밝힐 수도 없고, 밝혀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 기회를 빌어 밝혀두자면 취재진은 세관 직원들의 조직적 비리와 구조적 병폐에 대한 보도를 준비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 아닌 다수의 전 현직 세관 직원을 비롯한 복수의 취재원을 여럿 만났다. 전국을 돌았고, 몇 달이 걸렸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정부 기관에 대한 심층 보도를 준비하면서 1명의 취재원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관세청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저런 소문을 내고 다니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메신저를 공격해 메시지를 훼손해보겠다는 뜻이다.
직장 내 갑질

● 공익신고자 "신변의 위협"…보호법 위반 소지도

현재 다수의 공익제보자와 관계자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비리 당사자로 지목된 세관 직원들은 출근조차 하지 않거나 증거를 인멸하고 여기저기 "가만히 당하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관세청은 해당 직원의 장기 휴가를 승인해 준 것은 물론 사실상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직원 개인의 일이라며 사실상 손을 놓은 모양새다. 만약 제보자 신변에 위협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책임질 셈인가.

지난해부터 시행된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공익신고자 등의 인적사항이나 공익신고자 등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제보자와 취재원들의 의도, 그리고 보도의 목적은 개인 비리의 폭로가 아닌, 허술한 국가 관세 시스템과 구조적 병폐를 지적함으로써 보다 청렴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관련된 이들도 마땅히 공익 신고자로 보고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관세청은 정 반대로 가고 있다. 기자가 접촉한 일부 취재원들은 '세관에서 기자를 만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저 오지랖 넓은 일부 세관 직원들의 개인적인 언행이었다고 기자는 믿고 싶다.
관세청 직원
SBS 보도로 드러난 세관 직원들의 비위는 말문이 막힐 만한 것들이었다. 뇌물이나 성접대를 받고 통관 편의를 봐주는가 하면 집단으로 해외 원정 성매매를 다니고, 친분을 이용해 개인적인 민원을 부탁하는 등 완전히 '비리 백화점'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청은 미적미적 대응을 미루고 있다. 그 흔한 공식 입장 표명 한번 하지 않았다. 대신 한다는 게 뒤로 제보자를 특정해 여기저기 흘리는 짓들이다.

지금 관세청이 할 일은 제보자가 누군지 소문내고, 그 의도를 훼손하는 게 아니라 철저한 조사를 통해 관련자를 일벌백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취재팀은 앞으로도 계속 후속 보도를 이어갈 계획이다. 관세청이 비리 소굴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고 무엇보다 국민 전체에 피해가 돌아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관세청의 자성과 올바른 대처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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