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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제 친구는 난민입니다."

정우성|배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저자.

[인-잇] "제 친구는 난민입니다."
지난해 말 서울 아주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 매체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학생들은 당시 아주중 3학년이었던 김지유, 박지민, 최현준 세 학생이다. 꽤나 긴장한 듯 보이는 아직 어린 청소년들이었지만, 말에는 결기가 있었고 눈매에서는 진지함이 느껴졌다.

그해 학생들은 큰일을 겪었다. 이란 출신의 같은 학교 친구 민혁이(한국 이름, 이란 이름은 비공개)가 난민 인정이 불허되면서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강제 송환되는 것만으로도 고초를 겪을 텐데, 민혁이는 이슬람교에서 금기하는 개종을 했기 때문에 이란으로 돌아가면 율법에 따라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민혁이의 친구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막막했다고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는 게 없었다고 한다. 당시 난민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을 두고 벌어진 갑론을박뿐이었다. 난민 문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친구가 한국을 떠나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이란으로 강제 송환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도 없었다.

아이들은 우선 공부부터 했다. 그리고 난민에 대한 공부를 할수록 민혁이가 난민 인정을 받을 충분한 상황이 되는 것 같았다. 세 학생을 중심으로 아주중학교 학생회는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했다. 민혁이가 제대로 된 난민 심사를 받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도 하고 집회도 열었다. 그들의 활동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민혁이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들을 마냥 좋게 본 것은 아니었다. 나한테 쏟아졌던 비판과 비난은 이 열여섯 살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쏟아졌다. "어려서 뭘 모르고 저런다"며 얕잡아 보는 이들도 많았다. 이들이 어린 나이에 굳이 받지 않아도 될 조롱과 모욕을 묵묵히 견뎌내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묻지 않아도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친구 민혁이…"라는 말. 이들에게 민혁이는 그저 '친구'였고, 다른 거창한 이유를 떠나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편견과 무관심을 벗어던진 순간 마주하게 된 진실은 학생들에게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과 어려움을 견뎌낼 힘을 주었을 것이다.

학생들도 지난해 제주도에서 처음 난민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만 해도 그냥 흘려 넘겼었고, 심지어 예멘 사람들을 의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민혁이를 통해 난민 문제가 '내 친구'의 문제가 되자 그를 돕기 위해 공부했고, 그들이 만난 진실이 세상에 알려져 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옳다고 여기는 것을 실천하고 역경에 부딪혀도 이겨낸 친구들에게 어쩌면 뻔해 보일지도 모르는 말을 보태고 헤어졌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이다. "난민 문제는 인권 문제예요. 인권은 종교도 민족도 초월한 모든 사람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거죠. 여기에 차등을 두면 안 돼요."

이제는 서로 다른 곳에서 고등학생 생활을 시작한 민혁이의 친구들. 그런데 이들이 최근 다시 한번 힘을 합쳐 목소리를 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2019년 8월 8일 민혁이의 아버지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현실 앞에서 민혁이의 친구들은 입장문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렸다. 이번에는 서른 명이 동참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똑같은 사유로 난민 신청한 아들과 아버지에게, 아들은 박해의 위험이 있고 아버지는 박해의 위험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다니요.… 미성년자인 아들보다 어른인 아버지가 박해의 위험도가 더 높고, 아들이 난민 인정을 받은 작년보다 1년 후인 지금의 아버지 상황이 더 주목받는 상황인 건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인데… 포용과 존중을 배우려 했던 우리에게 배척과 편견의 독한 대답으로 던져진 판정(입니다.)" <아주중학교 졸업생 30인의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을 쓰다' 중>

민혁이의 아버지는 난민 지위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민혁이를 양육해야 하는 사정이 참작되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인도적 체류'는 1년마다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하는 제한적 허가다.

'친구' 민혁이를 걱정하며 다시 모인 학생들의 마음을, 그리고 민혁이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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