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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슈아 웡, 제발 만나줘요…홍콩 민주투사 인터뷰 성공기

"한국 정치인들은 왜 홍콩 사태에 침묵하나" 항의

[취재파일] 조슈아 웡, 제발 만나줘요…홍콩 민주투사 인터뷰 성공기
지난 18일, 최대 300만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던 홍콩의 대규모 시위가 비교적 평화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주최 측에 따르면 170만 명이 홍콩 곳곳을 행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과의 충돌은 극소수였습니다. 부상자도 없었고, 체포된 사람도, 경찰의 최루탄도 없었습니다.

사실 시위 전까지만 해도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중국 중앙 정부는 홍콩 바로 위 선전에 군대와 경찰을 보내 전 세계에 노출되도록 했습니다. 장갑차 퍼레이드와 병력의 훈련 모습이 외신에 나오는 동안 그들은 별다른 통제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론 통제가 극히 심한 중국의 사정을 감안하면, 의도적인 노출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홍콩 경찰 역시 시위를 이틀 앞두고 행진을 불허했습니다. 강경 진압을 예고하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사진=연합뉴스)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홍콩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조슈아 웡을 인터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다시 한번 설명을 드리자면, 22살의 젊은이입니다. 5년 전에는 우산 혁명으로 잘 알려진 홍콩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고, 2017년에는 홍콩 반환 20주년을 맞아 홍콩을 찾은 시진핑 주석 반대 기습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우산 혁명 주도 혐의로 투옥됐고 올 6월 출소한 뒤에는 곧바로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이 정도면 홍콩의 '민주 투사'라고 할 수 있겠죠.

홍콩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그가 이끌고 있는 데모시스토 당의 지인들과 홍콩 언론의 지인들을 통해 연락처를 수소문했습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답은 없었습니다. 홍콩에 내린 뒤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영어보다 중국어가 편한 탓에 "중국어(中文)로 물어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말은 "국어(國語)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륙에서는 중국어를 普通話(푸퉁화) 혹은 中文(중원)이라고 합니다. 대륙에서 중국어를 배운 탓에 "슈어 중원예 커이마?"(중국어로 해도 되냐)고 물은 건데, 돌아온 답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국어가 뭐지…'라고 잠깐 생각하는 찰나, 같은 말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국어'는 홍콩, 타이완에서 중국어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대륙에 대한 반감을 은연중에 드러낸 답이었던 것입니다.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인터뷰 요청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서둘러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왓츠앱이나 메일로 연락하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왓츠앱은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영미권이나 홍콩 등에서 우리의 카카오톡만큼 보편화된 메신저입니다. '까칠한 친구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더 좋아하는 쪽이 예민한 법이니…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연락하듯 왓츠앱으로 조심스럽게 인터뷰 요청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몇 시간 뒤 '곧 답을 주겠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 시위를 취재하고 8뉴스 중계를 마친 뒤, 메일이 왔습니다. 17일 오후 4시 반에 만나자고. 설렜습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이 한창인 이 시기 대표적 민주 투사 중 한 명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자로서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18일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그의 입을 통해 홍콩 민주화 운동의 방향을 전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기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인터뷰 일정을 잡고 공항과 도심을 오가며 취재를 하던 중 16일 늦은 밤 그의 친구라는 사람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조슈아 웡이 17일 인터뷰가 불가하니 필요하면 내가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조슈아 웡의 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다른 사람이 하는 건 의미와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조슈아 웡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몇 차례 더 전화를 걸었더니 왓츠앱 메시지가 왔습니다. 원문 그대로 전해드리자면 "It is really rude to keep calling around almost mid-night(자정이 다된 시간에 계속 전화하는 것은 너무 무례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약속 하루 전 일방적으로 인터뷰를 취소하는 건 안 무례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더 좋아하는 쪽이 예민한 법이니. 다음 날을 위한 기사 계획도 모두 물거품이 될 생각에 답답했지만 그를 설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습니다. 결국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마음을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도 지금의 홍콩처럼 70~80년대 민주화 투쟁 시기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공권력에게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희생됐고, 당신과 같이 당시 민주화 투쟁을 이끌던 인사는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은 지금의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고 특히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당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당신의 목소리를 한국인들에게 전할 기회를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 애타게 기다렸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만나는 게 어렵다면 화상 인터뷰라도 고려해 달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후 답이 왔습니다. 지금 5분 정도 인터뷰가 가능하니 바로 전화 달라고. 외부에서 시위를 취재 중이었던 탓에 20분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알겠다는 답이 왔습니다. 처음 받아본 그의 긍정 메시지에 힘이 났는지... 부리나케 숙소에서 인터뷰 준비를 한 뒤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짧은 인터뷰 뒤에 그는 한국 언론의 인터뷰를 꺼려했던 이유를 짧게나마 털어놨습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왜 홍콩의 시위에 대해 지지하거나 연대하는 발언이 없냐는 것이었습니다. 홍콩이 처한 상황에 대해 미국 영국은 물론 동남아 여러 나라와 (그의 표현대로) 심지어 일본까지 일국양제에 대한 우려를 표했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정부나 정치인들의 발언이 없었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니 국내 언론에서 홍콩 상황에 대해 수많은 보도가 이어졌지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지지나 응원의 목소리는 국내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부끄럽기도,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홍콩 시민들을 응원한다는 말이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계산해야 할 만큼 어려운 말이라는 것도 서글펐습니다.
홍콩 시위대(사진=연합뉴스)
공항에서 시위가 벌어지던 지난주 홍콩에서 만난 20살의 아직은 어린 청년들과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 한국 방송사인 SBS를 먼저 알아봐 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그들은 연일 이어지는 시위의 긴장감이나 비장함보다는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들이 한 말이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민주주의나 주권재민 같은 거창한 것보다 행복하고 싶다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을 쟁취하길 응원합니다.

(사진=연합뉴스·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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