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장관·의장 이례적 동시휴가…美 해병대사령관 예방도 무산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08.23 16:41 수정 2019.08.23 17:5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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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3일) 정경두 국방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이 둘 다 휴가를 내고 집무실을 비웠습니다. 유사시 군사적 최종 결심을 해야 하는 군 최고 수뇌 2인의 동시 휴가입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 북한 이용호 외무상의 대미 비난 담화 발표 등 국가 안보를 둘러싼 현안이 많은데도 둘은 떠났습니다.

안보 현안이 전혀 없는 한가한 때라 하더라도 한 명이 휴가 가면 다른 한 명은 자리를 지키는 게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의 암묵적 관례입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함께 자리를 비우지 않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래서 장관과 의장의 오늘 동시 휴가는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왜 그랬을까요?일본 방위성을 방문한 데이비드 버거 미 해병대 사령관오늘 마침 미 해병대의 데이비드 버거 신임 사령관이 방한했습니다. 방한 전에는 일본을 찾아가 일본 방위상 등을 예방했습니다. 버거 사령관은 어제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군사적 관점에서 중요하고 잘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버거 사령관 방한의 주요 목적은 정 장관과 박 의장 예방이었습니다. 하지만 정 장관과 박 의장의 동시 휴가로 버거 사령관의 예방은 무산됐습니다. 버거 사령관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할까봐 장관과 의장이 자리를 피했다는 관측이 군 내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한미 동맹의 군사 외교 측면에서 결례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버거 사령관은 오늘 오전 이승도 해병대 사령관을 만났고 내일 떠납니다.박한기 합참의장 (사진=연합뉴스)● 합참의장은 전투휴무 중!

데이비드 버거 미 해병대 신임 사령관의 합참의장 예방 계획이 합참에 전달됐을 때 합참은 "의장이 전투휴무 중이어서 만나기 어렵다"는 뜻을 미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미 해병대 사령관급의 고급 장교가 취임 인사차 방한하면 당연히 합참의장을 만난다"며 "미 해병대 신임 사령관 예방이 의장의 전투휴무로 불발됐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박한기 합참의장은 지난 20일까지 한미연합훈련을 치르느라 휴일에 제대로 쉬지 못해서 오늘 하루 전투휴무를 냈습니다. 한미연합훈련 일정이 임박해서 결정됐고 따라서 의장의 전투휴무도 최근에야 정해졌습니다. 전투휴무는 일찍 예정된 휴가가 아니라 부정기적 휴가여서 통상 군인들은 집에서 소일하거나 운동을 하곤 합니다.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어렵지 않게 취소하는 휴가입니다.

여러 현역 장교들이 "박한기 합참의장이 전투휴무를 물리고 집무실로 돌아와서 버거 사령관을 만났어야 했다"는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미 간에 유일하게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실기동 훈련이 한미 해병대의 KMEP 연합훈련이고, 유사시 한반도로 제일 먼저 증파되는 지상군 병력이 미 제 3 해병원정대(3MEP FORCE)인 점을 감안하면 합참의장은 버거 미 해병대 사령관을 만나 '합'을 맞춰봐야 했습니다.정경두 국방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장관은 휴가중 공관에서 주요 업무 처리!

정경두 국방장관도 어제와 오늘 휴가입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공관에 머물면서도 NSC 등 주요회의에는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오늘 장관의 휴가에 대해 "장관은 휴가 중이지만 공관에서 주요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버거 사령관의 예방도 한반도 안보 환경에서는 국방장관의 주요 업무입니다. 하지만 만나지 않았습니다. 최현수 대변인은 어제 "추후에 확인 후 다시 말씀드리겠다"라고만 했을 뿐 국방장관이 미 해병대 사령관을 만나지 않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버거 사령관은 방한 전 일본에 들러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을 비롯한 자위대 지휘부, 그리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을 만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카운터 파트인 이승도 해병대 사령관만 만났습니다. 한미 해병대 사령관의 오늘 회동도 사진 한 장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의 동시 휴가, 그리고 미 해병대 사령관의 '예방 패싱(passing)'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에 대한 미국의 불만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버거 사령관은 어제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유지의 필요성을 역설한 뒤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 "협정 파기 백업 계획 없다"

어제 일본 도쿄 뉴산노 호텔에서 열린 외신 기자회견에서 버거 사령관은 "한일 간의 협정 문제가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군사적으로 한일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협정 파기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플랜 B나 C같은 백업 계획을 현 단계에서는 추정하고 싶지 않다"고 일축했습니다.

만약 버거 사령관이 오늘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나 합참 청사를 방문했다면 좋든싫든 기자들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협정 종료 결정에 대한 질문에는 우리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 현역장교들은 "버거 사령관이 협정 종료 결정에 대해 한마디 쓴소리를 할까봐서 장관과 의장이 휴가를 핑계로 피한 것 같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버거 사령관은 오늘 저녁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를 만나 만찬을 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내일 한국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